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세계일주 자신감 얻어
‘오늘은 선물, 고마워하며 살리라’

호우 및 강풍 경고와 산 사태 주의보가 내려진 날, 나는 신이 나서 올레길 20 코스를 걸었다.
김녕, 월정리, 행원, 평대, 세화로 이어지는 신비한 에메랄드 빛 물색이 발걸음을 저절로 멈추게하는 아름다운 수채화(水彩畵) 길이다.

오후 부터 폭우가 쏟아진다 하기에 일찍 도착하자는 생각에 평소 이용하던 대중 교통편 대신 오랫만에 내 차를 운전해서 달려갔다.
서둘러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비 오기 직전의 흐린 하늘이 주변 풍경을 더욱 매혹적으로 보정을 해주어서 한 눈을 파느라 멈추는 횟수가 많았다.
드디어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이번이 올레길 걷기 51회 째 인데 이런 대물과 함께 하는건 처음이다.
우산 살이 망가지고 우비를 입었음에도 속 옷까지 몽땅 젖어버렸다.
새로 장만한 트랙킹화와 올레길 브랜드가 새겨진 양말도 찌꺽찌꺽 소리가 날 만큼 흥건히 젖었다.
비를 흠뻑 맞으니 영혼의 묵은 때가 씻겨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쿠바의 싼티아고에서 억수 같이 쏟아붓는 비를 맞으며 쿠바노들과 함께 춤추던 순간 그리고 하바나의 말레꽁에서 태풍이 불어와 파도가 8차선 대로를 넘어서 덮치던 날 저녁 건물 회랑에서 럼주를 마시며 쿠바노들이랑 기타 연주와 살사를 즐겼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탈(逸脫)의 달콤함과 영육(靈肉)의 자유를 느꼈다.
Present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
오늘과 선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있는 present의 의미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날이다.
오늘은 선물, 고마워하며 즐겁게 살자.
나이 70에 강풍에 날려 우박 처럼 쎄고 아프게 얼굴을 때리는 비를 맞으며 유유자적 걸을 수 있다니 이건 분명 '오 마이 갓!'이다.
돌아오는 길은 걷는 길 못지않게 어메이징했다.
폭우로 배수가 제대로 안되서 차가 달리면 물폭탄이 터져 블라인드 터널이 생기면서 아찔아찔한 순간이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왕복 136km의 드라이빙도 내겐 즐거웠다.
한 때는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캠페인에 혹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호우 주의보가 내려진 날 시야가 꽝인 야간 주행도 할 만 했다.
나이 70에 무모한 짓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체력을 키워 준 5개월 간의 제주도 생활과 2번째 완주를 코 앞에 둔 올레길 걷기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아울러 두번째 세계일주에 도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자동차 대륙횡단의 꿈은 미루고 이번에도 ‘혼여 무여’(나 홀로 무계획 여행) 하리라 마음을 정했다.
비바람에 싸다귀를 제대로 맞았더니 머리가 맑아졌는지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아 이 또한 좋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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