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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중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 대학원에 유학,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미국동포 소릴 들으며 산지 17년. 기자로 출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공연기획자, 또 구멍가게 주인으로, 그것도 모자라 연극 연출에 자유기고가로 사는 자유인. 그럼에도 불변하는 한 가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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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뜨거운 감자탕

글쓴이 : 앤드류임 날짜 : 2010-10-23 (토) 14:52:35
 
뉴욕에 기가 막힌 감자탕집이 있다. 지금은 번화한 거리로 이사를 했지만 전에는 몇 사람 들어가 앉을 만한 좁은 식당이었다. 그것도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의 뒷골목 한켠에, 아는 사람만 찾아 갈 법한 후미진 자리에 말이다. 뉴욕 뒷골목의 명소였다.



 


오랜 만에 친구로부터 감자탕이나 한 그릇하자는 전화를 받고 문뜩 아버지와의 추억(追憶)이 떠올랐다. 아버지와의 많은 기억이 낚시 여행에서 만들어 졌다. 그리고 감자탕이 떠오르게 해 준 아버지와의 추억 하나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버지와 낚시를 가는 날이면 너무나 들뜨곤 했다. 형이 있었는데도 아버진 유독 막내인 나를 낚시 친구로 선택하시는 적이 많았다. 형도 낚시를 만만치 않게 좋아했는데 굳이 나를 데리고 가신 것은 제일 어린 막둥이가 이뻐서였겠지만 아마도 내가 아버지께 무언가 배우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주말 오랜만에 아버지께서 낚시를 가자고 하셨고 난 당연히 기쁜 마음에 따라나섰다. 가장 작은 낚시 가방을 내 어깨에 매어주시고 여느 때처럼 나선 새벽의 낚시길… 낚시터에 도착하셨을 때 아버진 출출하셨는지 내게 물으셨다. “너 감자탕 안먹어봤지? 아주 매운데 먹어 볼래? 너 매운 거 잘 먹잖아?”


매운 음식 아니라 쓴 음식도 맛있게 느껴질 아버지와의 낚시 여행에서 가릴 것이 뭐고 안먹어 본 감자탕이면 어떠랴. 좋아라하며 아버지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감자탕을 시키신 아버지는 내가 잘 먹을지 걱정하시는 눈치였다. 당신은 드시지 못하고 내가 잘 먹고 있는지를 살피셨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불면서 먹어라” 하시면서 굳이 내 숟가락을 바라보셨다.


큰 고추가 있으면 건져내시고 “이건 맵겠다 먹지말아라” 지금 생각엔, 새벽길에 감자탕 집이 보이자 아마도 드시고 싶으셨던 가보다 하지만 ‘막내는 잘 못먹을텐데’ 라는 생각에 내내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 본 감자탕이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 못하셨던 게 분명하다.


처음 보는 감자탕은 의외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덩어리째 들어있는 버얼건 감자들도 그렇지만 큼지막하게 들어있는 뼈들에 먹음직하게 붙어있던 고기덩어리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국물을 살살 떠먹다가 본격적으로 먹어보자 싶었는지 아버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벌겋게 고추국물이 밴 감자를 한 입 베물었을 때 불덩어리를 입에 넣은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


다시 뱉으면 될 것을 얼결에 그 뜨거운 감자를 삼켜 버린 것이 문제였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감자가 뱃 속으로 들어가자 가슴 위쪽까지 뜨거워져 오고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어쩔줄 몰라했다.


아버진 놀라신 얼굴이었지만 늘 그러셨듯이 침착하셨다. 테이블에 있던 찬물을 내게 마시게 하시곤 등을 탁탁 두드려주셨다. 뜨거운 기운이 내려가자 입 천정이며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다행히 뜨거운 기운을 가라 앉혀서 진정은 됐지만 놀란 가슴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정작 놀라신건 아버지였지만 내가 진정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을거야 놀라지마 괜찮을거야”를 반복하셨다.


아버지가 소매로 볼을 훔쳐주고서야 눈물이 났었던 걸 알 수 있었을 만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안심할 수 있었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강한 사나이였던 아버지가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아버지에게 실망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 뜨거운 감자를 뱉지 않고 삼켜버린’ 부끄러운 일을 친구분께 말씀하시는 걸 듣게 된 것이다.


“얘가 감자탕을 먹다가 뜨겁게 달궈진 감자를 그냥 베물은거야. 이 녀석이 뜨거우면 뱉어야지 그걸 글쎄 꿀꺽 삼키고선..어쩔 줄 몰라하면서 얼굴이 벌개져서 말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고 팔짝팔짝 뛰는거야.”


대략 이런 식이었다.


사실 고백하건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더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다 기억해 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직 내가 가슴에 담아둔 얘기는, “이 녀석이 뜨거우면 뱉어야지 그걸 글쎄 꿀꺽 삼키고선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얼굴이 벌개져서 말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고 팔짝팔짝 뛰는거야” 하신 부분, 오로지 이 부분이었다.


괜찮다며 안심시켜 주고 차가운 물로 고통스런 가슴을 식혀주셨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내 창피한 꼴을 흉보고 계신 것이었다. 배신감(背信感)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버지께 살갑게 대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무슨 말을 물어보면 퉁박스럽게 대하고 그 좋아하던 낚시도 한동안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 대학생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그런 동안에도 난 감자탕을 보면 뜨거운 감자에 놀랐던 어릴 적 기억과 아버지께서 친구분께 그 말을 하실 때 느꼈던 창피함이 묻어나곤 했다.


내가 자라는 동안 내 부모가 늙어 간다는 것을 자식들은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내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아닌 친구들과 낚시를 가고 감자탕을 먹으러 다니는 사이 아버지는 늙어가신다고 생각하지 못한 걸까? 아버지 바지춤을 잡고 쫓아다니는 대신 여자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속삭이는 동안 내 아버지가 늙어 아파지시는 것을 난 왜 알지 못했던 것일까?

 
 


어느날부터인가. 아버지가 친구분한테 하셨던 긴 말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집사람은 없지 아이는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못쉬지… 그런데 내가 놀란 기색을 보이면 애가 더 놀랄테니까 그냥 덤덤한 척하면서 괜찮아 괜찮아 했지. 찬물이 생각나더구만 좀 마시게 했더니 진정이 되더라구. 말로는 괜찮아 괜찮아 했지만 정작 괜찮지 않은 건 나였어. 식도에 화상이라도 입었으면 어쩌나…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자네 상상해보게 아이가 뜨거워서 가슴을 움켜쥐는 거… 괜히 내가 먹고 싶어 어린애에게 감자탕을 먹인 내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지… 정말 막내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난 그 놈 없으면 못산다 못살어. 나랑 똑같은 놈인데.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하고 나를 제일 따르고 항상 나를 쳐다보고 배우려고 하는, 딱 어린 시절 내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녀석이야. 너무 나 같아서 어떤 땐 속상할 때가 있어...”


내가 미국에 유학 와 사업을 차리고 돈 버는데 정신 없는 동안 아버지의 지병은 깊어지셨고 몇년만에 나를 만나 흐느끼시던 아버지는 그로부터 일년 반 후에 돌아가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뵌 아버지는 산소호흡기(酸素呼吸器)를 부착한 채 의식이 없으셨다.


어렸을 적 건장하고 멋지던 그 사나이가 아니라 작고 여윈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는 한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감자탕을 즐기고 그 안에 있는 큰 덩어리의 감자를 후후 불며 잘도 베물어 먹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좋은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비도 추적추적 오고… 오늘 일 끝나고 와. 감자탕이나 같이 먹자.”


아버지가 생각났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왜 아버지가 친구분께 하신 말씀 중 다른 구절이 생각나는 걸까.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아버지와 감자탕에 대한 기억이 아니고 말이다. 


“.. 정말 막내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난 그 놈 없으면 못산다 못살어. 나랑 똑같은 놈인데.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하고 나를 제일 따르고 항상 나를 쳐다보고 배우려고 하는, 딱 어린 시절 내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녀석이야...”


천국에서 감자탕은 드실 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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