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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중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 대학원에 유학,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미국동포 소릴 들으며 산지 17년. 기자로 출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공연기획자, 또 구멍가게 주인으로, 그것도 모자라 연극 연출에 자유기고가로 사는 자유인. 그럼에도 불변하는 한 가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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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엇과 나의 스승 김우옥

글쓴이 : 앤드류 임 날짜 : 2011-05-06 (금) 05:07:42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볼 때마다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 하나가 있다. 한국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의 그것에 비해 여전히 수준 미달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요즘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공연되는 뮤지컬들에서 브로드웨이와 같은 강렬한 임펙트와 감동을 얻기 힘들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우들의 가창력은 브로드웨이 출연자들을 능가할 만큼이고 춤 실력도 뛰어난 배우들이 많건만 한국의 뮤지컬들에서 여전히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연극인들이 또 소위 문화, 예술의 식자(識者)들이 거의 한결같이 말하는 이유는 시설의 문제다. 브로드웨이의 극장과 같은 시설이 한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실이 가장 쉽게, 그리고 편리하게 둘러대는 핑계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만일 한국의 연출가를 브로드웨이에 데려다 놓고 극장 안의 모든 메카니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면 과연 브로드웨이 급 공연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메카니즘의 문제만이 제약이라면 기계 장치에 대한 의존 없이 무대를 전환하고 장면을 연출해내는 브로드웨이의 작품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빌리 엘리엇이라는 작품이 있다. 탄광촌의 한 어린이에게서 발레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소년을 영국 런던의 국립 로얄 발레 학교에 보내려는 선생님의 노력이, 이해 부족과 보수적, 패배주의적 사고에 붙들려 그를 반대하는 탄광촌 가족과 충돌하는 내용이다.

공연에서 활용되는 기계적 장치는 오르내리게 설계된 엘리베이터 식의 중앙 무대가 고작이다. 공연 속에서 연출가가 활용하지 않았어도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법한 기계 장치였다.

나머지 대부분의 무대의 전환은 배우들이 직접 처리한다. 무대의 전환 자체가 연기의 일부가 되고 연극성(theatricality)은 숨김없이 노출(露出)된다. 연극의 상황을 현실처럼 보이게 하려는 환영(illusion)의 구현(具現)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듯 보인다.

공연의 압권(壓卷)은 파업으로 맞서는 노조와 경찰의 대립 장면, 오래된 나무 벽이 배우들의 장면 전환에 의해 경찰의 방패로 바뀌고, 시위의 진압은 방패로 무대 바닥을 내리 찍는 굉음(轟音)으로 엄청난 음향효과를 만들어 낸다.

작지만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철조망이 전후좌우로 배우들에 의해 이동되며 철조망 양편에 있는 사람들이 균등한 비율로 그러나 입장이 바뀐 채 무대에 보여진다. 장면 전환을 위한 움직임은 무용과도 같다. 그 자체가 볼거리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다. 철조망이 옆으로 돌아서면 그 두 개의 철조망 사이로 통로가 만들어지고, 그 비좁은 틈을 빌리 엘리엇이 힘겹게 지난다. 절망적 혼돈과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없게 만드는 탄광촌의 아비규환(阿鼻叫喚) 속 이권의 틈바구니를 그 직접적인 피해자인 발레의 천재 소년 빌리 엘리엇이 힘겹게 힘겹게 지나고 있다.

함축성과 장관을 모두 갖춘 이 장면에서 기계 장치는 사용되지 않는다. 배우들이 이동 가능한 장치를 활용해 비싼 기계 장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상을 구축해 낸 것이다. 이 작품 어디에서도 극장 설비나 시설에 관한 연출가의 푸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며칠전 나는 이 공연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연출가 김우옥 박사님과 말이다.

사실 이같은 연출은 내게 새롭지 않다. 이런 장면의 구성과 연출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것도 한국이었다. 기계적인 설비도 시원찮고 덩그마니 무대와 벽만 있는 한국의 어느 극장에서...


  

그 작품의 연출가가 바로 김우옥 박사다.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공연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 실험 연극의 선구자. 그러면서도 청소년 연극에 많은 업적을 쌓으신 내 스승님이다.

 

▲ 80년대 전무후무한 청소년뮤지컬로 김우옥박사의 작품

마이클 커비로부터 시작된 구조주의 연극의 계승자요 실험 연출가였지만, 당신이 연출한 뮤지컬의 장면들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강렬했고 명쾌했고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감동을 준 작품들을 지금보다 더 척박했던 한국에서 이미 만들어 내고 계셨다.



▲ 김우옥 연출의 구조주의 실험극 내물빛

그 분께 내가 배운 한 가지는 바로 구체성(具體性)이다. 창작하는 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명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현해 내거나 형상화하는 일에 구체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드는 이가 구체적이지 못하면 감상하는 이에게 감동은 절대로 없다. 절대로 말이다. 역사에 남은 걸작들은 작가의 구체적인 의도와 계획과 방법에 의해 탄생했다.

 

▲ 유인촌이 출연한 김우옥 연출의 '한강은 흐른다'

예술은 역사적으로 감상주의를 경계해 왔다. 구체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하지 않은 창작과 평가의 자세는 심지어 감상의 자세까지도 예술로부터 사람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론적 토대와 미학적 근거에 대한 훈련 없이 예술에 접근하고 심지어 창작과 평가를 하려든다면 예술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모호하고 어려운 대상이 되고 만다. 고호의 회화, 피카소의 작품 그리고 앤디 워홀의 팝아트, 어느 부분에서 모호하고 값 싼 센티멘털리즘이 발견된단 말인가.

 

▲ '한강은 흐른다'의 한 장면

기준 없는 전문가들의 비지성적인 평가가 예술적 업적은 물론, 사생활마저 형편없던 어느 배우를 대배우로 둔갑시키고 영화계의 자유인이요 이단아를 자처할 뿐, 미학적 가치를 찾아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양산한 어느 감독을 대가로 만들고 만다.

말이 나온김에, 그런 감독분께 묻고 싶다.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지 않는지, 그것을 이룰 자신이 없는 것이지...아니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작품이 나오면 그 작품을 제도권 밖에 내어 놓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는지... 영화로 벌이를 못해 가난해야할 그 감독님은 무슨 돈으로 영화를 만들고 생활하는지... 궁극적으로는 제도권 밖으로 밀려 날 수 밖에 없는 흔히 말하는 소외된 자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아는지 말이다.

저 예산 영화가 다 독립영화가 아니듯이 난해한 작품성(작품성이라는 표현조차 꺼려지는)이 예술성의 척도(尺度)가 될 수 없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이 모두 예술성때문에 상업성을 포기한 작가의 의도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주류의 주변을 서성이는 이들이 모두 뜻이 있어 제도권으로부터 벗어난 예술가들로 포장되어서도 안 된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예술적 완성도도 높게 평가 받는 창작품들이 얼마든지 있다. -빌리 엘리엇이 분명 그렇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그들은 공연 예술의 진수와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마음껏 펼쳐내 보이고 있었다.-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의 실험 연극들을 보신 적이 있는가? 그 첫 느낌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볼만하다는 것이다. 이해가 어려워도 공연 예술가는 이해를 바라거나 의도하지 않는다. 보고 즐기고 뭔가 느껴진다면 느끼라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구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느끼라고 만든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모호한 것 같아도 보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라는 의도와 그 구현의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다. 감상의 가치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도다. 감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


 

▲ 최민수가 출연한 '방황하는 별들'의 한 장면

브로드웨이의 연극을 볼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구체성과 과학적인 계획을 강조하셨던 연출가 김우옥 박사가 생각나고 이내 그와 대비되는 어느 한국의 연출가들과 문화전문가들이, 독립영화 감독들이 생각나고 그리고... 한숨이 나온다.

예술에도 기준이 있다. 미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적 체계가 근간(根幹)으로 마련되어 있다. 미학은 아는 사람, 감상 할 줄 아는 훈련된 감상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감상을 돕기 위한 창작자들의 훈련 매뉴얼에 가깝다. 불성실과 무성의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무지는 언뜻 답이 없어 보이는 예술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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