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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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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겨울바다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01-26 (토) 13:59:14

 


 

“오늘처럼 추운 겨울에는 바다에 나가지 마세요. 당신처럼 심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갑자기 찬바람을 받으면 심장마비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의사가 말했어요. 겨울에는 동면(冬眠)하는 곰처럼 따듯한 방안에 꼭꼭 숨어 숨만 쉬고 지내는 거예요. 그러다가 따듯한 봄이 돌아오면 그때 바닷가로 나가요”

 

“곰이야 한 겨울 굴속에 웅크리고 앉아 마늘을 까먹다 보면 예쁜 처녀로 둔갑한다는 전설이라도 있으니 석달 겨울을 웅크려 지낼만 하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예쁜 여우같은 당신이 있는데 겨울 곰 노릇할 이유가 있을라구?”

 

그래도 아내의 막무가내에 막혀 갇혀 지내야했다. 아파트가 원 베드룸 좁은 공간이라 할 수있는게 별로 없다.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침실로 들어가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침대에 누워 시집을 읽어본다. 그래도 겨우 두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이 일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눈만 쓰는 일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눈이 나빠져 갔다. 심심한 입을 달래느라 군것질을 하다 보니 과체중이다. 무기력증에 빠져 자도 자도 졸음이다. 변비도 생겼다. 머리도 무겁다. 편한 감옥생활인 셈이다. 아내가 후러싱에 나간 어느 날. 나는 감옥을 탈출하는 신창원처럼 아파트를 빠져나와 바다로 걸어 나갔다.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8분만 걸으면 나타나는 돌섬바다. 바닷바람이 차갑게 불어오자 심장에 통증이 왔다. 지난해 수술을 각오하고 심장촬영을 해봤다. 다행히 수술단계는 아니란다. 프라스틱동맥을 낄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음식조절하고 체중을 빼라는 처방(處方)을 받았다. 그런데 피곤하면 심장에 반응이 오곤 했다. 오늘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니 통증이 겹쳐 오는 기분이었다.

 

‘에라, 이참에 바닷바람으로 좁아진 동맥을 시원하게 뚫어주자..’

 

보드워크 위를 달렸다. 더 아프다. 더 뛰었다. 7분쯤 뛰었더니 몸에 땀이 났다. 뛰느라고 깜빡 잊어버렸는지 신기하게 통증이 사라져버렸다. 모래사장으로 내려가서 동쪽으로 걸어갔다. 지난번 샌디태풍이 바다 밑에 깔려있는 모래를 긁어 올려 비치에 쏟아 부었다. 그래서 비치가 배로 늘어났다. 보드워크 복개(覆蓋)도로는 엉망으로 날라가 버렸지만.

 


 

나의 해변걷기는 모래밭으로 걸어가서 보드워크로 걸어오기다.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걸어간다. 난 원래 걷기를 싫어하는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6년 동안 매일 3킬로를 걸어 다녔다. 중학교 가는 길은 6킬로도 더됐다. 책에 보니 양반은 가마를 타고 하인들만 걸었다. 장군이 백마를 타고 거들먹거리면 졸병들은 졸졸 따라붙어 걸었다.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들도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 걷고 있었다. 걷는다는 건 굴종(屈從)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동차를 타면서 걷는 게 좋아졌다. 걷다가 발이 아프면 쉬면서 뒤돌아본다. 걸어온 길이 얼마나 멋진가? 서울에서 성남까지 걸어가 봤다. 하루 종일 뉴욕을 걸어 다니기도 했다. 해 뜰 때 퀸즈를 출발하여 브루클린 맨해튼을 거쳐 퀸즈로 돌아오면 해가 저물었다.

 

돌섬의 겨울해변은 혼자 걷는 길이다. 음산한 회색(灰色)의 겨울바다에는 아무도 없다. 해 마저 희색 구름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여름 태양이 햇빛을 뿌려주면 하얀 파도로 몰려다니던 푸른 바다는 어디로 갔는지? 갈매기들도 날지 않는다. 모래언덕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날개로 몸을 가려 바닷바람을 막고 있다.

 

모래를 밟고, 바닷물을 보고, 하늘을 봐도, 아무소리도, 아무생각도, 들리지 않는다. 여름해변에서 느꼈던 뜨거운 사랑도, 환희의 즐거움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평안하다. 쉼을 체험하는 것이다. 무상(無想)의 경지(境地)인가? 무애(無涯)의 지경(地境)인가?

 

가장 무서운 고독은 군중속의 고독이라 한다. 신유(神癒)의 여종으로 유명한 캐더린 쿨만은 미녀 부흥사였다. 항상 빨간 코트를 입고 강단에 서는 그녀는 섹스어필로 유명했다. 그녀가 설교할 때 마다 수많은 청중들은 열광하면서 성령을 체험하고 난치병이 낫곤 했다.

 

그런데 밤 설교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면 그녀는 허전하여 몸부림쳤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알콜과 약으로 버텨야했다. 끝내 그녀는 알콜 중독으로 생을 하직했다. 아마추어 부흥사 노릇을 하면서 나도 꽤 경험해본 소치다. 인기에서 떠나고, 권력에서 떠나고, 철저한 자기고독을 걸어갈 때 인간은 행복하다. 그게 겨울바다 걷기다.

 

한 시간을 걸으면 돌아가는 삼각지. 돌아가는 길은 보드워크를 걷는다. 집에 도착하면 왕복 2시간. 뜨거운 욕조(浴槽)속에 들어간다. 어머니품속에 안긴 아기처럼 편안하다. 겨울 바다 걷기가 처음에는 힘들었다. 열흘쯤 계속 걸으니 이젠 즐겁다. 겨울바다 걷기에서 얻어낸 소득.

 

변비가 없어졌다. 푸럼을 복용하고 고구마를 먹어야 했던 변비. 알고 보니 변비는 운동부족에서 오는 노인병이었다. 체중이 줄어들고 머리가 상쾌해졌다. 심장통증도 점점 좋아져가고 있다.

 

엊그제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하얀 점퍼를 꺼내 입고 바다로 나갔다. 4년 전에 구세군 센터에서 20불을 주고 산 중고품이다. 모자까지 덮어쓰는데 옷이 커서 무릎까지 덮는다. 흰 눈이 하얗게 덮인 비치를 걸어가면 누가 봐도 흰 북극곰이다.

 

설국(雪國)을 밟으며 한 시간을 걸어가서 되돌아온다. 바다로 뻗어나간 검은 돌무더기 사이에 흰곰 한마리가 먹잇감을 찾고 있는게 보였다. 영락없이 눈 덮인 알라스카의 설원(雪原)을 헤매는 흰 북극곰이다.

 

‘왠, 북극곰이지?’

 

가까이 가보니 그 북극곰은 아내였다. 아내가 바위틈에서 조개를 잡고 있었다.

 

“당신이 하얀 점퍼를 꺼내 입고 나가기에 나도 흰 점퍼를 입고 몰래 뒤 따라왔지”

 

“하하하하”

 

“호호호호”

 

우리는 곰 두마리가 되어 하얀 눈밭위를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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