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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스님의 제자리찾기
2005년 ‘친일파재산 위헌법률심판청구’를 시작으로 리움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운동 등 반출된 불교문화재반환운동 참여. 2006년 동경대학 소장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반환운동 주도. <조선왕실의궤> 환수운동 앞장서며 2011년 일본정부로부터 불법반출된 1205점의 문화재 돌려받는데 공헌했다. 지은책으로는 <조선을 죽이다> <의궤-되찾은 조선의 보물>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등이 있다.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로 잘못된 우리 문화재의 진실을 바로잡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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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호피(虎皮)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글쓴이 : 혜문스님 날짜 : 2013-07-05 (금) 11:42:34

 

한반도를 대표하는 영물이자 민족의 수호신(守護神)으로까지 인식되는 조선 호랑이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때 동네 방방곡곡을 누비던 우리의 호랑이들은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단 한 마리도 흔적없이 멸종(滅種)되어 버렸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면서, 호랑이를 남겨 두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당한 기개와 굽힐줄 모르는 강인함을 숭앙하는 조선 청년이 남아 있는한,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의 호랑이 사냥에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야마모토 원정대 사건이다. 일본의 야마모토 타다자부로(山本唯三郞)란 사람은 호랑이 원정대를 조직, 1917년 11월 12일에 부산항에 당도하여 그해 12월 6일 호랑이를 잡겠다고 보름 가량 주로 함경도 방면의 산악을 두루 들쑤시고 다녔다. 이른바 ‘야마모토 원정대'라 불리웠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호랑이를 잡은 기록을 ’야마모토정호기‘란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은 2마리의 호랑이와 다수의 표범. 곰 등을 포획해서 의기양양하게 서울로 돌아온다.

 


  
▲ 야마모토 정호대가 함경도 신창에서 포획한 호랑이 사진

 

 

야마모토정호군이 해산식을 겸하여 조선호텔에서 만찬식을 개최한 것은 12월 5일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정무총감 이하 유력자들이 두루 참석한 이 자리에서 일본인들은 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갖는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역시 이들은 제국호텔에 모여 조선 호랑이 시식회를 개최한다. 이 땅에 살앗던 호랑이들 조차 망국의 설움에 겨워 일본인들의 식탁위로 올라가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일제 강점기내내 해수구제사업(해로운 짐승을 포획하는 사업)을 벌여 약 9만에 가까운 경찰과 민간을 동원, 호랑이 표범 등을 아예 멸종시켜 버렸다. 공식기록에 의하면 일본의 해수구제사업으로 1919~1924년의 6년 동안 잡아 죽인 호랑이만 65마리에 이른다. 일제시기 전기간에는 공식기록 161 마리. 대략 400-500마리 정도 포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범의 경우는 공식기록 625마리. 비공식 약 1,000마리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세고 아름다운 호랑이들이 서식(棲息)했던 한반도의 호랑이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잡힌 호랑이들의 가죽은 일본의 왕실을 비롯한 유력자들에 모두 헌정되었다. 남한의 마지막 호랑이 포획기록이라고 알려진 1921년 경주 대덕산의 호랑이도 역시 일본의 왕족에게 헌상되었다.

 

 

  
▲ 유달초등학교의 조선 호랑이 박제 (1908년 2월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생포한 호랑이를 일본인 하라구치 효지로씨가 구입해 일본에서 박제를 한 뒤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지금 호랑이가 가장 많이 살았다는 호랑이의 나라 대한민국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도 없고, 호랑이 가죽 한 장 도 남아 있지 못하다.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모두 사라져 버리고, 목포 유달초등학교의 박제만이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조선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서 –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호랑이 가죽


나는 수년간 일본에서 조선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왔다.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남한에서 최후로 포획(捕獲)되었던 호랑이의 최후가 나를 너무 슬프게 했기 때문이다.

 

 

1922년 산기슭에 살던 주민 김유근씨(당시 26세)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다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고 마을로 피신해 온다. 그러자 당시 주민들과 조선인 포수, 수백명의 몰이꾼들이 호랑이를 몰아넣고 사살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의 일본인 순사 미야케 요조(三宅與三)는 마치 자기가 조선 호랑이를 포획한 듯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호랑이 가죽은 당시 일왕의 동생인 이 칸인노미야코토히토친왕(閑院宮載仁親王)에게 헌상되어야 했다. 나는 이 호랑이의 얄궂은 운명에 좀 분노해 왔고, 일본 궁내청(일왕과 관련된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호랑이 가죽과 관련된 행방을 수년간 질의해왔다.

 

 


▲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된 호랑이. 조선인 포수 이위우가 사살함, 일본 왕실로 헌상됨

 

그러나 일본 궁내청이 폐쇄성으로 아직까지 별다른 단초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호피를 헌상(獻上)받은 왕족이 일반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재산을 추적해 가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또다른 조선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일신보 1917년 6월 9일자에 의하면, 하세가와 총독은 일왕에게 함경도에서 잡은 호피 하나를 헌정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것은 직접 일왕에게 헌상한 품목인 만큼 아직도 궁내청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또 하나는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1907년 일본황태자에게 헌상한 호피 8척짜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황성신문 1907년 10월 20일자 기사에 의하면, 일진회는 당시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에게 호피를 한 장 바쳤다고 한다. 이 호피의 행방을 찾아보니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만간 실물이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매일신보 1917년 6월 9일자

 

국내에서 호랑이의 마지막 모습을 발견하다.

 

최근 나는 국내에서 다소 놀랄만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조선 호랑이로 추정되는 호랑이 가죽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게 된 것이다. 공식적으로 한 장도 발견기록이 없는 호랑이 가죽 사진이라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었다. 월간 중앙 2008년 11월호에 공개된 이사진의 제공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둘째딸 박근령 씨였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일가족이 이 호랑이 가죽위에서 사진을 찍었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 사진 출처 : 월간중앙 2008년 11월호. 박근령 인터뷰. <박정희家 진실을 말하다-“근혜 언니와 갈라선 18년, 통곡의 ‘짝사랑 세월’ 보냈다>

 

 

함께 촬영한 자녀들의 나이를 추산한다면, 1960년대 중반에 촬영된 것으로 보였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육안(肉眼)으로도 3미터 꼬리가지 치면 4미터 가량 되는 상당히 큰 호랑이로 보였다. 태국이나 인도 호랑이는 조선 호랑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기 때문에, 사진상의 호랑이 가죽 정도면 거의 조선 호랑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였다. 60년대 중후반이라면 중국과 국교정상화 이전이므로 중국 동북지방에서 서식하는 만주 호랑이(이른바 동북호)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 63. 12. 17 5대 대통령에 당선한후 쵤영되었다고 알려진 박정희 대통령 사진

 

박정희 대통령이 호피를 깔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나는 좀더 상세한 사진을 검색해 본 결과, 국가 기록원에서도 호피와 관련된 몇가지 사진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호피와 함께 촬영된 사진은 대통령 당선인전인 국가재건회의 최고의장 시절부터였다. 1962년 1월 1일 신년 하례회에서 박정히 대통령은 호피를 깔고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있었다. 당시부터 대통령에 대한 야망이 굳건했음을 알 수 있는 사진이었다.

 


▲ 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의장 신년 하례식 사진. 박정희 부부가 호피위에 선채로 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당일 촬영된 사진중 표범 가죽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일제시기 약 1,000마리 정도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표범은 그 이후 멸종한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 표범 역시 모두 일본인들에게 약탈당해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경남 부곡 하와이 호텔에 우리나라 표범으로 추정되는 박제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 부곡 하와이에 있는 표범 박제. 우리나라 표범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표범 박제로 추정된다. 사진출처 주간 조선

 

 

그런데 62년 신년 하례회의 사진에서 표범 가죽이 발견되고 있었다. 박정희 의장은 자신은 호피 위에서 사진을 찍었고, 신년 하객중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표범 가죽위에 사진을 찍게 했던 것이다. 제왕의 상징으로 알려진 호랑이 가죽 위에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사진 촬영을 했던 것이다.

 

 

  

▲ 62년 신년 하례식 하객 사진. 박정희 대통령 부하들은 표범 가죽을 밟지 못하고 앞에서 찍었다. 이 표범도 조선 표범으로 추정된다.

 

 

그이후에도 몇차례 박정희 대통령이 호피를 깔고 찍은 사진들이 발견된다. 호피를 깔고 의자위에 앉아서 찍은 컬러 사진도 남아 있는데, 63년 대통령 당선 직후 촬영되었다고 한다.

 

 


▲ 사진 출처 인터넷 보물섬 블로그 66년 1월 1일 신년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아들 박지만 군 3명이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도 눈에 띈다. 아들 박지만군이 호피위에 개를 들고 서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한가지 의문은 이 호랑이 가죽이 어디로 갔을까? 하는 점이다. 부하들은 표범가죽위에서 사진촬영하게 한 점으로 미루어 박 대통령은 호랑이가 제왕의 상징이란 점을 분명히 인지했던 듯하다. 그렇다면 1979년 서거할 때까지 누군가에게 증정하지는 않았을듯 하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호랑이 가죽은 누구에게 갔을까? 이 호랑이 가죽은 조선 호랑이 최후의 흔적이 맞을까? 희한한 상상이 머릿속을 맴돔다.

 

 

이런 말이 떠 오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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