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장군이 10.26의 총성을 쏘아올린지도 38년이 흘러갔습니다. 장군이 사형당한지도 35년이 됐습니다. 5월 24일은 장군이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져간 추모일입니다. 김재규를 두둔하건 증오하건 김재규를 생각해보는 날이지요.
그때는 박정희대통령 아니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민주주의 하면 나라가 결단 나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대통령이 독재해야 한다고 유신(維新)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박대통령이 갔어도 조국은 멀쩡합니다. 민주주의 하고 있어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2012년) GNP가 박대통령 살아있을 때 보다 19배가 넘었습니다.
민주화가 된후 대한민국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 ’과거사진상조사‘ 바람을 타고 제주도 좌익폭동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지리산 공비(共匪)들도 ‘태백산맥’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순반란 사건도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독재자의 딸로 지목받아온 유신공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피차 용납하는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민주화의 물꼬를 트고 죽은 김재규장군은 아직도 대역무도의 죄인으로 남아있습니다. 김재규장군을 복권시켜야 국민대통합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마침표가 완성됩니다. 장군의 복권을 위하여 나는 김재규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의 제목입니다.
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요?

김재규는 대법원판결인 3항소심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4항소심을 외쳤습니다. 4항소심은 역사에 항소하는 역사재판입니다. 하늘에 호소하는 양심재판입니다. 재판장도 김재규에게 사형언도내린 군사재판장인 김영선중장이 아닙니다. 이영섭대법원장도 아닙니다. 그냥 신부님입니다.
나는 김재규소설을 쓰면서 역사의 빙의를 느꼈습니다. 무당들은 망자(亡者)의 빙의(憑依)를 받아 죽은자의 혼백(魂魄)을 위로합니다. 작가는 빙의로 글을 씁니다. 꽃을 묘사할 때 꽃이 되고 새를 노래할 때 새가됩니다. 나는 박정희를 쓸 때 박정희의 심장을 느끼고 김재규를 기록할때 김재규의 심정이 되곤 했습니다. 다 쓰고 나니 하나로 연결된 전체로 보였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해서 굴러가는 구나! 박정희도 김재규도 역사의 무대에서 주어진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역이던 선역이던 말입니다. 배우들은 막이 내리면 서로 격려하지요. 소설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김재규가 사형집행 이틀전 안동일변호사에게 전하는 꿈 이야기입니다.
“간밤에 꿈을 꿨습니다. 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무지개를 넘으니 꽃밭이 나타나는 거예요. 꽃밭에 내리는데 박정희대통령이 손을 흔들면서 환영합디다.
‘어서 오게. 내, 자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네‘.
내가 대통령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형님, 미안합니다. 내가 궁정동에서 형님한테 총질한거 용서해주이소‘ 했더니,
‘아따, 이사람 별걸 다 기억하네. 자네 유치원 시절에 발가벗고 치고 때린 불알싸움 한걸 갖고 어른이 돼서 시비하는 사람 봤나? 죽음의 세계에서 보면 세상권세 부귀영화가 다 유치원장난처럼 유치한거야. 죽고 나면 하룻밤 꿈처럼 허무하게 되고 마는데 그걸 해먹겠다고 독재하고 죽이고 싸웠으니...’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우리 둘은 서로 부등켜 앉고 엉엉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깨어보니 꿈 이었어요“
하늘의 재판은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이지요. 과거는 용서해야합니다. 용서 받을수 없는 과거는 없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합니다. 엉터리빙의로 쓴 난필(亂筆)이 독자들을 실망 시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10.26 12.12에 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후원금을 보내 주신분들께 감사합니다. 축사를 써준 철부지 둘째딸 은범이 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