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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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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에 온 지리산청학도인들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09-25 (일) 12:48:23

“도인은 맨해튼의 유엔본부를 찾아가 명사들을 만나는 게 아닙니다. 돌섬에 가서 갈매기와 벗하고 지내는 뉴욕의 도인과 고담준론을 나누는 게 훨씬 낫지요.”

제주도의 이어도를 비롯하여 오복동 식장산 신도안 등 옛 부터 한국에는 신비의 유토피아가 많았다. 그중 지리산 청학동(靑鶴洞)을 제일로 쳤다. 해발 800미터의 지리산 산속에 양전옥토(良田沃土)가 널려있고 하얀 구름사이에서 푸른 학이 날라든다는 청학동. 신라의 최치원은 청학동에서 도를 닦다가 신선이 됐다는데 고려조의 이인로는 청학동 가는 길을 이렇게 읊었다.

“두류산 둘레에 저녁 구름 잠겼는데/ 일만골짝 일천바위는 회계산을 닮았도다.

지팡이 짚고 청학동을 찾으려하니/ 건너편 숲속에선 원숭이 울음소리만 가득하네

누대는 보일듯 말듯 삼산 밖에 아득하고/ 이끼 낀 네글자만 희미하구나.

묻노니 청학동이 어디 메뇨/ 꽃잎만 어지럽게 흘러 더욱 난망하여라”

청학동훈장 원광(圓光) 서형탁이 천기(天氣)를 전하려 뉴욕을 찾았다. 1983년 12월 1일 자시(子時-새벽 한시)에 한국에 천운(天運)이 내렸단다. 인류공멸의 핵(核)의 시대에서, 더불어 사는 화(和)의 시대로 세계는 바뀌게 된다. 따라서 한국은 영세중립 평화통일로 가야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50년안에 세계의 중심국이 되는데 이를 유엔에 알리러 온 것이란다.

일행 4인의 모습이 특이했다. 청포를 입은 원광(圓光) 서형탁과 덕전(德田) 문서기는 청학동 숲속에 사는 푸른 학의 모습이다. 묘연(妙緣) 정영숙은 천지의 기가 흐르는 중년의 미인. 통역 이세윤 양은 째즈를 작곡하는 젊은 세대였다.

단장격인 서형탁은 20에 입산하여 40년간 도를 닦고 있는 산신령급의 도인이다. 그가 펴낸 “거울 내안에 있다”는 성현(聖賢) 수준의 단상문이다. 전에 누가 나에게 국전작가의 서예 작품을 준적이 있었다. 흘려 쓴 한문이 어려워 걸어놓기만 하고 해득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던 원광은 지(枝)자가 빠졌노라고 지적까지 하는게 아닌가? 그의 실력이 그러했다.

한문시를 즐겨 쓰고 시조에 능통한 원광은 현대시까지 쓰는 문인이었다. 그가 쓴 산행시(山行詩) ‘덕유산’(德裕山)이 그럴듯하다.

“仁者(인자)는 樂山(요산)이요/ 知者(지자)는 樂水(요수)로다

山高者(산고자)는 積石故(적석고)요/ 水淸者(수청자)는 有活源(유활원)이라

아마도 仁知兼備(인지겸비)는/ 德裕君者(덕유군자)인가 하노라“

9월 17일 밤 후러싱에서 퍼포먼스가 있었다. 한반도 영세중립화통일운동 뉴욕본부(석운 김경락)가 마련한 이벤트였다. 청학도인들은 하늘춤을 추면서 중화(중립화통일)사상을 강연했다. 청중은 20명 미만. 그래도 내용은 진지했다.

 

이틀 후 19일 유엔광장에서 2시간짜리 퍼포먼스를 갖기로 했다. 세계의 눈이 지켜보는 유엔본부광장 앞에서 말이다. 영세중립화통일을 유엔이 추진해 달라는 메시지를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낸다. 각 언론사에 알렸으니 사람들이 많이 올테지!

청학도인들이 한 주간 머무는 동안 나는 4번이나 참석했다. 사상은 다르지만 순수한 인간미가 좋았다. 보다는 존경하는 석운이 하는 일이라서 몸으로라도 도와야 했다. 통일꾼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따라다닌 셈이다.

9월 19일 나는 아침 일찍 돌섬을 출발했다. 전철을 타고 맨해튼을 돌고돌아 유엔 본부를 찾아갔다. 약속한 아침 10시인데 유엔본부는 전쟁터처럼 살벌했다. 공연장으로 허락된 유엔광장은 폐쇄돼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엔본부를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맥이 빠져버렸다.

“우리 한인타운 브로드웨이로 가서 합시다. 사람들이 많기야 거기가 제일이지요.” 브로드웨이가 있는 맨해튼 34가를 찾아갔다. 거리광장에 마당극을 펼치려 북소리를 울렸다. 구경꾼들이 몰려오기 전에 먼저 가게주인이 달려왔다.

“이분들은 약장사꾼들이 아닙니다. 세계의 수도 뉴욕 맨해튼에서 인류평화를 위한 로변제(路邊祭)를 공연하러온 한국의 도인들입니다.”

그래도 서양주인들은 청학도인들을 개 몰듯 했다. 여기저기 쫓겨 다니면서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었다. 겨우 지하철입구 모서리에서 마당극을 펼쳤지만 신명이 나지 않았다. 모두 맥이 풀려 지쳐있었다. 그때 동강(지인식 목사)이 돌섬에나 가자고 긴급 제안을 한 것이다. 돌섬주인인 나는 즉석 환영.

“원래 지리산 심심산곡에 묻혀 도를 닦고 지내는 청학도인들은 영원히 구름과 숲속에 있어야 합니다.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은 권력과 부귀를 좋아하는 세속인들이 찾는 곳이지 신선들이 찾을 곳이 못되지요. 다행이 뉴욕에도 세속에 물들지 않은 바다와 갈매기가 있는 돌섬이 있으니 우리 모두 거기로 갑시다”

내가 사는 원베드룸 노인아파트에 7인이 들이닥쳤다. 비좁을 터인데도 고향집에 돌아온 어린애들처럼 좋아했다. 우리 부부가 여름내 잡은 꽃게만으로도 점심은 진수성찬(?). 아내가 정성스레 담근 게장과 꽃게젓갈에 꽃게탕까지 끓였으니!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밥 한그릇이 꿀떡이었다.

맨해튼 인심에 쫓겨 다니느라 지치고 시장하던 참이라 시장이 반찬이었던 것이다. 청학도사들을 환영하겠다고 누가 생막걸리를 내놓았다. 꽃게탕을 안주삼아 막걸리가 들어가자 청학도인들은 일어나 덩실덩실 신선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간도처 유청산(人間道到處 有靑山)이라 했소. 도인들이 있는 곳은 그 어디나 청학동이니 오늘은 돌섬이 청학동이외다. 마음껏 즐기시오.”

“청학동은 지리산에만 있는 줄 알고 우리는 지리산에 처박혀 지냈소이다. 그런데 뉴욕에 와보니 등촌이 계신 돌섬도 청학동이군요.”


우리는 돌섬 바닷가를 거닐면서 어린 시절을 떠들었다. 해가 기울자 원광은 허리를 굽혀 콜라병에 모래를 퍼 담기 시작했다. 돌섬의 추억을 담아가려는 소녀처럼. 그리고 돌섬을 떠나 가버렸다. 저 멀리 수평선 넘어 구름 속으로 날라가 버린 갈매기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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