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연출을 놀래켜야 한다
by 김성아 | 11.01.10 13:03

남을 의식하지 말고… 너의 소신껏 내면을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 .. 차곡차곡 쌓여질때 깊이가 생길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주위를 돌아보고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무엇이 먼저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일상에서부터.. 다른거 포기하고 연극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은 주위에 좋은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다. 선생님, 선배들..존경하고 따라가자. 아무리 못난 선배라도 그사람의 세월은 무시할 수 없다. 연습 들어가면 청소부터 하자. 포스터도 틈틈히 붙이고.. 그래서 너 자신을 낮추는 것부터 배워라.


적당한 긴장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어렵게 선택한 연극을 한 이상 어리광을 부릴수도 없으며 김치 쪼가리를 먹게 되더라도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배우는 연출을 놀래켜야 한다.. 능동적으로… 공연 끝나는 날까지 계속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매회의 공연이 모두 달라야 한다. 겸손하되 무대에서는 선후배 없다. 처절하고 절실하게.. 무대에서 자유로워져라 성아야..

-2004년 8월 16일 연극 청춘예찬 공연 보름 앞두고 쓴 나의 일기중에서 …

 

미국가기 1년전부터 난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모 대기업의 실력 있는 인재들이 우등상을 받을 때, 난 1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아 개근상장을 받았다 ..^^;;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 난 선배들의 소품, 설겆이, 청소, 포스터 붙이기 등 열악한 환경 탓에 스탭일부터 시작했다. 무대에 섰을 때도 배우와 스텝을 병행해야 했고, 두달 죽어라 연습하고 공연했을 때 받은 돈은 4만원이었다. 그래도 난 배우이긴 한가보다. 관객들의 좋은 평을 들었을 때 4000만원 받은 기분이었으니까.

존경하는 연출 박근형 선생님께서 교수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 한켠에서 그분을 쫒아가고 싶었다. 나중에 가르치게 되면 고정수입이 나올테고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공연, 연기들을 열악한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궁국적인 목적은 가르치는게 아니다. 배우로서 실력있는.. 한국관객뿐만 아니라, 외국관객에게도 ‘와 저 배우 정말 연기 대단하다…’ 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미국 오기전에 중국 여배우 ‘장쯔이’에 관한 연기인생을 쓴 책을 읽었다. 물론 장쯔이와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참.. 여배우로서 아름답다. 나의 관심사는 외형보다는 미국에서 '장쯔이의 날'까지 만들 정도로 그녀에게 어떤 것이 있었기에 체구 작은 아시아 여배우가 미국에서 성공했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역시 고된 노력과 인내, 끈기 없이 그냥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미국에서 이제 시작의 길을 걷고 있는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것 같다. 미국 온지 3개월만에 미국의 한 의약품 광고를 찍게 되었으니까. 미국 광고주가 이미 영어버전으로 나가고 있는 광고를 한국어버전으로 다시 만들고 싶다 했는데, 영어버전의 외국배우와 내가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캐스팅이 되었다.

촬영을 마치고 어느 내과병원을 갔을 때 내가 광고한 그 제품이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걸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날 동료가 된 Kary가 “미국의 유명감독 Bob Giraldi 감독님(SVA Film학과 교수)의 영화가 있는데.. 성아씨, 이미 캐스팅은 끝난 상태라 역할은 정말 단역인데요, 감독님이 워낙 미국에서도 유명하셔서 괜찮으시면 촬영하시겠어요?” “ Of course! ”

새벽시간 촬영장에 도착한 난 입이 벌어졌다.. 3일 간의 단편영화일뿐인데, 스탭이 100여명 가까이 되었다. 감독님의 파워랄까? 그분의 눈빛만으로 그 힘이 느껴졌다.

내 역할이 단역이라 잘 못알아본다고 ^^;;1인 2역을 주었다. 한인회 회장비서, 바텐더..

바텐더란 역할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대본 받고 나서부터 동네 아무 Bar나 혼자 들어가서 못마시는 병맥주 몇개 시키고 섹시한 영국 바텐더가 칵테일 만드는 것부터, 손님에게 서비스 주는 것까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집에 와서 더 욕심이 나서 난 바텐터들이 공중에서 잔 돌리는 영상들을 보며 유리병 들고 100번은 넘게 연습을 했다. 덕분에 촬영날 팔목은 부었고, 갖고 있던 유리잔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내 이름이 크게 나온다, 하지만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찾아봐도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영화 흐름상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 모두 편집되었다. ^^;;

장쯔이는 무용도 잘하는데? 넌? 한국에서 극단에 들어가기 전에 각 대학교 연극영화과, 방송연예학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워크샵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소리(창)과 마임, 현대무용 수업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 전통 소리가 너무 좋아서 1년을 선생님 쫒아다니면서 무형문화재 이은관 선생님에게까지 서도소리를 배웠다.

그때 잠깐 한국무용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배우진 못했다. 미국에 와서 ‘나루’ 라는 무용단에서 새로운 단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3개월 동안은 한국무용에 빠져있었다. 무용 전공자들 사이에서 난 흉내라도 내기 바빴지만.

  

연기전공자인 나로선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 만난 숙 언니.. 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연마(鍊磨)한 언니의 무용을 보면 깊이가 있다. 언니는 나를 참, 따뜻하게 맞아줬고, 인격적으로도 참 멋진 사람인 것 같다. 언니,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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