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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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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아름다움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3-08-15 (목) 10:34:02

“목사님은 금년 여름 돌섬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아침나절에는 밭에 나가고 오후에는 바닷가를 걸어다니며 지내지요.”

 

“지난해 샌디태풍으로 돌섬이 폐허(廢墟)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밭은 폐쇄되고 바닷가 보드워크는 망가졌을 텐데요? 그래도 걸어 다니며 볼만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나요?”

 

“그럼요. 폐허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지요. 금년 여름은 폐허의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으로 지낸답니다.”

 

 

   

 

 

 

지난해 10월의 샌디태풍으로 돌섬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30리길 보드워크는 걸어 다닐수가 없게 됐어요. 토막나버린 뱀이 기어가보려고 꿈틀거리다 죽어버리듯 돌섬 보드워크가 그 짝입니다. 중간 중간이 잘려 나가 자꾸만 막힙니다.

 

돌섬 옆에 새섬이 있습니다. 섬 가운데 민물호수가 떠 있고 섬 둘fp로 바다가 둘러 있는 새들의 천국이지요. 새섬을 걷다가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취하여 내가 애정소설 '하얀갈대'를 쓰기도 한곳입니다. 얼마 전입니다. 돌섬에 놀러온 독자와 ‘하얀갈대의 무대’가 잘 있는지 새섬을 찾아가 봤습니다.

 

아름다운 민물호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그 자리에 시궁창 갯벌이 들어와 있네요. 샌디태풍에 호수가 날라가 버린겁니다.

 

남쪽으로 걸어가보니 섬길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둑이 잘려 나간게 아니라 땅이 갈라져 나간 겁니다. 갯벌에 널려있던 갯흙들이 밀려들어가 호수를 메꿔 버렸습니다. 거울처럼 맑은 민물호수는 회색의 갯벌 시궁창이 돼버렸습니다. 호수를 자맥질하던 그 많던 새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새섬은 폐허(廢墟)입니다.

 

그래도 나에게 제일폐허는 돌섬농장입니다. 400세대가 사는 아파트 파크 곁에 50개의 가든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12평씩 칸칸이 막아놓았습니다. 놀이터(Children garden), 꽃정원(Flower garden), 농장(Vegetable garden)을 만들게 하지요.

 

나는 2개 반을 얻어 '에덴농장' '아리랑농장' 간판을 달았습니다. 10년 먼저 온 박씨는 70평의 대농장(?)을 운영합니다. 우리둘은 해마다 짭짤하게 수확을 올려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뉴욕 농장경연대회에서 아리랑농장의 수박이 은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샌디태풍으로 농장이 파괴돼버렸습니다. 간판이 날라가 버리고 칸막이가 무너져버렸습니다. 바닷물에 잠겨 소금땅이 돼버렸습니다. 땅에 독이 생겼다고 농장폐쇄조치를 내렸습니다.

 

“눈이 녹으면 대형경운기가 와서 땅을 깊이 파서 엎어 버릴 겁니다. 그렇게 서너차례 하고나면 소금독이 빠져버려 금년이라도 가든을 오픈하게 하지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그러나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경운기도 불도저도 오지 않습니다.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아침이면 농장으로 나가봅니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잡풀이 무성한 폐허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자꾸만 보니 폐허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잘 만들어 진 작품은 첫눈에 아름다움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고고학유물이나 낡은 역사유물은 자꾸만 봐야합니다. 그래야 역사의 바람이 보이고 한숨이 보이고 진실이 보입니다. 돌섬에 봄이 오자 나는 아침마다 폐허가 된 농장을 보러나갔습니다.

 

바닷물에 잠겼던 땅에는 풀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죽은 땅에서 미나리들이 올라오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지난해에 수확하고 버려졌던 도라지 갓 배추 찌꺼기들도 노랗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뚫고 올라오는 폐허의 아름다움입니다. 아파트사무실에 가서 따졌습니다.

 

“저절로 올라와 자라는 농작물들은 키워도 됩니까?”

 

“그럼요. 얼마나 아름다운일인데.”

 

흙을 돋아주고 비료를 주니 제대로 자랍니다. 이 일을 빌미삼아 이웃집 박씨와 나는 몰래 농작물 밀재배(密栽培)를 시작했습니다.

 

“아편재배도 아닌데 걸리면 어떻소? 땅을 파헤쳐 준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니 우리끼리 기경(起耕)합시다.”

 

우리는 땅을 파 엎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습니다. 몰래몰래 쑥쑥 자라주었습니다. 몰래 지은 금년농사는 대풍(大豊)입니다. 토마토 수박 캔타로프가 아주 맛있게 익었습니다. 우리집 식탁은 오이소박 미나리물김치 호박부침 상추쌈으로 넘쳐납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부부는 바다로 나갑니다. 보드워크를 걷다가 끊어진 곳을 만나면 내려가 모래위를 걷습니다. 보드워크가 이어지면 또 올라옵니다. 폐허를 걷는 거지요.

 

돌섬 바닷가의 명물은 멋지게 늙은 해송(海松)의 향기(香氣)입니다. 지난해 샌디태풍때 바닷물에 잠겨 해송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부터 죽은 해송에서 향기가 불어옵니다. 높은 가지끝에서 솔방울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어요. 솔방울을 앞세우고 솔입들도 파랗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나무기둥도 가지도 죽었는데 말입니다.

 

끊어진 보드워크 곁에 사람들이 호텔을 짓고 있습니다. 건너편에 뮤직홀이 들어서고. 대형컨네이너 트럭이 수십대 몰려오고 대형 천막을 세채나 세웠습니다. 백명넘게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HBO에서 “Bordwalk Empire"란 쇼를 촬영하고 있는 거랍니다. 돌섬보드워크가 세계에서 제일길기 때문에 여기서 촬영한답니다. 1930년대를 찍는답니다. 내가 다가섰습니다.

 

 

 

 

 

“난 노인이라서 옛날 역은 자신 있습니다. 드라마중에 동양노인도 끼어있으면 극적효과가 더 빛날텐데요?”

 

“촬영할 때 구경하는 척하고 엑스트라 곁에서 어슬렁거려 보시우. 재수 좋으면 앵글에 잡힐수도 있으니까.”

 

돌섬의 폐허를 걷다가 내가 헐리웃의 스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섬은 아름답습니다. 폐허가 돼도 아름답습니다. 고은이 그랬다지요.

 

“나의 문학은 폐허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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