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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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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나는 술마시는 목사가 되었나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11-10 (목) 09:10:55


10년 만에 고국에 갔더니 고향산천 4천만이 모두 반기는데 그중에도 초등학교 동창들이 극성이다. 서울에 사는 12명이 천하진미(天下珍味)를 대접하겠다고 역삼동으로 끌고 갔는데 놀랍게도 개고기 집이었다.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 세개가 이곳에 나란히 있지. 갈비로 유명한 버드나무집 오리고기전문 대나무집 그리고 보신탕전문인 이집이야”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사자가 먹다버린 말고기를 뜯어먹듯 개고기를 잘들 먹어댔다. 난 역겨워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한점 집어 입에 넣어봤더니 금방 토해 낼것 같았다. 여우의 식탁에 초대받은 두루미처럼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목사님이라 개고기 먹는 요령을 모르는군. 이걸 한잔 쭉 마시고 나면 개고기 맛이 과자 맛이 될 거야”

하얀 물을 한컵 따라주기에 단숨에 쭉 들이켰다. ‘처음처럼’ 이라는 소주였다. 속에서 불이 나면서 하늘과 땅이 흔들흔들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되더니 개고기 맛이 켄터키 후라이치킨처럼 먹을만 해졌다. 적벽강에 배를 띄우고 친구들과 술과 고기로 풍류를 즐긴 소동파가 된 기분. 이날 모임이 즐거웠다.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변비가 사라진 것이다. 나는 변비족(便秘族)이었다. 변비약을 먹거나 풀럼을 7개씩 먹고 자야 다음날 아침 겨우 대사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 변비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변비약을 안 먹었는데도 말이다. 날아갈듯 기분이 좋았다. 그 후부터 나는 며칠에 한 번씩 몰래 포도주를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그랬더니 변비에서 해방. 그러나 목사가 술을 마셔야 하니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어릴 때 부른 찬송가 생각이 난다.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라/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 될까 늘 두렵다// 아, 마시지 말라 그 술/ 아, 보지도 말라 그 술/ 우리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느니라”

미국으로 돌아와서 선배 K목사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했다. 그는 큰 교회를 목회하다가 은퇴한 뉴욕교계의 지도자다.

“개고기 파동이후 변비를 핑계로 포도주를 마시고 있으니 이를 어쩌지요?”

“걱정 말아요. 난 매일 술병을 끼고 사는 목사이니까”

그는 껄껄 웃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심장 동맥이 막혀 수술을 한 그에게 의사가 술을 권했다.

“혈액순환을 위해 목사님은 매일 포도주를 한잔씩 드셔야합니다”

“예”하고 나왔지만 목사가 어떻게 술을 마셔? 한 달 후에 병원엘 갔더니 의사가 진찰해보고는 노발대발.

“목사님의 혈관이 다시 조금씩 막혀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왜 포도주를 안 마셨어요? 포도주 마시는 걸 죄로 생각하시는 군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위장병을 위하여 조금씩 포도주를 마시라고 했다는데요. 자고로 동양에서는 노인들에게 술을 약주(藥酒)라고 불렀지요.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마비에 약한 노인들에게 술이 아주 좋은 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심장병에 죽지 않으려면 꼭 포도주를 마셔야해요”

그 후부터 K목사는 포도주를 대놓고 마신다는 것이다. 술 마시는 목사가 나 말고 또 있구나!


www.en.wikipedia.org 

이번 한국 길에 백 권사를 만나지 못하고 온게 마음에 걸린다. 초등학교 동창인 그녀는 내가 부흥회 인도한다는 소식만 들으면 버스로 50리길을 달려와 주던 열성팬이었다. 그때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와 안수기도를 받곤 했다. 총신대를 졸업한 그 아들이 미국유학을 끝내고 돌아와 서울의 대형교회 부목사가 됐다. 아직 40전인데 성공이 보장된 셈이다.

친지들이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축하해준다고 아산만 회집으로 초대했다. 생선회를 맛있게 먹은 아들목사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또 한사람도 죽었다. 사인은 식중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다. 왜 2명만 식중독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소주를 마셨던 것이다.

“생선회는 소주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이니 한잔 들게나”

그러나 목사가 술을 마실 수 없었다. 크리스챤인 또 한사람도 목사를 따라 술을 사양했다. 날로 먹는 생선회는 식중독에 걸리는 수가 있는데 소주를 마시면 해독(解毒)이 된다는 것이다. 생선회 뿐 아니라 모든 고기에는 그런 위험이 있다. 술은 해독작용을 한다. 그래서 고기는 술과 함께 먹어야 안전하고 고기 맛도 나게 마련이다.

“하나님, 술 안 마신 사람은 살고 술 마신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젊은 며느리와 토끼같이 어린 손주들을 두고 졸지에 가버린 아들 죽음에 백 권사는 충격에 빠져버렸다. 2년 전 일인데 그녀는 아직도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온 내가 전화로 불러도 만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원시원하고 믿음이 좋은 백 권사가.

술은 마시면 안 되는가? 나의 술 철학은 이렇다.

가난한 사람, 몸이 병든 사람, 포악한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집안이 망하고 알콜 중독자가 되어 몸이 망가지고 주사(酒邪)가 심하여 주변을 해치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 덕망이 높은 사람은 술을 마셔도 괜찮다. 지금은 도박이나 주식투자로 망하지 술값으로는 집안이 망하지 않는다. 건강하면서 성인병이 있는 사람에게 술은 건강보조식품 역할을 한다. 철학자나 문인들에게 술은 해주(害酒)가 아니라 예술의 수단이다. 그래서 고승들은 술을 곡차(穀茶)라 부른다. 철학의 대부 플라톤은 학술세미나 장소에 항상 술과 음식을 마련했다. 그래서 그의 세미나를 향연(饗宴)이라 했다.

한국이 병들고 가난했던 시절 술은 패가망신의 독주였다. 그런데 세계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은 술이 건강문화로 진화했다. 여자들도 술을 마신다.

어쩌다 나는 술 마시는 목사가 됐다. 술은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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