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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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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轉禍爲福)의 지혜(智慧)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0-08-04 (수) 08:39:15


한때 코 큰 백인만 보면 ‘미국인’으로 호칭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미국이 우리에게 큰 존재로 각인(刻印)된 탓이었겠지만 미국인이 아닌 당사자들은 좀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제가 이따금 이곳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인(誤認)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히스패닉이라는 중남미출신 이민자들도 그렇습니다. 여기 사는 한인들은 ‘히스패닉’ 혹은 ‘라티노’ 라고도 하지만 ‘멕시칸’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습니다. 히스패닉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멕시칸이기 때문이겠지만 출신국을 지칭하다보니 오해와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본래 히스패닉(Hispanic)이란 용어는 이베리아 반도를 지칭하는 로마인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에스파냐 왕국이 세워진 이후 포르투갈을 제외한 에스파냐와 사람들의 문화를 가리키게 됐고 오늘날은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 출신자로 통용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히스패닉은 중남미 20개국 전체를 아우르는 셈인데 모두를 멕시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발(妄發)인 셈이지요. 우리끼리 있을 때는 뭐라 부른들 상관이 없겠지만 한인사회와 히스패닉 사회와의 연대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결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영업 종사자가 많은 한인사회는 인종적으로 주류 백인이나 흑인보다는 히스패닉과 직간접으로 부딪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식당과 마켓, 야채상, 델리가게, 세탁소, 이삿짐센터, 건설현장 등 히스패닉을 쓰지 않는 업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낮은 인건비에 여러 가지 손기술이 많고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 이들을 한인업주들이 선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만큼 히스패닉에 대한 상식도 필요합니다.

대개 한인들은 궂은 일을 많이 하는 그들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조사에 따르면 25세 이후에 미국에 온 히스패닉은 40%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언어‧문화의 문제로 단순노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히스패닉도 그 안에선 다양성(多樣性)이 존재합니다. 멕시코를 비롯,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페루 등 여러 곳에서 온 히스패닉이 서로 간 일터에서 부딪히는 일들이 많다보니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멕시칸과 에콰도르 출신자들이 대체로 사이가 안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업주는 에콰도르 출신은 다소 계산적인 반면 멕시칸들은 대체로 단순한 스타일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습니다. 그의 평가(評價)가 주관적이긴 하지만 히스패닉을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로 생각한 저로선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하기야 40년 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 때문에 전쟁도 벌였는데 오랜 역사와 문화,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의 기질(氣質)이 형성되는 광활(廣闊)한 대륙의 사람들을 뭉뚱그려 평가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인종적 다양성에 관해서 한결 깨인 눈을 갖고 그들의 언어와 정서, 문화를 존중해주는 세심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벌어지는 일을 보면 뉴욕의 일부 정치인과 관계자들은 한인사회 정도는 깡그리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플러싱 한인타운의 미래가 걸린 공영주차장 문제를 철저히 개발업자의 눈높이로 갈아 엎는데 앞장 선 피터 쿠라는 중국계 시의원이 그렇습니다. 만일에 이번 개발안으로 그가 소유한 다섯개 약국의 고객들이 감소한다면 과연 찬성을 했을까요? 설사 개인적 손해가 없다해도 명색이 플러싱을 대표하는 시의원이라면 주민과 상인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척 연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40년 역사의 유니온 한인상가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 되버린 상황에서 보름전엔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유니온상가 앞길에 정부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업체가 중국어 배너광고를 일제히 내건 것입니다.

 

이미 플러싱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는 메인스트릿과 키세나블러바드를 놔두고 한인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손바닥만한 거리에, 대놓고 중국어 배너를 걸어놓은 것을 보면 이제 한인들은 나갈 준비를 하라는 최후통첩(最後通牒)은 아닌지 헷갈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초심이 있기때문입니다. 시련에 좌절하지 말고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다른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때로 희망은 예기치 않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입니다. 플러싱 한인타운의 보루(堡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며 화를 복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합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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