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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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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향자콧에서 아싸가 인싸로 바뀌었다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34>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19-08-28 (수) 16:58:06

   

내가 네팔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은 남미 여행 중에 만나서 일행이 된 두 명의 60대 초반 영 시니어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울산에서 온 김선생은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 한 후 정년퇴직을 하고 3개월 간의 남미 여행 계획을 혼자서 짜 가지고 왔다. 청주에서 온 고 선생은 평생 지방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 전에 주어지는 1년간의 안식년/安息年 기간을 이용해서 부부가 함께 왔다. 나를 제외하면 세 사람 모두가 산악인들이었다. 에베레스트와 히말라야 등을 4-6회 씩 등반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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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여행 하면서도 그들의 대화는 늘 네팔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좋으면 지구의 반대편 남미 대륙에 와서도 네팔 이야기만 할까?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애정과 자부심과 보람이 대단했다. 그 때 나도 기회가 된다면 네팔이라는 나라를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남산 정도나 겨우 올라가는 내 체력으로 히말라야 등반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어떤 산이길래 그리도 예찬을 하는건지? 멀리서 나마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네팔 여행의 컨셉은 자연스럽게 힐링으로 정해졌다.

 

 

나는 20178월에 폭염이 이글 거리는 스페인을 여행했다. 까미노 순례길은 애초에 계획에도 없었지만 도착지인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를 굳이 가서 보기로 했다. 4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몸은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 감히 프랑스의 도시에서 출발해서 스페인의 갈리시아 까지 걷고 또 걷는 여정에는 도전할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많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이 왜 가는지 ? 왜 열광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며칠을 머물면서 순례를 마친 사람들을 만나보고 성당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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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열기에 들떠 있었다. 고난을 이겨내고 보람과 성취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에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나는 성당 광장에서 얼싸 안고 춤추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찬사를 보내 주었다. 그들의 열정과 체력과 정신력이 부러웠다.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꼭 그 길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나는 그냥 호기심이 생겨서 싼 티아고 데 꼼포스텔라에 왔고 순례길 걷기를 마친 사람들을 만나 본 것으로 만족하고 포르투갈로 떠났었다. 나는 인싸 (인사이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중심이 되는 사람) 는 애초부터 아니었다. 역시나 아싸 ( 아웃사이더, 겉도는 사람 ) 가 편했다. 마찬가지로 네팔 여행도 어슬렁 어슬렁 다니는 구경꾼, 아싸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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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계룡산 자락에 신도안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도를 닦는 사람들과 무속인들이 모여 살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대 말부터 육해공군 본부가 서울에서 신도안으로 이전하게 됐다.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이주가 순조롭게 이루어 졌다. 도인들과 무속인들은 영험한 산 속에 있는 것 보다 산을 가까운 곳에서 바라다 보는 평지가 더 효험이 있고 기도 빨이 잘 받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큰 반발 없이 주변의 논산 지역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난데없이 계룡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네팔에 갈 때의 생각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히말라야의 영산/靈山들을 바라보며 기나 듬뿍 받고 오자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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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8919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세계 일주를 떠난 지 15개월 째 되는 날이었고 41 번째로 도착한 나라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외국인들은 모두가 산에 오르기 위해 가지각색의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나만 생뚱맞게 슬리퍼를 신고 삼소나이트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행색을 보면 등산객은 절대 아니고 그냥 개념 없는 관광객인게 분명 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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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네팔은 도착 비자로 바뀌어서 공항에서 돈을 내면 바로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나는 30불을 내고 15일짜리 단기 체류 허가를 받았다. 힐링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라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히말라야 등반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나서 30 일을 더 연장하면서 50 불의 돈을 추가로 내야 했고 하루를 허비했다. 난 늘 무계획 하고 결정을 미루는 잘못된 버릇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그건 기회 비용을 지불한 것이라고 합리화 하곤 했다. 사실 힐링에서 등반으로 체류 목적을 바꾼 것 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였다. 추가 비용이 아깝기는 커녕,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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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는 매연이 최악이었다.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호텔에는 한국말을 하는 현지인 종업원이 있어서 편했고 한국에서 일했던 네팔리들이 직접 운영하는 한국 식당도 많아서 생활하기는 좋았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포카라로 갔다. 210킬로 거리를 10시간 걸린다기에 믿지 않았으나 직접 타보고 나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시내의 심각한 정체와 국도의 흙먼지 자욱한 비포장 도로는 10시간도 빨리 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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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는 네팔 제 2의 도시로 에베레스트와 히말라야 등반의 출발 도시였다. 30Km 이내에 다울라기,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등 8,000미터가 넘는 고산들이 위치해 있고 이 모든 산들을 한 눈에 조망/眺望 할 수 있는 해발 1.800미터의 사랑곳( Sarangot ) 전망대가 있어서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몰려 들었다. 주변이 평화로운 호수와 웅장한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거기서 윈드폴 이라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다. 매일 한국인 등산객들이 도착해서 하루 정도 장비와 퍼밋 등을 준비하고 달러를 바꾸고 세르파를 구해 바로 등반을 떠났다.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면 보통 하루 정도 정리를 하고 서둘러 귀국하곤 했다. 나처럼 할 일 없이 페와 호수를 바라보면서 허송세월 하는 투숙객은 없었다. 모두가 바쁘고 분주 했다. 나는 매일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카페에 가서 인터넷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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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리들은 한국인들을 모두가 돈 많은 부자로 생각했다. 비싼 장비와 비용을 들여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코스를 마치고 바람처럼 돌아갔다. 빨리 빨리, 전광석화~ 휴식이 아니라 정복이 목적이다. 20년 동안 네팔을 다녔다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이 말 하길 한국인들은 산과 친구 하는게 아니라 노가다 뛰고 간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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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은 나에게 등반을 하지 않고 쉬기만 할 거라면 해발 1400미터에 있는 향자콧이라는 곳에 한국인이 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데 며칠 거기에 가서 며칠 지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택시가 비포장 도로인 산길을 달려 게스트 하우스 문 앞 까지 가기 때문에 고생하지 않고 트렁크나 산중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서 싣고 갈 수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덜컹 거리는 프라이드급의 작은 택시를 타고 무개념 상태에서 첩첩산중/疊疊山中 향자콧으로 올라갔다.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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