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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김 라일락과 씨앗주권

글쓴이 : 훈이네 날짜 : 2012-05-05 (토) 22:49:12

처음 꽃봉오리가 맺힐 때는 진보라색을 띠다 봉오리가 열리면서 옅은 라벤더색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활짝 피면 강렬한 향기를 내며 백옥같이 하얀색으로 다시 변신합니다. 이 신비로운 꽃나무는 酷寒(혹한)의 날씨에서도 잘 견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원예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바로 미스김 라일락입니다.

 

요즘 미스김 라일락에 대해서 많이 들으셨지요? 뉴스로에서 여러차례 보도된 것처럼 환경운동가 백영현 1492그린클럽 회장님이 라일락 보급운동을 펼치시면서 미스김 라일락이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백영현 회장님이 뉴욕 할렘의 공립학교(PS 57)에 미스김 라일락 두그루 등 총 네그루의 라일락 나무를 기증하는 현장 사진들을 소개하면서 미스김 라일락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 앞에 보이는 건물이 PS57 입니다. 학교 앞에서 미스김 라일락 한그루를 들고 가는 김은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백영현 회장님이 미스김 라일락을 한그루 더 가져오셨다고 하네요.

 

미스김 라일락이 뉴욕시에선 처음으로 이 학교에 기증된 것은 이 학교 과학선생님인 김은주 한미교육회 회장님의 제안덕분인데요. 미스김 라일락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교장선생님이 흔쾌히 동의해 이뤄진 결실입니다.


▲ 학교안은 6월에 열리는 행사를 앞두고 여러가지 장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스김 라일락은 작지만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이 마치 우리네 정숙한 여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통의 라일락보다 키가 훨씬 작지만 가격은 그 두배라고 하니 ‘라일락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법 합니다.

 

▲ 백영현 회장님이 미스김라일락 등 기증하는 나무를 놓고 이학교에서 환경교육프로그램을 하는 미국원예협회 강사 앤 페드키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네요. 

 

아시겠지만 미스김 라일락은 한국이 원산지입니다. 본래 털개회나무라고도 하고, 흰정향나무라도 하고, 수수꽃다리라는 어여쁜 이름도 있습니다. 1947년 미 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인 미더라는 사람이 북한산 기슭에서 이 꽃나무를 발견해 열매 12개를 몰래 따내 미국에 가져갔는데 이중 7개가 꽃을 피웠답니다. 그후 품종 개량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미스김 라일락입니다.

 

▲ 도심에 있는 학교라 정원이 사각형 형태로 건물 가운데 아담하게 조성돼 있습니다. 

 

▲ 이름도 '꿈의 정원(Garden of Dreams)'이라고 하네요.

 

미스김이라는 이름은 당시 미더의 부탁으로 꽃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타이프를 쳐주던 한국여성의 성이 ‘김’씨여서 붙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미더가 불법 채취(당시 한국엔 관련법도 없었지만)를 했지만 이 라일락의 고향을 잊지 않게 해준 것은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스김 라일락의 사연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가슴을 치는듯한 아픔과 애처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머나먼 미국땅까지 와서 미국인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미스김 라일락을 보면서 수많은 입양인들의 삶이 떠올랐기때문이지요.

 

▲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네요. 김은주선생님이 맡고 있는 사이언스 클럽 6~8학년 학생들입니다.

 

 

젖먹이에 혹은 걸음마을 할 무렵, 낯선 미국에 와서 미국 가정에서 미국인으로 자라지만 남들과 다른 외모에 정체성의 混沌(혼돈)을 겪는 입양인들. 모국의 따스한 체취가 그리워 돌아보지만 모국은 그들에게 편견의 시선을 드리우며 또다른 이방지대가 되기도 합니다.

 

▲ 백영현 회장님이 학생들에게 미스김 라일락의 역사와 라일락 나무를 기증하게 된 취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스김 라일락 또한 1970년대 미국에서 역수입돼 수십년만의 한많은 귀향길에 올랐지만 그녀의 국적은 미국으로 로열티를 주고 수입하는 미국꽃으로 생각되었지요. 일부는 우리꽃이 아니라며 경원시하는 등 흡사 變節(변절)한 사람처럼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 이 학교의 이스라엘 소토 교장선생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이제 공식적인 기증순서입니다.

 

▲ 기증하는 라일락은 미스김 라일락이 두그루, 페르시아 라일락과 프렌치 라일락이 각 한그루입니다. 앞에 작은 라일락들이 바로 미스김 라일락입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미스김 라일락의 잘못인가요?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이 땅에서 지켜주지 못한 잘못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식물에 대한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미국인 식물채집가 미더는 북한산에서 우연히 수수꽃다리를 발견한게 아닙니다. 이미 그는 수수꽃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꽃인줄 알고 있었고 그 종자를 미국에 가져가기 위해 작심한 채 나섰던 것입니다.

 

▲ 백회장님이 라일락을 심을 자리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합니다

 

▲ 학생들도 참여해야 더 라일락을 아낄 수 있겠지요. 백회장님이 원하는 학생을 나오게 해서 삽을 건네주었습니다. 처음엔 좀 서툴렀지만 이내 잘하더군요.

 

 

한반도를 식민지배한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20세기초부터 수많은 식물자원을 무단채취했습니다. 저 유명한 아놀드수목원이 1917~1919년 식물학자들을 한국으로 파견해 한라산에서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식물을 샅샅이 조사해 300여종의 식물종자를 채집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미 미더는 한반도가 식물자원의 寶物倉庫(보물창고)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소토 교장선생님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네요.

 

 

더 한심한 일은 1985년과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농무성 산하 국립수목원과 홀덴수목원은 한국 학자들의 안내를 받아가면서 한국산 식물을 대량으로 搬出(반출)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설악산의 눈잣나무를 가져갈 때는 헬기까지 동원했다고 하는군요.

이 기간 총 950종의 토종 식물종을 미국으로 搬入(반입)해갔는데요. 이 일은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자생종이 해외로 반출된 사례라고 합니다.

 

▲ 김은주 선생님이 취재나온 동포방송국 KBN 기자와 인터뷰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식물채취에 열을 올렸을까요. 수출할때마다 엄청난 로열티를 챙기는 미스김 라일락의 경우처럼 그들이 수탈한 식물자원을 적당히 개량해 정식으로 등록하면 그들의 것이 되기때문입니다.

 

 

미국은 80년대 한국에서 반출한 능소화로 ‘모닝캄’을 만들어 지금도 세계에 비싼 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 국립식물원의 베리 잉거 박사가 전남 홍도에서 채집해 간 옥잠화는 ‘잉거 비비추’라는 이름으로 1993년 미국 비비추 협회에 신품종으로 등록돼 세계 원예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 이제 다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미스김 라일락들을 앞에 두고 수고한 분들이 기념촬영을 합니다.

 

놀라운 것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한라산과 지리산 특산물인 구상나무는 1904년에 유럽으로 반출돼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받고 있으며, 하늘말나리, 털중나리 등 우리 토종을 교배해 얻은 나리꽃들은 이제 우리나라가 해마다 400여만 달러를 지불하고 수입하는 실정입니다.

 

석유 석탄 등 지하자원만 자원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식물자원이 있는 땅에서 살면서 정작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원의 가치를 정작 우리만 잘 모르고 있습니다. 꽃 이름을 아는 이들도 많지 않고 우리 국화인 무궁화도 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세계 각국이 식물 유전자원의 확보 및 신품종,신기술 개발을 놓고 치열한 種子(종자)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만 너무 안이한 대처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요.

 

겨우 4년전인 2008년에야 대한민국 환경부는 제2의 미스김 라일락을 막기위해 기존의 생물자원 528종에 320종을 더한 것을 국외 반출 승인 대상 생물자원으로 추가 지정했습니다.

 

우리의 식물자원이 수탈된 역사와 함께 돌이켜지는 것은 문익점의 목화씨입니다. 1363년 고려 때 문익점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 몇 개를 붓대 속에 숨겨 몰래 들여 와 이를 장인 鄭天益(정천익)과 함께 고향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후 우리나라의 복식 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고, 온 백성들을 추위로부터 생명을 지켜 주었습니다. 우리에겐 애국이었지만 그로인한 댓가라고 위안하기엔 너무도 큰 손실이자 애통한 식물자원의 수탈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농가에서 재배하는 고추, 딸기, 토마토, 파프리카 등을 비롯, 각종 과일과 화훼 등 식물자원과 관련해 막대한 로열티 지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스김 라일락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씨앗 주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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