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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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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제왕등극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11-18 (일) 08:06:11

 

태풍 샌디가 다녀 간지 20여일이 지났다. 산더미로 몰려와 아파트를 흔들어 대던 파도는 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물러가 버렸다. 그런데도 돌섬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골목마다 쓰레기 더미다. 거리에는 물에 잠겨 망가진 차가 폐차(廢車)로 버려져 있다. 파도가 밀려올 때 지하층에서 잠을 자다가 문을 열지 못하고 물에 잠겨 죽은 노파이야기도 들려온다.

 

11일 주일. 다니는 미국교회에 가보니 전기가 끊겨서 어둡고 추웠다. 평소 150명 출석인데 13명이 모였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우리는 모두 울었다. God Bless America 와 America America를 부를때도 그랬다. 에레미아서를 찬송가로 작곡한 “Is there no balm in Gilead?" 를 부를때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For the hurt of the daughter of my people I am hurt/ I am mournig: astonishment has taken hold of me/ Is there no balm in Gilead/ is there no physician there?"(렘8:21-22)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 하리로다”(렘9:1)

 

눈물의 선지자 에레미아의 심정을 처음 이해되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전기는 들어오지만 인터넷 TV 전화가 불통이다. 거리에 파킹한 나의 애마 렉서스가 바닷물에 잠겨 익사(?)하는 바람에 나는 앉은뱅이 신세가 됐다. 내가 두문불출(杜門不出)하자 정순원 정재현목사가 찾아왔다.

 

“돌섬 입구에서부터 외부차량 진입금지더라구요. 목사님 인적사항을 들이대고 사정하여 겨우 들어왔어요. 전화 인터넷 TV가 안 나오고 차까지 망가져 나 다닐 수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세요?”

 

그들은 내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처럼 절해고도(絶海孤島)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죄수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차가 망가져버리고 TV도 못보고 인터넷 전화를 못 하니 꼭 제왕이 된 기분이라네. 자네들 어디 임금님이 촐싹거리면서 뛰어다니고 걸어 다니는 거 봤나? 내시나 궁녀들이 발 뒤끔치를 들고 폴짝 폴짝 사뿐사뿐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지. 조정대신들도 임금이 부르면 발이야 나 살려라! 허겁지겁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거지. 어디 임금님이 체신머리없게 밖으로 나 다니던가? 임금님은 구중궁궐 대궐 깊숙한 옥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라네. 내가 이번에 꼭 돌섬나라의 임금으로 등극한 기분이야”

 

내 말을 들은 두명의 정목사는 세종대왕앞의 좌정승 우정승처럼 목을 길게 뽑았다.

 

“하하하하!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폐하! 임금이나 독재자들은 함부로 나 다니지를 않지요. 천하의 모택동도 생전에 외국에 나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니까요”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들이 돌아가자 난 정말 임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궁궐에 앉아서 신하들이 올려다 주는 상소문 읽는 게 전부인 임금님처럼 나는 책 읽는 게 전부다. 밤낮없이 책만 읽었다. 눈이 나빠지고 얼굴은 핼쓱하게 말랐다. 머리 둘레가 콕콕 찔러오는 걸 보니 편두통까지 생긴 모양이다.

 

"대궐 안에 처박혀 임금노릇하기 힘들구나. 차라리 대역죄를 짓고 바닷가로 쫓겨나 유배(流配) 생활하는 게 훨씬 낫겠다. 자 바다로 가자“

 

바다로 걸어 나갔다. 바람이 먼저알고 불어온다. 파도가 밀어다주는 바닷바람이다.

 

“아! 시원하다”

 


 

바람을 좋아하는걸 보면 난 임금체질이 아닌것 같다. 어릴때 고향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왼 종일 똥 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종이 있었다. 의관정제하고 높은 대청마루에 앉아 시조를 읊고 있는 양반이 신선처럼 보였다.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돈을 벌은 종은 거금을 주고 양반자리를 샀다.

 

그런데 양반노릇하기가 녹녹치 안했다. 언행심사 일거수일투족이 느리고 점잖아야 했다. 뜨거운 한여름인데도 무거운 관모를 쓰고 바지저고리에 버선을 신고 부처님처럼 얌전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긴 장죽으로 담배를 빨아드리는데 답답하고 뜨거워 죽을 노릇이었다. 그때 아랫길에서 일하는 종들이 보였다. 엉덩이가 들어나 보이는 떨어진 잠뱅이를 걸친 머슴이 똥 구루마를 끌고 있었다. 얼마나 시원할까? 부러워 보였다.

 

“아! 옛날이여”

 

양반은 고관에게 달려가 양반벼슬을 반납하겠다고 사정했다.

 

“죽어도 양반노릇 못하겠습니다. 종노릇 하는게 훨씬 편하고 자유스럽습니다.”

 

고관이 껄껄 웃었다.

 

“이놈아 양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녀. 양반 노릇하기가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고”

 

난 돌섬양반이 아니다. 임금은 더욱 아니다. 돌섬의 머슴일 뿐이다. 요즘 돌섬 길은 쓸쓸하다. 태풍 샌디가 30리 보드워크의 중간 중간을 끊어서 엉망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보드워크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뒹굴고 있다. 돌섬은 폐허를 걷는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高麗) 5백년의 영화가 사라져간 개성의 폐허를 읊은 원천석의 시조. 유배지의 저녁 호수에 배를 띄우고 지국총을 읊은 윤선도 생각도 난다. 역적으로 몰려 남녁 바닷가로 유배당하고 보니 찾아오는 친구가 없다. 고관으로 잘나갈 때는 구름처럼 몰려왔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그는 자연을 친구삼아 시를 읊었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피바람을 일으키면서 10년 폭정(暴政)을 휘두르다가 강화도로 쫓겨간 연산군은 화병으로 6년 만에 죽는다. 강화도의 숲과 바람 꽃과 새들과 친할수 있었다면 연산군은 피로 얼룩진 과거를 씻어내고 착하게 거듭났을 텐데. 솔로몬의 부귀영화가 들꽃 한송이 만 못하다고 한 예수님 생각이 난다.(마6:29) 그래도 샌디가 할퀴고 지나간 돌섬 바닷가에 아직 들국화가 몇 송이가 피어있다. 바닷물에 젖어 향기는 많이 시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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