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탈환 이야기(19)
2014년 1월 8일: 버지니아 주 의회 60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필자와 ‘미주 한인의 목소리’ 임원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주 의회에 동해 병기 법안이 3개나 상정되고, 상원에서는 4명의 의원이 공동 상정을 했으며, 하원에서도 20명의 의원들이 공동 상정을 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그동안 동해 병기 법안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아 우리를 애타게 하던 하원 공화당 지도부도 한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빌 하웰 하원 의장과 공화당 당대표인 윌리엄 콕스 의원을 비롯해 6명의 하원 의원들이 추가로 팀 휴고의 동해 법안에 공동 상정자로 참여한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 세력들이 너무 조용하기만 한 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일부 일본 우익 세력들은 법안을 상정한 마스덴 상원의원과 블랙 상원의원, 그리고 팀 휴고 하원의원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또 워싱턴에 나와 있는 일본 특파원들이 필자에게 계속해서 인터뷰를 하자고 괴롭혔지만 그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대폭풍이 오기 전 고요한 것 같이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들은 철저히 침묵(沈默)을 지켰다.
필자는 혼자 생각했다. ‘우리 한인들이 너무 준비를 철저히 해놓아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방해 공작을 포기했나? 아니야! 그럴리가 없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리 없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방해 공작은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필자와 한인들은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이 방해 공작을 포기하기만을 진심으로 빌고 또 바랐다.
2014년 1월 10일: 드디어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이 그리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결국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버렸다. 동해 법안 심의 일정을 기다리고 있던 필자에게 팀 휴고 하원 의원이 저녁 늦게 전화를 했다.
“피터, 큰일 났습니다. 일본 정부가 직접 동해 법안을 저지시키기 위해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했습니다”라는 것이다.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필자가 로비스트에 대해 묻자 휴고 의원은 “’맥과이어 우즈’라는 미 동부에서 최고로 막강한 로비스트 로펌입니다. 한인들도 이에 대해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조언한 후 전화를 끊었다. 필자는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맥과이어 우즈’를 검색했다. 정치적인 로비만 전문으로 하는 동부 최고의 로비스트 로펌이었다. 소속된 변호사만 8000명이 넘고 본사는 버지니아 주 의회가 위치하고 있는 리치먼드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맥과이어 우즈는 주로 보수적인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화당 의원들과 매우 친숙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일본 정부가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맥과이어 우즈를 고용한 듯 보였다.

‘이제 정말 큰일 났구나! 이제 어찌 하면 좋을까?’ 밤새 고민하느라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필자는 아침 일찍부터 긴급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필자는 은정기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임원들과 긴박한 위기 상황에 대한 논의했다. 필자와 임원들은 투덜거렸다. “이럴 때 대한민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저 한숨만 나오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임원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굳은 결심을 했다.
물론 세계 경제 3위인 일본 정부가 직접 동해 병기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막강한 로비스트를 고용했지만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하는 일본 정부이지만 이제와서 뒤늦게 관여를 한 것이 아닌가. 반면 우리 한인들은 지난 2012년 3월 백악관 청원운동을 시작으로 2년간 냉철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온 터라 한번 해볼만한 혈전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상하원 의원들 상당수가 이미 법안 지지를 약속한 상태였고 주지사의 법안 지지 공문도 확보한 상황에서 무조건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걱정이 태산(泰山) 같았다. 힘도 없고 경제력도 없는 한인 몇 명이 모여 사재를 털어 여기까지 왔는데 경제 대국인 일본 정부가 직접 우리들과 버지니아 주의회에서 맞대결을 펼치자고 도전장을 보내 왔으니… 그야말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답답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틀 후 신문 기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주미한국대사관의 강도호 총영사가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 “김 회장님, 우리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말씀해 주십시오.” 매우 긴장된 목소리였다. 참으로 고마운 말이었다. 그동안 그토록 도와 달라고 수없이 요청을 했건만 요리 조리 핑계만 대고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았던 대사관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급박한 상황이 나타나니 그제서야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다. 필자는 “제가 한번 생각을 해보고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돈없고 힘없는 한인들만의 노력으로 과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도 어려운 상황인데 우리 한인들의 힘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직접 개입을 할 경우 동해 병기 법안이 국제적인 외교 이슈로 부각(浮刻)될 것 같았다. 어쩌면 일본 정부는 이런 노림수를 두고 노골적인 방해 공작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 국무부 공식 입장이 ‘일본해 단독 표기만 인정’인 상황이므로 만약 국제적인 외교 이슈로 불거지면 결국 미국 연방 정부가 개입을 하게 되고, 그럴 경우 한인들에겐 불리했다. 또한 지방 정부인 버지니아주 상하원 의원들 역시 국제적, 외교적인 문제가 되는 법안 통과에는 개입을 꺼려 표결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됐다. 버지니아 한인들의 힘을 모아 교육적인 이슈로 버지니아 주 의회까지 왔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한인들의 힘으로만 이겨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힘없는 한인들과 막강한 일본 정부의 맞대결로 갈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는 강도호 총영사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으로선 개입하지 말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 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외교문제로 비화(飛火)되면 동해 병기 법안 통과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더라도 한인들의 힘으로만 밀 부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단, 한인들이 하나로 결집하여 버지니아 주 의회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지원을 해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강도호 총영사는 잘 알겠다며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달라고 했다.
필자는 동해 법안 지지를 약속했던 상하원 의원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 의회가 이미 개원해 140 명의 의원들은 주의회가 위치한 리치먼드로 내려가 상당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의원들과 전화 통화를 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메일에는 어느 정도 답변이 왔다. 필자의 연락에 대답이 없는 상하원 의원들은 리치먼드로 내려가 직접 사무실을 방문하고 동해 병기 법안 지지 약속을 확인해 나갔다.
대충 숫자를 계산해 보니 상원에서는 확실하게 동해 법안을 지지해줄 의원수가 15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원에서는 약 35명 정도의 의원들이 확실하게 동해 법안을 지지해 줄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나머지 의원들이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다는 점이지만 반면 긍정적인 것은 단 한명의 상하원 의원도 동해 병기 법안에 반대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볍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필자는 리치먼드로 내려가 상하원 양당 지도부를 만나 동해 병기 법안은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15 만 모든 한인들의 염원인만큼 꼭 법안 지지를 해달라고 부탁하며 한가지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졌다.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기 위해 법안 상정을 위한 시민 운동을 펼쳐왔는데 왜 외국 정부인 일본 정부가 연방 의회도 아닌 버지니아 주 의회에 상정된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전문 로비스트까지 고용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틀림 없는 일본의 내정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일본계 시민들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지금 상황은 일본 정부가 미국의 주정부에 상정된 법안에 직접 간섭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에 양당 지도부도 고개를 가우뚱거리며 같은 말을 했다. “글쎄, 우리도 이해가 안 갑니다. 버지니아 주 의회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서 우리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필자의 의도는 양당 지도부가 일본 정부의 내정 간섭에 대해 강력한 반감을 가지도록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정부도 직접 나서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한인들에게는 분명 최대의 위기(危機)였다. 한인들만의 힘으로 막강한 일본 정부와 맞서서 싸워야 하고, 이제는 그야말로 버지니아주의 모든 한인들을 하나로 결집시켜야만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동안 동해 병기 캠페인에 앞장서서 적극 동참해준 한인들,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던 한인들, ‘미주 한인의 목소리’ 임원들을 비꼬며 뒤에서 말만 많이 하던 한인들, 시기 질투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방해까지 하던 한인들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