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42가 버스 터미널. 표를 샀다. 퍽 이른시각 임에도 두 사람이 같이 앉을 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만석은 아닌데 승객 대부분이 일행 없이 혼자 가는 이들 일색에다가 두자리씩을 차지해버려서 동행끼리 같이 앉을 자리가 없다.
모두가 한 체격들 하는 덩치이고 보니 차마 어느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讓步)해 달라는 말을 못할 상황으로 보여 30분 기다렸다 탈까 하다가 시간을 아낄 겸 해서 빈자리들을 찾아 앉아 가기로 했다.
독립기념일을 낀 황금연휴. 널리고 널린게 렌터카 회사들이건만 연휴동안 맨해튼에 빌릴 수 있는 차량이 한대도 없다고 했다. 어디로든 잠시 나갔다는 오고 싶은데 어디로 튈까? 궁리를 하다가 버스가 매 30분 있으며 두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무엇보다 넓은 해변이 있는 곳으로 남쪽으로 행선지를 골라 잡았다.
▲ 버스가 도착하는 곳에는 여러가지 안내 전단이 있다. 전단지 속에는 높은 금리의 급전에 관한것들도 많다고 한다..
저만치 도시가 보이고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버스 안은 일순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공연소식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과 더불어 ‘당신이 바로 오늘 행운의 주인공’ 임을 암시하는 듯한 상업 간판들이 도로에 나열(羅列)해 있는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못 상기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서로가 오랜 지기라도 된듯 말을 트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지는가 싶더니만 독립기념일을 맞아 특별한 행운이 자신을 향해 올 것 같다는 환상을 내비치는 이도 보였다. 그래 독립기념 헌장에는 삶, 자유 그리고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고 했지 아마? 그런데 어쩌면 하나같이 행복을 꿈꾸는 장소가 카지노인가 싶으니 씁쓸하기도 했다.
카지노 호텔 내의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서자 승객들은 서로의 행운을 비는 덕담(德談)들을 기분 좋게 나눠 가지며 들뜬 표정으로 버스를 내렸고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삽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조금은 황당한 기분이 되어 정류장을 둘러 보았다. 돌아갈 시간표를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정작 시간표도 걸려있지 않고 물어볼 직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축 늘어진 어깨, 멍한 표정에 시선을 허공에 둔 사람들, 밤을 꼬박 샜는지 퀭하니 들어간 눈들, 허기지고 피로해 보이는 이들까지 모두가 어둡고 허탈해 보이는 모습들 일색이었다. 한눈에 봐도 그리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 차림이었고 갓 이민 온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보였으며 지치고 고단해 보이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아, 여기가 바로 도박(賭博)의 도시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애틀란틱 시티(Atlantic City)가 아닌가? 마치 영화에서 보여주던 화려한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버스 정류장에서 실감나고 현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확 느껴졌다.
정류장 곳곳에서 누군가가 피곤한 몸을 쉴 요량으로 가로로 눕기라도 하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하는 이가 보이면 즉시 어디선가 경비원이 쏜살같이 달려와 그들의 자세를 고쳐 세우거나 바로 앉게 하곤 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들었던 회의감은 금세 잊었다. 난생 처음 카지노가 있던 곳에 발을 들여 놨을 때 영화에서 보던 그 별천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던 그 당시의 흥분이 엊그제 같았다. 슬롯머신이 뭔지 모를 때였지만 뭉툭한 기계 속에서 ‘챙챙챙챙~’거리며 마구 쏟아지던 동전들을 마치 마술이라도 보는양 넋을 놓고 쳐다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문인지 카지노는 더러 매력적으로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또한, 탁구공 보다 큰 둥그런 손잡이를 쭉 아래도 잡아당기는 재미와 그 둔탁하게 제자리로 올라가던 기계에 대한 추억도 살아났다.
그래서 그럴까? 카지노에 들어서면 게임기에서 나는 온갖 종류의 소리며 현란하고 요란한 장식과 조명들이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 부산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묘한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게임이든 도박이든 사람사는 세상에 더불어 있기 마련인데 이왕이면 즐겁게 잘 활용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둘러 바닷가로 나섰다. 해변은 구름이 짙었지만 눈이 부셨다. 독립기념일 연휴라 그런지 해변가에는 성조기 처럼 레드(Red), 화이트(White) 그리고 블루(Blue) 파라솔과 길게 눕는 의자들, 파도타기를 즐기는 수영객들, 짙은 선글라스와 심각한 노출(露出)을 자랑하는 비키니 족들, 남의 시선일랑 아랑곳 하지 않고 편한대로 드러누워 햇볕을 즐기는 이들, 모래성을 쌓았다 허물었다 노는 깔깔대는 아이들을 보며 비로소 한 여름의 바닷가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좋았다. 비록, 끈끈하면서도 습한 소금기 묻어나는 바람이었지만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열린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과 신선함에 환호했다. 모랫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파도소리 들어가며 냉장고 청소하듯 대충 챙겨온 화려하지 않은 도시락을 까먹는 분위기도 덩달아 즐거웠다.
▲ 도시락을 쌌다기 보다는 냉장고 잔반을 처치했다고 해야 맞을 얼렁뚱땅 도시락이지만 바닷가에서 먹는 맛은 꿀맛이다.
▲ 0.5 mm 길이의 보라색 조개. 파도에 쓸려 내려 갈 때 마다 모래속으로 숨느라 바쁘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도 보고 탄탄하게 다져진 모래사장을 걸어도 보면서 우리도 모른채 늘 입고 있는 생활속의 긴장과 여유없는 마음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쇼핑몰도 구경하고, 음악에 맞게 춤을 추는 분수 쇼도 감상하고, 군것질도 하고, 냉커피 하나 들고 시원한 실내에 기대 앉아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맛도 좋았다.
▲ 해변의 남녀커플이 한 여성의 수영복이 풀리는 응급상황이 발생하자 수습하느라 부산하다.
무엇보다 한 밤중 열린 공간에서 보는 불꽃놀이는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늘 고층 빌딩 속에서 사이사이 감질나게 멀리 쳐다보던 것과는 달리 거칠 것 없이 확 트인 하늘로 쏘아 올리는 폭죽의 굉음(轟音)도 즐거웠고 머리 바로 위 쯤에서 터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불꽃놀이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다 좋았다. 볼거리가 많아서 눈도 즐거웠고, 모처럼 바닷가 모래사장을 밟으며 갈매기 떼 들과 더불어 산책한 시간도 너무 편안했고, 카지노 안에 들어가 웃어가며 ‘'각오한(!) 기부’도 할 수 있도록 놀게 해준 다양한 기계들도 고마웠고, 오랜만에 들어가 본 해산물 뷔페 에서도 얼마나 맛나게 먹었던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렌터카를 쓸 수 없었던 불만도 잠시 잊고서 버스 타고 온 덕분에 주차 걱정도 덜고 톨게이트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 아닌가. 무엇보다도 돌아가는 길 걱정없이 늘어지게 자고나면 집에 도착해 있을 테니 이 아니 좋은가 싶었다. ‘그래 휴가란 바로 이런 맛이야’ 라는 생각이 들자 즐거움이 마구마구 상승되고 있었다.
물론, 이때까지만…..딱, 여기 까지만!
▲ 제목/ Figure. 폐지에 색연필/ 2010 설명/ Why not me! 나라고 행운이 안온다는 법 없지. 자, 가자 잭팟을 향하여!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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