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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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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목사의 은퇴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05-11 (토) 13:19:39

 

“이목사, 나 안창의목사야. 오는 5월 19일에 우리교회에서 내 은퇴식을 해.”

 

“그래?”

 

안목사의 전화를 받는데 나도 모르게 혀가 떨떠름했다. 아내가 의아해 했다.

 

“여보, 당신은 목회 은퇴한 걸 좋아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친구의 은퇴도 좋아라고 축하해줄 일이지 왜 떫은 감 씹는 표정인가요?”

 

“은퇴도 은퇴 나름이오. 나처럼 돈도 없고 교인도 많지 않은 목사는 은퇴하기가 아주 쉽지. 외투를 벗어버리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운 몸이 되는거요. 그러나 안 목사처럼 큰 교회당건물에 수백명 모이는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에게는 은퇴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야.”

 


photo by James Chung

 

돈 없는 이는 죽을 때 유서(遺書)쓰기가 쉽다. 아니 쓸 필요가 없다. 부자는 유서를 써놓고 도 말썽이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하여 법적으로 완벽하게 써놓는다. 그래도 죽고나면 자식들이 유산 쟁탈전을 벌린다. 임금님의 은퇴는 더하다. 내란을 각오해야한다. 은퇴한 부왕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왕자들이 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요즘 큰 교회의 목사은퇴는 임금님의 양위(讓位)만큼이나 어렵다. 왕자의 난을 방불케 하는 장로그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은퇴한 선임목사는 후임목사에게 태상왕 노릇을 하려고 든다. 그래서 후임목사가 견디지 못하고 쫓겨 나간다. 아니면 교회가 쪼개진다. 목사가 은퇴하면서 많은 교회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안목사의 전화를 받고나서 마음이 아려온다. 나처럼 훌훌 털어버릴 은퇴가 아니라서 그럴까? 그보다도 안목사가 친구이기 때문일게다. 안창의목사는 내 친구다. 우리는 고향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교단도 다르다. 그런데 친구다.

 

24년 전인 1989년이었다. 킌즈블러바드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 있는 퀸즈중앙교회에서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사회 보는 담임목사가 인상적이었다. 세련돼 보이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고 순수해 보였다. 하얀 누에눈썹에 제왕(帝王)의 기풍이 서려있었다. 이민 온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나에게는 아주 높은 자리에 있는 분처럼 우러러보였다. 그후 어디서 인사를 나누게 됐다.

 

“목사님은 몇 살이십니까? 난 41년생입니다.”

 

난 처음만나는 사람에게 고향과 나이를 묻는 버릇이 있다. 남자는 물론 여자에게도 묻는다. 고약스런 취미라고 아내는 악풀을 달지만 난 즐겁게 묻는다. 고향과 나이가 뭔가? 학교까지 묻는다. 그러면 금방 친해지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실수하거나 미움 받아 본적이 없다. 관상을 보고 묻기 때문이다.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에게만 묻는 것이다. 교만하고 포악해 보이는 사람에게 그걸 물었다간 큰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학교는 더 까다롭다. 공부를 잘했을 성 싶은 이에게만 묻는다. 그래서 안목사에게 나이를 물어본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그는 덥석 내손을 잡았다.

 

“나도 41년생이오. 우리 친구네.”

 

그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된 것이다. 동갑내기 친구가. 오랜만에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난 듯 우리는 반가웠다. 내친김에 더 물었다.

 

“난 고향이 평택이야. 그리고 동도공고 야간을 나와 나사렛신학교를 졸업했는데 안형은?”

 

“난 순천이 고향이야.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공대를 나온후 장신을 했어.”

 

“와! 호남명문 순천고교를 졸업했으면 당연히 서울공대를 봤을 테고, 그만 낙방하여 한양공대로 갔구먼-”

 

“그래 그래. 안 봐도 비디오지.”

 

우리는 타향에서 만난 고교동창생처럼 즐거웠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들려오는 전화목소리는 깊고 무게가 있었다. 작은 목회를 하면서 내가 신문에 독자투고를 하면 안목사부부는 애독자가 돼주었다. 내가 ‘멀고먼 알라바마’란 책을 냈을 때는 교회로 불러주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태풍 샌디가 돌섬을 덮치고 지나갔다. 달포 넘게 구호품이 밀려들어왔다. 안목사 부부는 구호물자(?)를 가득실은 차를 몰고 왔다. 쌀포대 홍삼엑기스 페퍼타월...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급스러운 것들뿐이었다. 내가 큰 재난(災難)을 당한줄 알고 달려온 것이다.

 

‘재난을 당할 때 우정을 알아본다더니....‘

 

안창의목사는 내게 그런 친구다. 그가 19일 은퇴를 한다.

 

어제 우리부부는 뉴저지로 은퇴목사 나비관광을 다녀왔다. 뉴욕교협이 어버이 주간에 은퇴목사님들을 모시는 효도관광이었다. 교협회장 김종훈목사는 임원들과 함께 첨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시중을 들었다. 착하디 착한 효자들처럼...

 

뉴욕 뉴저지에 사는 은퇴목사 부부는 수백명일텐데 46명이 참석했다. 우리부부가 참석한걸 보고 반가워해주는 분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여간해서 목사들의 모임에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25년 동안 뉴욕에 살면서 교협총회에 두 번, 목사회 총회에 두번 나간게 전부다. 그런데 지난해에 은퇴목회자 롱아일랜드 야유회를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일년에 한번씩은 은퇴교역자 모임에 나가기로 하자.’

 

은퇴교역자 모임에 나가보니 동창회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동창회는 순수하지 않은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느라 시기 질투하면서 경쟁했다. 주먹을 쓰는 녀석들 때문에 참 괴로웠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수십 년이 지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돼서 만나보니 그렇게 좋았다. 모두가 착하고 순수하고 어린애 같았다. 그래서 난 동창들을 만나는게 좋다.

 

은퇴목사회는 목회동창회라는 생각이 든다. 순수해 보인다. 착해 보인다. 목회할때 교인 끌어 모으느라고 그렇게 심술 사납던 얼굴도 착해 보인다. 목회할 때 분장하고 다니던 인위 위선 가식의 모습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착하고 순수해 보인다. 부부대화록.

 

“당신 5월 19일 안창의목사님 은퇴식에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안 갈 거야. 그 대신 목회동창회에서 반갑게 만나야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51:03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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