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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泰格의 架橋세상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주재원 생활 4 년, New York 에서 20年 동안 生活하면서 뉴욕 최대일간지인 ‘New York Daily News’와 美 최대은행 ‘Bank of America’ 에서 근무했습니다. 'Bridge Enterprises'라는 사업체를 통해 韓國과 美國의 架橋를 자임한 이민1世입니다. 유럽과 美洲 양 대륙에 살아 본 사람으로써, 100개 이상의 종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美國과 뉴욕, 이민가정 子女들이 겪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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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만난 Chim-Cha

글쓴이 : 韓 泰格 날짜 : 2013-12-18 (수) 11:02:37

 

 

11월말부터 12월 초까지 남미(South America)와 중미(Central America)를 잇는 빠나마(Panama)를 다녀왔다. 육지를 갈라, 세상을 연결시켜 놓았다.(Land Divided, World United)라는 슬로간으로 상징되는 곳이다. 무척 흥미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혼자 한 이번 빠나마 여행의 기행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상황에 ‘갑자기 봉착(逢着)’하였다.

 

12월을 나눔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누어야 할 일과 맞닥뜨려 버린 것이다!

 

판촉물 비즈니스로 생을 영위하고 있는 필자의 고객은 뉴욕시 전역에 분포(分布)되어 있다. 요즈음, 필자는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지난 한 해 성원(聲援-Patronage)하여 주신 거래선에게 두루 인사를 다니고 있다.

 

지난 금요일엔 뉴욕시 유원지(遊園地)로 유명한 Brooklyn남쪽 Coney Island가까운 Cropsey Avenue에 소재한 Greek Diner를 방문한 후, 인근 Russian Town인 Little Odessa를 심층(深層) “탐사(探査)”하기 위해 Brighton Beach로 방향을 틀었다. 다음 약속 장소인 Bay Ridge가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약속시간까지 몇 시간은 족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머리위로 N 전철이 운행되는Brighton Beach Avenue로 들어서는 순간, 문듯 이곳으로 올 때마다 찾다가 실패한 한식당(韓食堂)을 오늘은 무슨 방법을 강구(講究)하여서라고 찾고 말겠다는 ‘오기(傲氣)’가 발동하였다.

 

신문사로 전화할까 생각하다, 이름도 모른는 식당을 교환양에게 설명한다는 것도 쉽지않고 상대를 번거롭게 하여 줄 것같아 우선 ‘손바닥’에 있는 iPhone을 사용하여 Google 검색창에 주도로명인 Brighton Beach와Korean “두 단어”를 입력하였더니, Elza Fancy Food라고 떳고, 그 밑에 Korean, Russian, Ethnic Food 별 네개**** 반의 평가표지가 나타났다. 이름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곳이나, 바로 이곳 “이렷다!” 차에 앉아 검색하였던 곳으로 부터 바로 두 블락 떨어진 골목 안켠에 숨겨져 있었다.

 

 

 


 

 

 

물론 간판은 러시아 알파벹드로 쓰여져 있어 ‘장님’이었고 왼쪽 상단에 영문으로 “장모(丈母)집- At Your Mother-In-Law”라는 구순한 표현이 정겨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늦은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한 쪽 벽면에는 모스코바에서 전송되어 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TV상자에서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분위기는 60~70년대 저 강원도 산골역이나 경상북도 어느 어촌(漁村) 실비집 같았다.

 

 

맨해턴 Korea Way 32가 한인식당가(街)나 한일밀집지역인 후러싱일대의 식당에서 보는 Interior또는 실내장식이라는 단어는 이 집에서만큼은 “사치품(奢侈品)”이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스스로 가운데 아무 데나 앉았다. 그제야 동양사람인듯, 아닌 듯 해 보이는 육척장신(六尺 長身)의 아줌마가 안면(顔面)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미소(微笑)를 지으며 나타났다. 손님이 한국인인것을 짐작한 그 여주인은 순간 맞을만한 언어를 무척이나 힘들여 찾고 있었다! 기다리다, 먼저 손님인 필자가 “안녕하세요” 했다. 둘이는 ‘가까스로’ 인사를 나누었다.

 

 


 

 

구 소련연방이었던 중앙아시아Uzbekistan수도 Tashkent에서 태어났고, 5년전에 뉴욕에 왔고 1년 후 식당을 개업했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냐고 물어더니, 열 손가락을 보이며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 왔다. 돌아 가신지 10년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읽을 수 없는 러시아어 메뉴 중 가장 비싼 음식을 그녀가 차리는 동안, 필자는 선반위에 놓여진 액자 속 기사를 ‘취재(取材)’하였다. 그 중에는 뉴욕타임즈기사도 있었다. 2010년 7월13일자 레스토랑 탐방기사였다.

 

 


 

 

기사의 제목은 Korean via an Uzbek Sojourn (중앙아시아에서의 역경-逆境-을 딛고 일어선 한국인 뉴욕Little Odessa에서 레스토랑을 개업하다.)이다.

 

 


 

 

주문한 식단이 식탁에 놓여졌다. 불고기에 반찬은 Chim-Cha(김치) 한가지 였으나, 육십 평생 그렇게 맛갈스런 김치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언어로는 소통(疎通)이 되지 않아도 그 김치맛은 러시아 원동(遠東)을 걸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신대륙 미국 뉴욕까지 ‘원형(原形)’ 그대로 전수(傳受) 되어 왔다니…이것이 민족이다! 이것이 너와 나를 이어 주는 피다!

 

 



 

 

그러나, 음식 옆에 놓여진 러시아 식 문양이 있는 세라믹 차(茶) 주전자가 지난 80여년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여 주는 것 같아 마음 서려왔다.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 젊은 이 한 친구가 들어 왔다. 필자 앞 테이블에 앉았다가, 자연스레 필자 테이블로 합류하였다. 나이가 서른. 미국에는 2년 전에 왔다고 했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왜 점심이 늦었느냐고 하였더니, Yellow Cab 운전을 하고 있는데 차고(車庫)가 있는 Avenue M에 차를 갖다 놓고, 2주급(二週給)도 받는 날이어서 ‘김치’가 먹고 싶어, 30분 정도는 족히 걸릴 이 식당까지 우정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했다.

 

아저씨도 8년전 주(駐)카자흐스탄 대사(大使)가 학교동창이어서 알마티를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였더니 친근감을 느꼈는지, 마음을 열어 보였다.

 

아버지는 여덟살에 돌아 사셨고, 어머니도 칠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뉴욕에 와 영어학원인 ALCC를 몇 개월 다니다가, 콜로라도 주에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 친구가 Job이 있다며 오라고 하여 6개월간 전기공(電氣工)으로 일했는데, 고용주의 선처(善處)로 Social Security Number를 받게 되어 직업을 얻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새벽 5시부터 12시간 Yellow Cab Driver로 휴일없이 일했지만, 오늘부터는 Central Park 근처 관광객을 위해 운행되는Bike Taxi 의 Driver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Job이 근무시간도 짧고, 팁도 적지 않아 수입이 Yellow Cab Driver수입보다 낫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 왔다. 성(姓)은 Tsoy라고 했다. 최(崔)씨의 러시아식 표기일게다. 돌아가신 아버지 성함은 Alexsandr라고 했고 본인 이름은 Valeriy라고 했다.

 

한국어를 배워 조상의 나라 KOREA를 방문하는 것이 꿈이라고도 했다. 식당아줌마의 얼굴과 골격에서는 중앙아시아인의 피가 조금은 섞여 보였으나, 이 청년은 종로바닥에 ‘가져다’ 놓으면, 바로 ‘한국인’이었다. 지난 백여년간 ‘배달민족의 피’를 그대로 유지하여 온 것 같다.

 

 

뉴욕시의 남쪽 끝 러시아 타운 Little Odessa에서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Korean얼굴의 아줌마가 차려주는 한식을 먹고,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카자흐스탄 여권소지자인 Korean청년과 얼어붙은 기나긴 80년간의 -동토(凍土)역사여행-을 하다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어나면서, Korean얼굴의 아줌마의 이름을 받았다. Mila Li라고 했다. 식당을 뒤로 하며,그 많은 년말 행사중 몇 개 모임이나 단체라고, 그리 많지도 않은 이 식당의 여덟 개 테이블, 서른 두 좌석을 채워 줄 단체은 없을까라는 아주 작은 ‘염원(念願)’을 해 보았다.

 

필자의 행선지이면서 그가 일할 Manhattan과 조금은 가까운 Bay Ridge까지 동행하면서, Bike Taxi는 춥지 않겠는냐고 물었더니, 뉴욕의 겨울은 카자흐스탄 ‘봄날씨’라고 했다. 맞다! 그런 땅이니 스탈린이 정치범들의 유배지(流配地)로 수십년간 사용하지 않지 않았겠는가?

 

오늘 ‘아저씨’가 이 대견스런 Korean 젊은이에게 점심사기를 정말 잘했다!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어눌한 우리말을 남기고, 새 직장을 향해 전철에 뛰어 올랐다.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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