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 사진전>

느닷없이 출국 날짜가 잡혔다.
며칠 남지 않았다.
난 머리가 나쁘고 게으르다.
계획 같은건 잘 못세운다.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
어쩔수없는 무계획 여행자다.
늘 이런식으로 우당탕탕 떠난다.
하지만 '안불편 안걱정'이다.
출국하기 전에 열 일 제쳐놓고 이문호 선배님 사진전을 보러가기로했다.
팔순(八旬)을 눈 앞에 두신 분이 대단하다.

미국 사진협회가 주관한 국제사진전에서 금상을 차지했다.
사진을 한번 출품해서 받는 상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50회를 보내서 엄격한 심사와 인증을 받아야한다.
매번 다른 작품을 내야한다.
올드 솔져를 자처하는 분이 인생 2막에 사진 작가로 거듭났다.
멋지다.
어메이징~

강화도 남문, 100년 한옥 대명헌의 전시장으로 갔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가 짱이다.
갑작스럽게 가는 바람에 선배님은 못만났다.
대신 사진에 집중해서 제대로 감상했다.
감상하는 내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은퇴하고 어깨뽕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피하게된다.
가슴으로 손과 발로 도전하며 멋지게 사는 사람이 조오타.
보고싶고 만나고 싶은 선배다.

내년 봄쯤 돌아올 생각이다.
그 때 강화도에서 다시 만나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야겠다.
나이 거꾸로 먹고
더 젊어져서 만나요.
싸랑합니다^^ 썬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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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나들이>
대전에 사는 동기생들의 송년 모임에 참석했다.
은행동의 오래된 중국집에서 오랫만에 낮술을 한모금 털어넣었다.
찌리리리~
연태 고량주에 탕슉과 팔보채에 난자완스 그리고 쟁반짜장 까지 옛스러움이 편안하다.
47년 전에 유성의 훈련소 연병장에서 함께 구르던 추억의 썰들이 밑반찬처럼 깔린다.
반 백년의 세월이 흘러 만나보니 너도 할배 나도 할배다.
역시나 최대의 관심사는 건강이더라.

나의 책 <아프리카 이리 재미날줄이야>가 화제로 올랐다.
자연스럽게 북토크를 하게 됐다.
진지하게 질문도하고 답변을 하다보니 여행수다가 길어졌다.

먼저 갈 사람은 가고 우린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수다 삼매경(三昧境)에 빠졌다.
저녁에는 사정이 있어 오찬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와 부인을 따로 만났다.
대학 시절의 같은 과 친구이자 군대 동기생이다.
한정식집에서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 대접을 받았다.
한밭 수목원을 함께 걸었다.
쌓아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서로의 건강한 모습에 기뻐했다.
소중한 만남에 감사했다.
자빠진 김에 쉬어 가기로했다.

유성의 계룡스파텔을 한참이나 헤매며 찾아갔다.
주위가 너무 많이 변했다.
요란하게 화려해졌다.
국군휴양소였던 그 자리만 어둡고 적막했다.
다음날 동학사를 돌아보았다.

매주 전투체육의 날 마다 계룡산 등산을 했었다.
익숙한 느낌이 그대로다.
계룡대와 관사가 있던 엄사리를 들러서 서울로 올라왔다.
어쩌다 추억 여행이 되어버렸다.
이틀 후면 라오스의 비엔티안으로 떠난다.
내년 봄까지 말레시아와 주변 나라들에서 각각 한달살이를 할 생각이다.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위해 살아보는 여행을 시작한다.
내 인생의 또다른 도전이다.
설레임이 되살아난다.
친구야
내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낮 술 한모금 찌끄리자.
추억과 희망과 도전을 떠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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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D-3일>
겨울비가 하루 종일 주룩주룩 내린다.
친구들과 송년 산행을 약속했다.
당근, 가기가 싫다.
전화를 걸어서 취소해야하는거 아니냐?고 물었다.
우산 받고 나오란다.
일단 만나서 결정하잖다.
우라질 투덜투덜~
속으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등산 모임 회장 진길이는 너무 우직하다.
융통성 없는 곰탱이다." 꿍시렁꿍시렁~
몇 명은 안나오겠지 생각 아니 기대했다.
그란데말이쥐잉~
참석한다고했던 11명이 모두 모였다.

"아하~ 이런 날 빠지면 신의성실하지 못한넘이라고 찍힐까봐 모두 나온게 분명해.
점심에 낮 술 안주가 돼지갈비다.
빠진자는 돼지갈비 보다 더 잘근잘근 씹힐까봐 나온거다. ㅎㅎ"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던 내가 머쓱하다.
얘기하다보니 모두가 진심 참석이었다.
집에서 나오기가 귀찮았지만 2만보가 넘게 걸었으니 뿌듯뿌듯하다.
식사를 하면서 내가 3일후에 떠난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가 장도를 응원해주었다.
내 송별회가 되버렸다.
비오는 평일이라 고즈넉한 분위기의 안산자락을 여유롭게 걸어서 찐좋았다.
오래 추억에 남을것 같다.
점심을 먹는데 마침 KBS 라디오에서 일주일 전에 했던 나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아프리카 이리 재미날줄이야> 여행 얘기다.
함께 들었다.
식당 안이 시끄러워서 집중해서 듣기가 힘들었지만 시간이 금새 지났다.
낮 1시 반 방송은 대충들었다.
저녁 6시20분에 하는 재방송은 자세히 들어야지했다.
그런데 본방이 끝나자마자 페친이 방송을 녹음해서 보내주었다.
성의에 감사하며 들었다.
들어보니 목소리만 젊다 ㅋ

저녁에는 가족들이 모두 집에 모여 송별 식사를 했다.
두 딸이 각각 노량진 수산시장과 홍대앞 회맛집에서 회를 주문했다.
비가 오는 긏은 날씨지만 내가 회를 좋아하는걸 알기에 굳이 회를 준비한거다.
회를 물리도록 먹었다.
매운탕은 손도 대지 못했다.
딸과 사위랑 손주 손녀들이 모두 떠났다.
집이 텅빈듯하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니 떠난다는게 제대로 실감이 된다.
토요일 부턴 강추위가 시작이다.
추위를 피해 라오스, 말레시아, 싱가폴에서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돌아온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겨울 철새 여행을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생각을 비우고
그냥 카르페 디엠이다.
오늘 행복하기로 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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