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가보로네

아프리카 살아보기 203일 째 되는 날이다.
1월 20일에 이집트 땅을 밟은 이후 7개월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작년 12월 8일에 한국을 떠났다. 한달 반 정도를 터키와 조지아에서 보내고 아프리카로 건너 왔다)
이집트, 에디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공화국, 보츠와나 등 10개 나라를 거쳤다.
한 나라에 평균 20여일 정도를 머물렀다.
다른 사람들은 3주 정도의 시간이면 7개 이상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돌아보기도 한다.
휘리릭 여행이 아니라 느린 여행을 하고 싶었다.
구경하는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동물의 왕국도 좋지만 까만 사람들이 사는 삶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보츠와나를 베이스 캠프로 삼았다.
여기서 한달 이상 지내다가 나미비아로 갈 생각이다.

고등학교 후배도 있고 가슴 따뜻한 정회장도 만났다.
순수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26년과 16년을 아프리카에서 산 사람들이다.
마인드가 21세기가 아니라 20세기에 멈춰져있다.
나도 그렇다.ㅠㅠ
한국에서는 나이들면 개털 취급 받는다.
여기선 독거 노인을 거의 아프리카의 추장급(酋長級)으로 예우한다.ㅍㅎㅎ
공통점은 자식 농사를 성공적으로 잘 지었다는거다.
모든게 부부 중심, 가족 우선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물씬 난다.
이 사람들이 좋아 엉덩이에 본드를 붙였다.ㅎ
골프치기 딱 좋다.
골프장이 집에서 5분 거리다.
1년에 120만원이면 무제한 라운딩을 할 수 있다.
비회원은 18홀 도는데 25,000원,
9홀에 18,000원이다.
혼자서 도는 원 볼 플레이가 가능하다. 황제 골프 ^^
캐디도 필요 없다.
본인이 직접 카트를 끌면 된다.
걷기에 최적이다.
800미터 트랙의 운동장이 집 바로 옆에 있다.
하루에 두번씩 걸을수 있다.
밤에도 환하게 나이트가 밝혀져 안전하다.
다만 맨흙 위를 걷는다.
바람 부는 날은 흙먼지가 장난 아니게 날린다.
그래도 콘크리트나 우레탄 트랙 보다 훨씬 낫다.
잘 먹고 잘 쉬고 운동하면서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더 건강해진 몸을 만들어 만리 장정을 계속하려고 한다.
일요일은 골프 치는 날이다.
원래는 후배와 골프를 치기로 했다.
그런데 후배가 허리를 삐끗해서 라운딩을 할 수 없게 됐다.
가보로네에 있는 딱 하나 있는유일한 산에 가기로 했다.
정상 까지 왕복 2시간이면 가능하다.
서울의 남산이랑 비슷하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탁 트여 있어 가슴이 뻥 뚫린다.
시내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가 있다.
후배는 20년을 살았지만 산에는 처음이란다.
돌이 많고 모래 흙이라 조심해서 천천히 걸었다.
우리끼리 바위 '악'자를 붙여서 보악산(보츠와나의 바위 산)이라 부르기로 했다.
낮은 산이지만 경사가 제법 있다. 돌이 많다.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 운동량은 골프 18홀 도는것 보다 많다.

내려와서 '난도스'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늦점을 했다.
'쵸피스'라는 대형 슈퍼 마켓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밤이면 클럽 음악이 꽝꽝 울려대서 호기심을 자극했던 술집에도 들러서 맥주도 한잔 마셨다.
낮이라 음악 소리만 크고 손님이 없어서 한가했다.
실내와 실외를 두루 돌아 보니 궁금증이 해갈 됐다.
궁금한건 못참는다.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직접 확인하고 나면 별거 아니다 ㅎ.
우스개 말로 '학창 시절엔 선배가 왕이다. 그러나 졸업하고 나면 후배가 킹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휴일 하루를 내서 온전히 나를 케어 해주니 그냥 감사 무지막지다.
내년에 한국에서 만나게 될테니 그 때는 웬수를 두 배로 갚아주겠노라 다짐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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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ai>

요기서는 바베큐를 브라이라고 한다.
열흘간의 케이프 타운 여행을 마치고 (7.20 ~ 7.29)
다시 베이스 캠프인 보츠와나의 가보로네로 돌아왔다.
다음날 내가 묵고있는 정회장 하우스 뒷 마당에서 브라이를 했다.
추장님 무사 귀환 환영 파뤼~ ㅎㅎㅎㅎㅎ
교민 부부 3쌍과
아프리카 4개 나라를 2주일간 여행중인 청춘 3명이 함께했다.
청춘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대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나 왔단다.
비록 하룻밤 묵고 떠나지만 밤 늦도록 많은 대화를 했다.
역시 청춘은 아름답다.
멋지고 부럽다.
양고기, 소갈비살, 등심, 안창살이 숯불에 알맞게 구워져 나온다.
나도 오랫만에 약하게 쐬주를 아프리카 맥주에 말아서 2잔이나 마셨다.
고기 보다 빨갛게 달은 숯불이 분위기를 살린다.
술 보다 사람의 정이 나를 취하게 한다.
멋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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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내음 만찬>
- 지구별 유랑 236일 째
8월의 첫날
운동장을 걸었다.
노매드에게는 탄탄한 허벅지가 말이고 낙타다.
틈만 나면 걷는다.
저녁에는 후배 집에 초대를 받았다.
깜짝 놀랐다.
문어와 생굴 그리고 깔라마리와 해초(海草) 밥상이다.
아프리카의 남쪽 내륙 국가인 보츠와나에서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만찬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구.
내가 해산물을 좋아하는걸 알고 미리 중국 마트에 오더해서 준비했단다.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남자라면
이럴 때 쓰나미에 휩쓸려줘야 마땅하다.
나미비아의 수도 windhoek과 같은 이름의 맥주 캔을 땄다.
컵에 붓고 한국인의 술인 쐬주를 비벼 말았다.
오래 잊었던 나만의 황금 비율로 직접 제조했다.
와우! 안주와 찰떡 궁합이다.
입에 착착 달라 붙는다.
2잔 씩씩이나 마셨다.
정에 취하고
바다 향기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했다.
폭탄주로 기름을 부었다.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가 있었지
나에겐 남연 아우와 선재 아우가 있다.
딸꾹~ 푸하하하~
이제 아프리카는 내가 접수해버리겠다. 딸꾹~
다 눈 까라라!
나도 안다.
기고만장!오만불손! 하다는걸.
그런데 말이지
파도야 구름아 바람아
이리 좋은걸 어쩌란 말이냐?
음훼훼훼
전생에 나는 아프리카의 추장이었을것 같다.
관우와 장비와 장금이도 검은 대륙에서 현생하여 다시 뭉쳤다.
착각은 자유다.
나는 자유인이다.
착각을 현실로 믿고 즐긴다.
기분 나이스인 아프리카의 밤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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