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은 이성적 인식과 전혀 다른 정신현상이다. 정념은 결코 파생적인 것이 아니라 독자적 경로를 취한다. 예컨대 부끄러움은 일종의 안전장치와 같은 조절 역할을 하므로 정념 가운데 특히 고귀한 것인데, 그것은 인식에 의한 반성과는 다른 것이다. 정념은 인식⋅ 의식⋅ 의지작용과 구분되면서 그 각각의 전 과정에 관련된다. 그것은 자투의 전면에도 속한다.
즉 비아와 대응할 때의 일차적 공포는, 아직 인식과는 전혀 무관한 상태에 있는 비아를 포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석가도 일체의 인식적 사고의 멸각(滅却) 속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정념적 성향과 기호를 떠나서, 순수 자유의지에 따르는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으로 이성과 결합되지 않은 정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의지의 경로와 전혀 다른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우리가 순수정념이라고 검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제일의적 공포 등과 같이 극히 제한된 범위에 한정된다. 상황의 과정에 대응하는 비아에 대한 지각⋅정념⋅표상⋅사유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 를 이룬다. 그것들은 각각 독자적 경로를 지키지만 융합되어 하나로 나타난다. 마치 하나의 음식에서 각 재료의 맛을 하나하나 가려낼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 복합체를 면밀히 분석함 으로써만 각각의 경로를 알 수 있다.
정념은 비아와 대면하여 불일치에 감응하는 가능적 자존자의 양면성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인식적 경로와 정념적 경로는 가능적 자존자가 관계 속에 들어가자마자 야기되는 것이다. 이는 일체의 관계와 단절된 순수 자아가 무념무상임을 상기하면 이해 된다. 정념은 비아에 대하여 인식과 다른 감응양식을 전개한다.
그것은 인식에서 불일치로 나타나는 것을 공포로 인지케 하며, 이로 인해 우리는 비인식적, 비개념적 양식인 신앙과 믿음으로 대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순수인식의 영역은 호오(好惡)의 정념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 양자의 복합체를 고려한다. 다만 이 양자는 자투의 이면에서 이루어지는 회향의 완결 과정처럼 희열의 증대 속에서 통일되어 간다.
정념이 회향에 접근하는 것은 일치 및 진리로 인한 만족과 관련된다. 자아와 비아의 상관관계에서 통일과 합일은 인식에서는 일치의 명료함으로, 정념의 경로에서는 희열과 호(好)로 나타 난다. 반대의 경우는 불일치와 비애와 오(惡)의 경로를 걷는다. 정념과 인식은 자투의 전면에서 별개의 경로를 취하지만, 자투의 이면에서 어떤 상황 하의 복수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회향을 통해 양자는 통일될 수 있다.
예컨대 해탈에서 가슴 속에 솟구치는 기쁨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회향의 합일 속에서 이루어진 양자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상황 하에 있는 인간실존의 경우 양자는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종래의 철학자들은 흔히 순수정념을 분리하지 못했다. 도덕과 윤리에서 배척되기 쉬운 성향과 기호는 순수정념이 아닌 것이다. 순수정념은 자유의지에 의해 야기된 자투의 전면인 인식과 상이한 경로를 취한다. 그것은 모든 인식에 필요한 감성과 오성의 형식에 의한 단계를 밟지 않고 무단계적 전면성을 띤다. 순수정념은 예컨대 신앙에 몰입할 때 나타나는 무개념적인 어떤 것이다. 정념은 상황 하의 자존자인 인간 실체가 가지는 일면으로서 자유의지와 함께 자존자의 이중성 가운데 일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정념이 절대적 진리의 척도로 설정될 수는 없다. 이는 정념의 변성 때문이 아니라 정념이 상황 하에서의 비아에 대한 자아의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념은 회향 과정에서 일치 속에 있기를 의욕하는 자존자의 반사경, 혹은 회향의 미로 에서 자존자의 나침반 같은 자동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 에서 말하고 있는 비유와 같이 하나의 집을 건축하고 있는 자는 집이 완성되기까지 지낼 집이 필요한데, 이와 마찬가지로 순수정념은 회향에 임시로 필요한 집이다. 그것은 사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오직 자존자의 온전한 회향에서 통일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식의 한계에 부딪칠 때 이 순수정념에 의거해 회향의 길을 개척할 수 밖에 없다. 순수 정념은 인식의 단절상태에서 작동하고 인식의 역할을 고무하지만, 인식에 의해 다시 밀려난다. 집이 지어지면 임시용 집은 허물 어지는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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