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하노와 치카노의 갈등..히스패닉역사
by 서영민 | 10.10.21 05:41

지난 9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는 미국의 ‘National Hispanic Heritage Month’ 였다. 우리 한인 동포 사회와도 깊고 광범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히스패닉 이민자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미국에서 특정 민족이나 그룹의 기념의 달이라고 하면 통상 특정 한 달을 지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특이하게도 이 히스패닉 문화기념의 달은 두 달에 걸쳐있다.

기념일을 삼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9월15일이 낀 주간을 히스패닉 문화주간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이후 1988년 미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9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를 히스패닉 문화의 달로 지정한 후 22년째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왜 9월 15일이 히스패닉 이민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을까. 중미의 코스타리카(Costa Rica)와 엘살바도르(El Salvador) 과테말라(Guatemala) 온두라스(Honduras)와 니카라과(Nicaragua)는 1821년 멕시코 독립 전쟁의 와중에 멕시코를 도와 스페인과 싸웠다.

이들 5개 국가들이 드디어 독립을 쟁취를 하는데 독립 선언을 한 날이 바로 9월 15일이다. 그래서 이들 5개 나라의 독립기념일도 같은 날이다. 정작 멕시코는 그 다음날인 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 멕시코의 독립전쟁 기념물 www.wikipedia.com

미국에서 이들 중남미 이민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가지각색이다. 히스패닉이 미국 정부와 학계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이고 중남미 이민 자신들과 일반 미국인들이 이들을 지칭할 때 ‘라티노’ 라고 부른다.

이들 중 멕시코 계로 200년 전 Mexican American War 때문에 졸지에 미국인이 된 이들을 히스파노(뉴멕시코), 칼리포니아노 (캘리포니아), 테하노(Tejano 텍사스)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중 테하노라는 명칭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멕시코에서 이주한 이들은 치카노(Chicano)라고 부르는데 테하노와 치카노 간의 갈등(葛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하다.

라티노들의 인구 분포를 살펴보면 2009년 7월을 기준으로 4840 만 명의 라티노 어메리칸이 있는 것으로 추산(推算)된다. 이는 미국 전체 인구의 16%에 이르는 숫자로 12% 대의 흑인 인구를 크게 뛰어 넘어 최대 소수 민족을 구성하고 있다. 참고로 20년전 1990년까지만 해도 라티노 인구는 2200만명이었고 이는 미국 인구의 10%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미국의 인구 증가 중 두 명 중 한명이 라티노라고 한다. 자연 출산을 통한 인구 증가도 엄청나고 이민을 통한 미국 국적 취득자의 수도 엄청나다. 이 추세(趨勢)라면 2050년 경 라티노 인구는 1조3300만명에 이를 것이고 이는 전체 미국 인구의 35%에 육박하는 숫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인류학자들이 21세기 말에 이르면 라티노 인구가 미 국민의 절반이상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들은 없다.

각 나라 출신별로 라티노 어메리칸의 인구 구성을 살펴보면 1위가 멕시칸 2500만명 2위가 푸에르토 리칸 300만명 3위가 쿠바 출신(큐반) 120만명으로 추산된다. 위 세 라티노 그룹들은 모두 현대 미국의 역사 태동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들 세 이민 사회 현황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다.

첫째 가장 인구 수도 많고 앞으로 인구 유입도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멕시코계 이민자의 경우 1846년부터 1848년간 미국과 전쟁으로 북부 영토 대부분을 빼았겼다. 당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멕시코 인들이 졸지에 미국인이 되어 벌써 5세대를 거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시절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전 국방장관 알베르토 곤잘레스가 테하노 출신이다. 테하노 등 히스파노는 정치적으로 극우,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 신 이민자들을 착취(搾取)하는 과정에서 이득을 챙기는 데서 신 이민자 치카노들과 반목(反目)이 심하다.

 

▲ 테하노 출신 유명인사들 www.wikipedia.com

반면 우리 한인 동포 사회에도 친숙한 치카노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 설혹 합법 이민 신분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고 돈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철새 이민자들이 많다. 경제적으로는 극빈 막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사진은 기사안의 특정사실과 무관함 www.wikipedia.com

사실 미국 사업체를 전전하며 주방 접시닦이 막노동 일을 하는 이들에 대한 한인 사회를 포함한 사회적 시각은 곱지 않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이들 불법 노동자들은 사회적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일만 하기 때문에 미국 주류 경제에 크게 이득이 된다고 한다.

푸에르토 리코도 1898년 미국의 일방적인 침공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속국(屬國)으로 변했다. 이후 약 20년이 지나 1917년 푸에르토 리코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미국 영주권이 주어지자 당시 섬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백만 명 이상이 뉴욕시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왜 따뜻한 날씨에 살던 사람들이 추운 뉴욕시로 유입(流入)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인류학적 연구가 있으나 통상적으로 먼저 자리 잡은 가족들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니 뉴욕시였다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북부 맨하탄 동쪽에 스페니쉬 할렘이나 당시 슬럼이었던 현재 링컨 센터 자리 60가 웨스트 사이드에 자리를 잡는다. 이는 1960년대 대히트 명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자세히 묘사가 되었다.

현재도 맨하탄 최남단 Lower East Side에 많이 몰려 사는데 이 지역을 뉴욕 사람들은 ‘로이사이다(Loisaida)’ 라고 부른다. ‘로워 이스트사이드’의 스페인어 식 발음이다. 쿠바 이민자의 경우 1950년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정권 집권(執權)이후 대다수의 지주, 사업인, 부자들이 마이애미 지역에 정착(定着)하게 되었다.

당시 이민 출신 성분에 따라 큐반 어메리칸은 중산층 이상, 푸에르토 리칸은 중하층, 멕시칸은 막노동자가 주류를 이룬다. 즉 어느 나라 출신이냐가 미국내 이민 계층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아니고 이민 오기전에 어떤 계층 출신이었냐가 이민 온 이후의 계층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이다.

이토록 엄청난 역동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라티노 어메리칸의 현황은 인구수에 비해 결집력(結集力)이 부족하다. 언어는 같을지 모르나 출신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반목이 심하고 또 미국 사회가 이들의 이런 약점을 현재까지는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명확한 것은 불과 2-3세대 이후 미국이 라티노 내이션이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인 사회 음지에서 찬밥 신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들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동포 사회는 물론 한국의 대미 정책도 신중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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