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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스님의 제자리찾기
2005년 ‘친일파재산 위헌법률심판청구’를 시작으로 리움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운동 등 반출된 불교문화재반환운동 참여. 2006년 동경대학 소장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반환운동 주도. <조선왕실의궤> 환수운동 앞장서며 2011년 일본정부로부터 불법반출된 1205점의 문화재 돌려받는데 공헌했다. 지은책으로는 <조선을 죽이다> <의궤-되찾은 조선의 보물>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등이 있다.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로 잘못된 우리 문화재의 진실을 바로잡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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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 탱화를 제자리로!!!

흥국사 탱화 구출작전 1만명 서명에 참여하세요
글쓴이 : 혜문스님 날짜 : 2015-06-01 (월) 05:12:59

 

나는 어쩌다가 문화재제자리찾기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마도 운명이었던 듯 싶다. 98년의 어느날 우연히 은사스님을 모시고 찾아간 비구니 D스님의 개인 차실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D 스님은 단정히 꾸며진 차실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틀어놓고 있었다. 정갈하게 우려낸 녹차에 매화꽃을 얹어 차를 우려내더니 맑은 미소로 내게도 한잔을 권했다.

 

아이들 목소리처럼 맑은 게 녹차의 맛이고 참선의 맛이겠지요.”

 

단아한 차향이 코 끝에 감도는 가운데 정신이 맑게 깨어나는 맛이었다. 그때 무심결에 내눈에 벽에 걸린 탱화(幀畵)가 들어 왔다. 건륭 57(1792) 그려진 오래된 저승사자 탱화였다. 동요를 틀어 놓고 녹차를 마시는 비구니 스님이 칼 찬 저승사자 탱화를 걸어 놓고 사는게 의아하기도 하고, 저렇게 오랜 탱화를 비구니가 어떻게 구해서 소장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슬쩍 물어 보았다.

 

탱화가 아주 오래된 것이네요. 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누가 주었습니다. 10년 지나면 보물이 될거라며 잘 보관하라고 하더군요.”

 

그런 대화를 끝으로 별 다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명이 아니었다면 그냥 머릿속에 잊혀지고 말았을 그런 일상의 나날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흥국사 탱화.jpg
흥국사 사자탱화 (현재 봉선사 소장)

 

 

2004, 은사스님이 봉선사 주지로 부임하신 뒤, 나는 본말사의 재산과 문화재 관련 사항을 조사, 정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양주 흥국사를 방문해서 흥국사 소장 주요 문화재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1998D스님의 차실에서 보았던 저승사자 탱화와 똑같은 탱화가 흥국사 지장전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6년이 지난 그 시점까지 어떻게 그 그림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지금의 나로서도 잘 알지 못하겠다. 내 머릿속에는 비단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밑에 적혀 있던 건륭 97년이란 화기(畵記)와 거기 적힌 이름까지도 남아 있었다. 흥국사 지장전에 걸려 있는 지장전의 다른 진품 탱화들은 비구니 D가 소장했던 사자탱화와 동일한 연도와 사람들에 의해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D스님의 탱화는 흥국사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유출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즉각 흥국사 탱화가 부당한 방법에 의해 외부 유출되었다고 판단, 이를 외부로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전직 흥국사 주지를 조사하고 D 스님의 개인 차실에 있던 탱화를 회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흥국사 탱화를 외부로 유출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전직 흥국사 주지는 봉선사 주지를 역임한 봉선사 문중의 원로였다. 사건을 확대하지 말고 당분간 모른척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이 은연중에 대세로 확정되고 있었다.

다른 소임자들의 반대로 사건을 해결할 방안이 공론으로 모아지지 않자, 나는 전격 직접 비구니 스님 사찰로 찾아가 탱화 2점을 압수해서 봉선사로 가지고 돌아왔다. 200456일의 일이었다.

 

탱화를 회수해 오면, 나는 사건이 명백하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사건은 오히려 복잡하게 꼬여 버렸다. 문중어른의 약점을 캐내 까발린 하극상(下剋上) 사건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까지 했고, 급기야 논란이 벌어져 봉선사의 내방에 못질이 가해지는 사건까지 확대되어 버렸다. 나로서는 도둑맞은 탱화를 찾아 온 사건이 하극상 사건으로 비화되는 과정에서 어안이 벙벙해져 버릴 지경이었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나는 훌쩍 일본으로 도망가 버렸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얼크러진 정치권력과 흙바람 날리는 이해관계가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흡사 망명객의 심정으로 떠돌이 땡중이 되어 찾아간 곳이 일본 교토였다. 거기서 운명은 나로 하여금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도쿄대학에 소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귀국후 다시 봉선사로 돌아와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 그것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세상은 누군가의 의협심이나 부르짖음만으로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거대한 구조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사실들이 변해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흥국사 탱화 사건 이후 나는 많은 교훈을 얻었고, 그 교훈을 토대로 10년간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를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목표는 50개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바꾸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고치기 위해 한발 한발 나는 냉정하게 과업을 수행해 왔다. 그결과 2013년 하반기까지 나는 50개의 과업을 모두 완수 할 수 있었다. (50개의 과업은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실의궤 , 문정왕후 어보 , 대한제국 국새 등 41,300점의 문화재 반환을 비롯해 친일파 재산환수법의 통과, 일본식 조경 철거 등)

 

사실 나는 50개의 과업을 성취하고 나면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산도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에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정황이 알려지면서 20142월 여러 언론들을 통해 조계종 승려를 그만 두고 탈종한다는 보도까지 나가는 쑥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려는 마음만은 진실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무슨 인연인지 흥국사 탱화사건이 다시 세상에 나로 하여금 또 다시 파란(波瀾)을 만들게 했다. 흥국사 탱화 도난 사건 당시 유럭한 용의자였던 흥국사 전직 주지 I 스님이 조계종 종립학교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선출과정을 둘러 싼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던 듯 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흥국사 탱화 도난 사건이 회자 되었고, 결국은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을 사건의 당사자였던 나에게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난처한 심경을 들어 여러번 거절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이 침묵하고 있기만은 어려웠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결국 문화재제자리찾기를 시작하게된 첫 번째 인연이 흥국사 탱화였으니 마지막 마무리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맞는듯해서 결국 여러 매체를 통해 사실관계를 털어 놓게 되었다.

 

흥국사 탱화 사건이 다시 언급되면서 절에 사는 것이 불편해진 나는 오랫동안 정들었던 봉선사로부터 짐을 싸서 나왔다. 자연스레 비승비속의 꿈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이 또한 불보살의 뜻이요 인연의 소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2004년도 흥국사 탱화를 봉선사로 찾아온 뒤, 아직까지 흥국사로 돌려주지 못한 것이다. 절집안 내부에서 발생한 도난사건이 밖으로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하여 아직도 제자리로 못가는 신세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봉선사 스님들께서 뒤늦었지만, 흥국사 지장전으로 이 탱화를 보내 주시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흥국사 탱화가 자신의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 지난 10년 세월이 아닌가하는 묘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어쨋건 한바탕의 꿈이었던 듯하다.

 

아마도 이글이 내가 봉선사 승려로서 쓰는 마지막 글인 듯 싶다. 세상의 인연이란 어디로 흐를지 알 수 가 없다. 그러나 작은 옹달샘이라 할 지라도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듯이 우리의 인연들도 결국은 화엄(華嚴)의 바다에서 다 만날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살 집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지만, 막상 얼떨결에 봉선사에서 나오니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흥국사 탱화가 열어준 새로운 인연이라고 생각하니, 재밌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침 찾아온 계절도 꽃피는 춘삼월이라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하다.

 

언젠가 노스님께서 들려준 말씀이 떠오른다.

 

말법시대가 되면 진짜 중은 저자거리로 하산하고, 가짜중만 산중에 남는다고 하더라

 

이거 저 같은 사람 두고 한 말씀이신가요? 하면 예끼하고 꾸짖으시려나?

 

봉선사는 저승사자를 즉각 석방하라!!!

 

남양주 흥국사 탱화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탱화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잡아가기 위해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고 인간세상에 내려오는 지옥사자의 그림입니다. 1797년 그려져 무려 200년간이나 흥국사 지장전에 봉안, 아침 저녁으로 예경을 받았던 보물급 탱화입니다.

 

지난 1995년 탱화 절도사건이 발생했고, 2004년 가평의 어느 비구니 D 스님의 토굴에서 발견되어 환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탱화의 절도 용의자가 전직 흥국사 주지일 가능성이 크고, 전직 흥국사 주지가 조계종의 유력한 고위직 인사이기 때문에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절도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우려되어, 흥국사로 돌려주지 않고 봉선사에서 압수보관하고 있는 셈입니다.

 

2004년 환수한 흥국사 탱화 2점은 저승사자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뒤 흥국사로 돌려주지 못하고 10년이나 세월이 흘렀군요. 복잡(?)한 문제로 10년이나 저승사자들은 재무스님 방 캐비넷안에 구속수감된 형편이네요.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나쁜 놈들을 잡아가야 하는 저승사자들이 구속수감된 만큼, 그간 업무상 차질이 많았을듯. 그래서 나쁜놈들이 자꾸만 설치게 된 건가? 얼마전 동국대 이사장 선출문제로 여러곳에서 잡음이 나면서, 저는 본의 아니게 흥국사 탱화 절도사건에 대해 해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년간 묻혀 있던 절도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네요. 이왕 이렇게 된바에는 이번기회에 구속 수감중인 저승사자들도 그만 석방, 원래 있던 흥국사 지장전으로 돌려 주었으면 합니다.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기 앞서 일단 문화재는 제자리로 가야한다는 대원칙에 봉선사 주지스님과 대중스님들께서 의견을 모아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승사자들이 구속수감중인지라 지옥에서도 업무처리에 지장이 많을 듯 합니다 ^^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빛을 발합니다. 흥국사 지장전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대왕의 탱화를 보관된 아름다운 법당으로 불교신자와 미술사 연구자들에게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흥국사 탱화가 봉선사의 창고에 갇힌지 이제 10, 모든 이해관계와 갈등을 넘어서 흥국사 탱화는 이제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세상의 어지러움으로 어둠 속에 방치된 흥국사 탱화를 집에 보내드리기 위해 봉선사 스님들과 불교신도,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 외쳐 봅니다.

 

흥국사 탱화를 제자리로 보내주세요! “

 

남양주 흥국사 탱화를 제자리로!!! 흥국사 탱화 구출작전 1만명 서명

 

서명하러가기

 

http://hope.daum.net/donation/detailview.daum?donation_id=110020

 

* 서명 및 댓글, 기부자의 수가 10,000명에 도달하면 진정서를 봉선사 주지스님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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