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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중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 대학원에 유학,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미국동포 소릴 들으며 산지 17년. 기자로 출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공연기획자, 또 구멍가게 주인으로, 그것도 모자라 연극 연출에 자유기고가로 사는 자유인. 그럼에도 불변하는 한 가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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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凡人)들의 영웅(英雄)

글쓴이 : 앤드류 임 날짜 : 2011-01-16 (일) 06:29:26

오래 전, 미국 지사에 파견된 어느 한국 대기업의 간부를 알게 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의 광고회사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이 한국 대기업의 지사 간부와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어느 한국 자동차의 신차 발표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1,2위를 다투는 규모의 회사에서 미국으로 파견 나온 이 간부는 자부심이 매우 대단했다. 자신을 한국의 엘리트 집단에 포함시키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어느 날 일이 끝나고 사석에서 마주 앉아 그 대기업에서 파견나온 ‘한국의 엘리트’로부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의 ‘엘리트 한국인론’을 듣게 되었다.

“미국 지사에 나와있는 대기업의 간부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예요. 한마디로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인거지. 여기 와서 일년 생활해보니 우리 교민들 참 문제더구만. 다들 생선가게, 야채가게, 세탁소하는 사람들 아니예요? 그러니 그 2세들은 다 구멍가게집 자식들인거지…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 도와 구멍가게에서 세상을 배우니…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한국 교민 2세들을 직원으로 써보니 그들은 완전히 3등 국민의 후손들인거라. 회사내 1등 직원은 한국에서 나온 우리들이고 2등 직원은 미국인들, 3등 직원은 교포 2세들이더라고...”

나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 간부로 하여금 교포 2세들을 3등 직원, 심지어는 3등 국민의 후손들로 여겨지게 했는가. 그들의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가? 융화(融和)를 못하는가?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그러나 그 간부 직원은 나의 이런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고작 한다는 얘기가 “그들이 가장 급여를 조금 받는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급여를 조금 주면 당장 법적인 대응을 하고 노조를 동원해 집단 행동을 하는데 한국인 2세들은 불평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것이 그들을 3등 직원으로 만드는 것인가? 오히려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한다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고 물었더니 그 대기업 간부의 대답이 걸작(傑作)이었다.

“급여를 조금 받으면서도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쥐꼬리 만한 돈도 감지덕지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자신들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된다는 뜻 아닌가?”

그리고는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 교포 2세들, 다 구멍가게집 애들이라니까. 한국에서 구멍가게집 애들 중에 공부 잘하는 애들 별로 없잖아요. 그게 여기 교민사회의 현실인거지…”


 

이 대기업 간부의 ‘교포 2세 3등 국민론’은 결국 업무능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과 지나친 그리고 근거 없는 자긍심(自矜心)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내고는 대화를 멈춘 채 자리를 떴다.

(참고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미국 사회는 어느 대기업의 직원 보다 구멍가게라도 자기 비즈니스를 창업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본다. 사회적으로도 고용을 창출하는 자기사업을 권장하고, 자기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사회적인 승자(Winner)라 부른다. 미국의 꽤 큰 광고회사에서 일하다가 조그만 내 사업을 차렸을 때, 직장 동료였던 미국인 친구가 부러운 눈길로 축하하며 내게 건넨 말이 기억난다. ‘명함에 사장이라고 찍으니 XXX 광고대행사 매니저라고 쓰인 명함 건넬 때 보다는 자부심이 생기겠구나…’)

내가 아는 한국인 2세 아가씨가 있다. 명문 예일대학을 나오고 이왕이면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모 대기업의 미국지사에 입사했다. Young & Rubicam, SONY 등, 세계 굴지의 기업에서 들어 온 제의를 뒤로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명석하고 유능한 아가씨는 그야말로 생활조차 되지 않을 만큼의 급여와 한국에서 파견 나온 자칭 ‘엘리트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다가 끝내 포기하는 것을 봤다. ‘저 이제 모국의 발전 같은 것에 관심 같지 않을거예요.’라고 말하며, 내게 굴지의 금융회사 메릴린치에서 파격적인 조건에 근무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아시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나와 있는 대기업 지상사의 역할에 대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왔으면 자동차를 팔아야한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비싼 돈 들여 미국까지 나왔으면 그 회사 제품을 미국에 팔아야한다. 외화를 낭비(浪費)하며 몇년동안 월 3000불(한화 360만원) 내는 초호화 월세를 살며 가족들과 뮤지컬이나 관람하기 위해 나와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고작 한국 본사에서 한번씩 ‘관광’ 오는 높은 사람들 접대하러 미국에 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실제로 그 대기업의 자칭 ‘엘리트 간부’도 막상 실무에 들어가면 영어를 잘 못해 쩔절매며 나와 교포 2세들에게 통역(通譯)을 부탁하곤 했다. 부탁이라기보다는 항상 명령조였지만…그가 미국 회사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실무라고는 ‘마이네임 이즈 아무개, 아이 엠 제네랄 매니저’하며 명함을 돌리는 일과 회사 돈으로 저녁 대접하는 일 말고는 정말 별로 없었다. 실무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오히려 실무자들이 그 사람의 권위를 위해 일일이 통역을 해주고 보고를 하는 대신, 그 사람을 배제하고 직접 일을 했다면 모든 것이 훨씬 수월했으리라…

그 간부가 일하던 회사는 IMF 이후 파산에 이르러 미국 지사를 철수했다. 그리고 그 간부가 속해있던 부서도 문을 닫았다. 그 이후 나는 그 간부직원이 한국에 돌아갔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2004년 9월이었다. 당시 텍사스에 몸 담았던 박찬호는 유난히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부진한 경기를 보고 마음이 울적했다. 이럴 땐 왜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 동창들 생각이 나는지… 또 그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면 왜 소주 한잔에 삼겹살 생각이 그토록 간절해지는지 모르겠다…어느 한국 식당을 찾아 밤 늦은 시간에 삼겹살에 소주를 시켰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다가와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바로 그 간부였다. 별로 반기지 않는 내 테이블에 내 의사도 묻지 않고 털썩 앉은 그는 역시 묻지도 않은 자신의 근황(近況)을 들려줬다. 한국에 돌아가 취직을 하려다 잘 안돼 다시 미국에 나왔다고…다행히 영주권을 받아놔서 돌아왔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고…

내가 하는 사업이 뭔지를 묻더니 그런 사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돈도 없고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면서… 나는 생각했다. 교포들이나 하는 구멍가게를 왜 하려할까? 그리고 3등 국민이나 하는 쉬운 일이 언제부터 그에게 무얼 어찌해야할지 모를 어렵고 막연한 일이 되었을까?

이 시간에 여기서 왜 혼자서 술을 먹고 있느냐고 묻길래, 그냥 “박찬호 게임을 봐서 그런지, 고향 생각이 나네요” 했다. 이 얘길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박찬호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나는 그만 이 사람의 ‘엘리트론’을 또 듣게 되고 말았다. 잊고 있던 그 역겨운 얘기를 또 듣게 된 것이다.

“오늘 어떻게 됐어요? 졌어요? 에이 거봐 걔는 안돼. 미국 애들같이 안정되게 하는 맛이 없어…걔는 워낙에 한국에서도 잘하던 애가 아닌데 날고 기는 애들만 있는 메이저리그에 와서 그게 되겠어? 포기해야 돼. 걔는 원래 1,2년짜리 투수였지 이제는 안돼…”

사실 나는 박찬호 경기 후 근처 사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왔다. “임 형, 기분이 우울하지? 경기도 안좋고 박찬호도 안풀리고 신나는 일이 없네 요즘… 오늘 경기같은 건 시즌 중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못 던진 것도 아닌데,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가 너무 가혹한 테스트를 받는 것 같아. 텍사스가 플레이오프 나가려고 기 쓰는 상황에서… 못 던진 게 아니라 잘 던지지 못한 건데 말이지… 너무 속상해 하지말자고. 내년이나 돼야 잘할 수 있는 거 아냐? 생각해 봐 그게 정상이야. 우리 사업도 그렇잖아. 911 이후 조금 경기 회복됐다고 갑자기 돈 벌리는 거 아니잖아? 잔뜩 움츠렸던 게 정상으로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점점 나아지는 거지 갑자기 완벽해지겠어?”

그 친구는 이런 말도 했다.

“그나저나 말이야. 내일 스포츠서울 게시판에 또 ‘집어치워라. 박찬호는 끝났다’는 말들이 난무하겠군. 난 말야 그게 더 서글퍼…그게 더 절망하게 한단말야. 우리 선수가, 우리 동포가 다시 일어서려고 이를 악물고 있는데 그리고 그 과정에 있는데…긴 시즌 중에 어떤 특급 투수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부진한 경기 중 하나였을 뿐이데…포기하라고 아우성치고 심지어 나라망신이 어쩌고 하며 욕해대는 내 나라 사람들이 나를 더 우울하게 해. 더 좌절감을 준단말야…”

왜 내 교포친구의 위로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기업의 엘리트 간부를 만나, 그의 박찬호 절망론(絶望論)을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도 상반된 얘기를 두 사람의 한국 동포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대로 우리 교포들은 너무 오래 멀리 떠나 있었던 걸까? 그래서 각박해진 조국의 변모를 모르고 아직도 70년대식 인심을 시대착오(時代錯誤)적으로 품고 살아 온 걸까? 1등이 아니면 안되고 과정이야 어쨋든 결과가 안 좋으면 사정 없이 매질을 당해야하는 현실을 모르고 철없이 살고 있는 걸까?

그 대기업 간부의 말처럼, 엘리트 집안 출신이 아니어서 엘리트가 될 수 없다는 그 간부의 논리처럼, 엘리트 야구 국가 출신이 아닌 박찬호가 너무 큰 꿈을 꾸었던 것일까? 그래서 이제 꿈을 접고, 재기의 노력도 멈추고 모든 걸 다 집어치우고 야구를 그만두어야 하는걸까?

내가 보기에도 박찬호는 별로 재능이 없어 보인다. 그 동안 한국에서 명멸(明滅)했던 재능있는 야구선수들에 비해 박찬호는 투수로서의 하자(瑕疵)가 너무나 많아 보인다. 타고난 컨트롤도 없고 과거 선동열 선수 같은 유연성도 없다. 후천적 노력이 없었다면 박찬호는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단지 쉼없이 달려 만들어진 튼튼한 다리와 끊임없는 단련으로 일군 상체가 있을 뿐, 조성민같은 선수들이 갖추었던 선천적인 정교함이나 유연성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힘도 없어 보인다. 박찬호의 팔꿈치에는 떨어져 나간 뼈조각이 아직도 돌아다닌다. 게다가 척추 협곡증이라는 선천적 결함도 있다지 아마?

조성민이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대형 투수라는 찬사를 들으며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을 때 박찬호라는 이름을 몇이나 알고 있었는가? 박찬호는 실제로 처음부터 가망이 없는 선수였는지 모른다. 맞는지도 모른다 ‘그만두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게 박찬호에게도 편하고 쉬운 길이다. 만일 박찬호가 내 친동생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발 그만둬라. 왜 항상 쉬운 길을 두고 더 어려운 쪽을 가려고하니?'

그러나 어쩌랴 그의 재능은 평범하지만 의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을... 그만둘 그가 아니다. 나 같은 의지박약자 그리고 '집어치우라'고 아우성치는 조국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같은 의지와 야구에의 열정을 가진 박찬호에게 '야구 그만두라'는 야유(揶揄)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만 둘 그였다면, 포기할 그였다면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게 있어 박찬호가 자랑스런 이유는 그가 뛰어난 자질과 선천적인 재능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선수도 갖지 못한 불굴(不屈)의 의지(意志)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아주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邁進)하는 한국인 청년 박찬호가 20승 투수보다 자랑스러운 이유다.


 

박찬호는 오늘도 경기에 나서고 이를 악물고 던진다. 그리고 나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그가 영웅으로 보인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한국 청년 박찬호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저래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즈니스 잘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뉴욕에서 재능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더군다나 엘리트 집안 출신도 아닌 나는, 지지리도 타고난 재능 없는 박찬호가 그러하듯이, 버티겠노라, 싸우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따지고 보면 내가 겪어야 하는 현실이 박찬호의 그 엄청난 중압감(重壓感)과 무시무시한 고통(苦痛)에 어찌 감히 비교될 수 있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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