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와서 산지도 어느덧 30년이 다가오고 있다. 나의 뉴욕생활을 보험(保險)이라는 다소 딱딱한 소재와 버무려 하나씩 이 칼럼을 통하여 정리하여 보겠다.
나는 1981년 4월에 뉴욕에 이주하여 아직 뉴욕주를 벗어나서 살아 본 적이 없는 뉴요커이다. 처음에 와서 살 던 곳은 당시 한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엠허스트(Elmhurst) 74가 근처였다.
이제는 퇴출(退出)당해 바다 속에 잠겨 사라진 붉은 색의 7번 트레인을 수도 없이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82가의 한인 마켓과 건너편의 서양 마켓에서 첫 장을 보았던 때가 엊그제처럼 느껴지는데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처음에 뉴욕에 와서 한 일은 주유소에서 펌프질을 하는 일이었다. 영어라고는 숫자나 겨우 알아듣는 주제에 영어로 손님과 말도 되지 않는 대화를 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하였겠는가. 이민 온 대다수의 한인들이 느끼는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이 일을 얼마 동안 하다가 옮긴 곳은 벼룩시장이었다. 주말 경마장 주차장에서 열리는 장터에서 동물완구를 팔았다.
그 후에 부모님이 시작하셨던 던킨 도너츠에서 빵집 청년이 되었다. 빵집을 하기 위해서 필수 조건인 보스턴 인근의 5주 과정 학교를 수료하여 1981년 12월 빵집을 가족과 함께 운영했다.
24시간 7일을 일해야 하는 이 사업을 경험하며 세상에서 돈을 벌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님이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제빵왕 김탁구’의 꿈을 꿨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님 타계(他界) 후 빵집을 팔고 시작한 것이 보험업이었다. 처음에는 지인이 친구에게 소개하여 모 생명보험사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몇 년이 지나 자동차보험, 주택보험을 주로 판매하는 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회사에서 꽤 오랜 세월 있다가 작년부터는 종합보험사무실의 경영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보험업계에 일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고 느껴진다. 26년 전 결혼을 하자마자 뭘 안다고 생명보험 대리인에게 전화하여 보험을 가입하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보험에 대한 인식이 남달랐던 것 같다. 25년 전만 해도 생명보험은 한인들에게는 지인들의 부탁으로 반강제적으로 구입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처음에 보험을 시작하였을 때 고객들을 찾아가서 생명보험이야기를 하면 “사주지 못해 미안한데 어차피 가입해야 하는 자동차 보험은 취급하지 않느냐”고 되묻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 생명보험과 자동차 보험을 동시에 취급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어느덧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보험전문가로 대뉴욕지구 한인보험재정협회장을 거치는 등 연륜(年輪)을 계속 쌓아 가고 있다.
보험은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생활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생명보험, 은퇴연금, 화재보험, 자동차보험, 비즈니스보험, 건물보험, 종업원상해보험 등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하더라도 보험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평소에는 거의 이용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떤 일이 생기면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해주는 해결사(解決士) 노릇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보험이 바로 그런 합리적인 제도인 것이다. 앞으로 보험에 관한 알토란같은 정보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차근차근 들려 드리겠다.
▲한인보험협회장 시절 스캇 리버트 뉴욕주보험회장과 조셉 모렐 뉴욕주 하원보험분과위원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