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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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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이 바로 입춘대길이더라”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04-11 (목) 12:36:01

 

“목사님. 이곳 버지니아는 워싱턴 DC의 벚꽃이 만발한 봄입니다. 목사님 계신 돌섬에도 봄이 왔겠지요?”

 

버지니아 숲속에서 봄소식을 전하는 해암의 전화였다.

 

“웬 걸요. 여긴 아직 춘래불사춘입니다.”

 

북방 흉노추장 호한야(呼韓邪)는 당나라 황제에게 공주를 달라고 어거지를 쓴다. 흉노는 만리장성을 맘대로 넘나드는 사나운 오랑캐족이다. 황제는 화가 모연수에게 후궁들의 얼굴을 그려 올리게 했다. 모연수는 뇌물을 바치지 않은 왕소군을 추녀로 그렸다. 못생긴 떡을 개에게 던져주듯 황제는 왕소군을 공주로 속여 보냈다. 양귀비 왕소군 달기 서시는 중국의 4대 미녀다. 모연수의 뇌물농간에 미녀를 빼앗긴걸 뒤늦게 안 황제는 모연수를 참했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흉노 땅으로 팔려간 왕소군은 고국의 봄을 그리워 하다가 35세에 죽는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圭)가 왕소군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춘래불사춘이란 말은 이래서 생겼다.

 


 

“아유, 목사님 곁에는 왕소군 저리가라는 미녀사모님이 계십니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는 에덴농장과 아지랑이 사이를 걸어가는 30리 보드워크가 있는데 춘래불사춘이라니요?”

 

“지난해 10월에 밀려온 태풍 샌디로 돌섬은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어요. 우리 부부는 농부가를 부르면서 씨를 뿌리려고 비료를 사오고 농기구도 새로 작만 했답니다. ‘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아, 그런데 아파트 사무실로부터 이런 통보가 왔지 뭡니까?

 

‘지난해 샌디태풍 때 밭이 1미터이상 바닷물에 잠겼습니다. 짠 소금물이 흙속에 스며들어가는 바람에 흙속에서 살고 있는 유기농 벌레들이들이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흙에 영양가가 없어지고 대신 독이 생겼어요. 그래서 금년은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그리 아세요’

 

“봄이 왔으되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춘래불사춘이지요.”

 


 

비록 30평짜리 조각 밭이지만 에덴농장은 황금알을 낳는 우리 집 종합농장이다. 지금도 우리는 밭에서 수확한 걸로 만든 갓김치와 무우김치를 먹는다. 그런데 금년은 졸지에 폐농가정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 춘래불사춘일 수밖에.

 

“여보 봄이 꼭 밭에만 있나. 봄을 찾아 바다로 나갑시다..”

 

나는 실망해하는 아내 손을 잡고 바다로 나갔다. 지난해 샌디태풍으로 바다도 상처투성이다. 보드워크도 망가지고 숲속 길도 모래둔덕이 됐다. 샌디 태풍이 바다속에 깔려있는 모래를 박박 긁어내어 숲속에 뿌려버렸기 때문이다.

 

꿩소리가 들려오던 숲속 길이었다. 아침이면 롱아일랜드쪽에서 날라온 장끼와 까투리가 “꿩꿩”소리치면서 숲속으로 기어들었다. 하루종일 숲속에서 사랑놀이를 즐기던 꿩 부부는 해가 지려고 하면 푸드덕 거리면서 서쪽으로 날아갔다. 샌디태풍으로 풀숲이 망가지니 이놈들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종달이 한 쌍이 구름 속에 숨어서 봄을 노래하고 있다.

 

“종달이가 노래하니 봄은 봄이로구나.”

 

주변을 살펴본다. 샌디태풍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건 깡그리 망가트려놓았다. 단층집 울타리 자동차 농장 심어놓은 가로수 정원 꽃밭 보드워크를 휩쓸어버렸다.

 

그러나 자연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하늘 구름 바람 햇빛 물은 말짱하다. 우리는 모래를 밟으면서 비치를 걸어갔다.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걸었다. 푸른 물위로 하얗게 밀려오던 파도가 발고락위까지 올라오다가 밀려간다. 밀려오는 듯 하다가 밀려가 버리는 썰물. 밀려가 버리는 듯 하다가 밀려오는 밀물. 밀물은 밀려가버리면서 조금씩 밀려온다. 썰물은 밀려오는 듯 하면서 조금씩 밀려가고. 밀물 썰물의 계산법이 아름답다. 아내가 중얼거렸다.

 

“여보, 봄의 햇빛과 바람이 아름다워요. 바다 위를 흐르는 하얀 파도, 하늘 위로 떠다니는 흰 구름도 아름다워요. 자연은 아름다워요..”

 

“자연처럼 아름다운 게 없지. 그러나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면 인간만사 세상만사가 모두 아름답지. 무너진 보드워크를 고치는 인부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소. 샌디태풍이 몰고온 쓰레기를 주워 담는 자연봉사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소. 우리도 샌디태풍을 아름답게 받아드리는 거예요.”

 


 

집에 와보니 둘째 딸 은범이의 앤서링(answering)이 기다리고 있었다. 웬일로 전화했을까?

“아빠 샌디태풍 보상본부 훼마(FEMA)에서 돈을 보내왔어요. 석달전 샌디태풍으로 망가진 렉서스자동차 보상금이 나왔어요.”

 

“얘야 얼마나 나왔니?”

 

아내는 액수가 제일 궁금했다.

 

지난해 샌디태풍으로 우리는 자동차가 망가져버렸다. 5년 전에 2001년 형 렉서스를 6500불을 주고 샀다. 8만5000마일을 달렸는데 너무 싸고 너무 성능이 좋았다. 강아지처럼 애마처럼 애지중지했던 우리집 가보였다. 그런데 지난번 샌디태풍때 바닷물에 잠겨버렸다. 고쳐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결국 버려야 했다. 얼마나 보상금이 나올까? 훼마에 보고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6500불에 사서 4년을 탔으니 잘하면 3천불 아니면 2천불정도 나오겠지”

 

그런데 은범이의 목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아빠, 9800불이 나왔어요. 9800불이나 나왔다구요.”

 

“웬일이냐? 6500불에 사서 4년동안 탔는데 9800불이 나오다니? 얘야 내가 200불을 보태서 너에게 줄테니 네가 10000불을 채워서 가져라.”

 

우리부부는 둘째딸에게 10000불을 빼앗겨 버렸지만 여간 즐거운게 아니었다. 아내가 멋지게 두 개의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연결했다.

 

2013돌섬의 봄은 춘래불사춘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입춘대길(立春大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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