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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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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스페인어 개인교사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14)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19-04-06 (토) 01:21:41

빼앗긴 핸드폰을 되찾다

 

 

 

나는 산 크리에서 2달 동안 머물면서 28살의 미모에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크리스틴이라는 여선생에게 스페인어를 배웠다. 크리스틴은 커피나 와인을 마시면 가슴이 뛰고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생수만 마시는 특이 체질이었다. 육류는 전혀 먹지 않고 채식만 하는 철저한 베지테리안 이었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스타일 이었지만 수업을 얼마나 진지하고 열심히 하는지 감탄 할 정도였다. 매일 교재를 복사해 왔고 노트북에 해당 내용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담아 와서 쉽고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 했었다.

 

한 시간 수업료가 우리 돈으로 7,000원 정도였으니 정말 가성비 최고의 수업이었다.

 

멕시코에 오기 바로 전에 쿠바를 여행 하면서 스페인어를 몰라 너무 많이 잔돈 사기를 당했었다.

 

다시는 호갱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남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기본적인 스페인어 회화를 배우려고 했었다. 크리스틴은 내 설명을 듣고 서바이벌 회화 위주로 교재를 따로 만들어 와서 가르쳐 주었다.

 

 

 

하루 일과는 단조롭고 규칙적 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북적대는 낮 시간과는 전혀 다르게 차량과 인적이 드문 올드 타운까지 산책을 다녀 왔다.

 

오전에는 카페에 가서 스페인어 예습 복습을 하고 오후에는 수업을 받고 저녁에는 독서를 하거나 거리 공연을 보러 다녔다.

 

산 크리의 밤은 공연과 축제의 천국 이었다. 매일 매일 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지인들의 공연도 있었지만 많은 외국 여행자들이 공연을 해서 여행 경비를 벌었다.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자연식처럼 순수한 공연은 수준이 높고 진정성이 넘쳐서 좋아 했었다.

 

장배(장기배낭)족 만이 누릴수 있는 여유를 마음껏 즐기며 지냈다.

 

나에게 산 크리는 휴식과 충전의 힐링 캠프였다.

 

그렇게 사랑에 빠졌던 산 크리가 배신을 때리다니 ?

 

그럼 안되지. 이건 배신이야! 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한편으로는 찔리는 부분도 있었다.

 

작은 시비로 끝낼 수도 있었던 일을 위험한 사건으로 키운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자책감 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다른 날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섰다.

 

이 날은 시간이 좀 일러서 멀리까지 걸어봐야 겠다고 마음 먹고 도시 북쪽에 있는 산토 도밍고 성당과 시장 끝을 지나 처음 가보는 지역까지 가게 됐다.

 

화장실을 가려고 찾으니 마침 정류장 인지 넓은 공터와 낡은 택시들이 보였다.

 

이 곳에는 화장실이 있겠다 싶어 안으로 들어 가 보니 희미한 등이 켜져 있는 낡고 작은 가건물이 보였다.

 

볼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둠 속에서 수염이 텁수룩한 험상궂게 생긴 원주민 사내가 나타나 사용료를 내라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30 페소를 내라고 했다.

 

이건 완전 호구를 잡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싶었다.

 

멕시코는 어디서나 화장실 사용료를 받기는 하지만 가장 비싼 곳이 5페소 였다.

 

산 크리 같은 시골은 3-4 페소 정도를 받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 어이가 없었다.

 

내가 5페소를 주겠다고 하니 안 된다면서 30페소를 내라고 했다.

 

내가 10페소를 주었더니 동전을 땅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나도 순간 화가 치밀어 절대로 30페소를 줄 수 없다고 맞섰다.

 

한참 시비를 하고 있는데 인상이 하나같이 현상 수배범 같은 현지인들이 하나 둘 몰려 들어 나를 둘러싸고 돈을 내라고 합세하여 위협을 가했다.

 

패거리가 많아지니 분위기가 激昂(격앙) 되었다.

 

나중에 보니 그 화장실은 승객들이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 이었고 요금도 받지 않는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 이었지만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행동은 날강도 같은 짓이었다.

 

절대 굴복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까칠한 성격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었다.

 

 

 

지친 상태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노인 한 분이 대합실 쪽으로 걸어 왔다.

 

운전기사들이 그에게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이마에 손을 대고 경의를 표하는 걸 보니 아마도 사장 정도 되는 높은 사람 인듯 했다.

 

나는 그에게로 가서 사정을 설명 했다. 그는 영어를 알아 듣지 못했다.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영어 하는 사람을 불렀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 있으니 젊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 영어를 잘 하는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내 설명을 듣더니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느냐? 고 물었다.

 

나는 일단 핸드폰부터 찾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쁜 운전기사들이 와서 사과를 하라고 했다.

 

그녀가 운전기사들에게 나의 말을 설명해 주자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면서 발 뺌을 했다.

 

나는 옳고 그른 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서 꾹 참고 우선 핸드폰만은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운전기사들은 비아냥 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나는 그 자리에 사장도 있고 통역도 있고 구경꾼도 많은 상황이라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동안 참았던 말 들을 쏟아 냈다.

 

" 당신들이 한 짓은 강도 행위다. 멕시코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30페소 씩이나 받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얘기 해 봐라. 그리고 저 화장실은 무료인데 어떻게 30페소를 내놓으라고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할 수 있느냐? "

 

" 인적 없는 어두운 새벽에 7명이 둘러 싸고 위협을 가해 공포에 떨게 했고 핸드폰을 강탈해 갔다. 평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 산 크리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협박과 강도 짓을 한 것이다. 경찰을 불러 달라. 이대로 넘길 수 없다. 이런 일은 인터넷에도 올려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그러자 사장이 나서서 나에게 진정하라고 하면서 몰려 있던 사람들에게 나무라는 어투로 누가 가져갔는지 확인 했다. 핸드폰을 가져간 사람은 여기 없고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사장은 당장 전화를 걸어서 가져 오게 하라고 했다.

 

 

 

한 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삐까뻔쩍한 커다란 밴이 한 대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통역을 해 준 여대생의 아버지이자 택시 회사 사장의 친구였다.

 

그는 산 크리의 시 의회 의원이었다.

 

마치 서부 영화의 엔딩 씬에서 나팔을 불며 기병대가 흙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나타나듯이 그가 멋지게 등장한 것 이었다.

 

그는 다른 도시에 볼 일이 있어서 가던 중에 딸의 전화를 받고 차를 돌려서 왔다고 했다.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나서

 

" 멕시코 사람들이 잘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잘라서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대신 사과 하겠다며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발 뺌하던 악당들의 표정과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원래 이런 녀석들은 강자에게는 한 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시 의원과 그의 딸이랑 이야기 하면서 조금 기다리니 핸드폰을 뺏어 달아났던 녀석이 나타났다.

 

얼굴에 죄 의식이나 미안한 표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뻔뻔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잠시 후에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슬그머니 구경꾼들 뒤로 숨어 버렸다.

 

핸드폰을 받아서 살펴 보니 상태는 이상이 없었지만 갤러리에는 역시나 많은 사진들이 지워져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찍히지도 않은 사진을 찾다가 다른 사진까지 딜리트 한 것이었다.

 

멕시코 에서 찍은 사진은 물론, 쿠바에서 찍은 사진까지도 지워지고 없었다.

 

정말 화가 났다. 여행자에게 사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이 알리가 없을 것이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내 몸을 다친 것도 아니고 핸드폰도 다시 찾았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는게 좋겠다고 마음을 정리 했다.

 

 

 

사장이 운전기사들을 불러 모아서 사과하라고 시켰다.

 

한명 씩 나에게 다가 와 악수를 하며 미안하다고 말 했다.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사과 절차 였지만 어쩌 겠는가?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7명 이었는데 6명 만 사과를 했다. 나는 사장에게 한 명이 빠졌다고 말 했다.

 

한참 찾아서 차 뒤에 숨어 있던 나머지 한 명을 데려 왔다.

 

그는 맨 처음 나에게 황당한 요금을 갈취 하려고 했던 원조 악당이었다.

 

저지른 잘못이 무겁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 아니면 원래가 야비한 탓일까 ?

 

좋게 마무리 하려는 마당에 끝까지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그가 미웠다.

 

그래도 감정을 꾹 누르고 대범한 척 하며 등까지 두드려주고 받아 넘겼다.

 

 

 

피곤한 몸으로 숙소에 돌아 오니 장기 체류하며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부부가 나에게

 

" 어디에 갔다가 이렇게 늦으셨어요? " 라고 걱정을 해 주었다.

 

오늘 겪은 일들을 이야기 해주자 부인이 내게 말했다.

 

" 다시는 그런 만용 부리지 마세요.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주어버리지 왜 위험을 자초하세요?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위험한 멕시코 인 걸 잊으셨어요? 연세도 생각 하셔야지요. "

 

나는 대꾸 할 말이 없었다.

 

정곡을 찔러서 지적을 하니 변명도 하지 못하고 " 네 알겠습니다. 싸모님, 앞으로 조심 할께요 " 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실 내가 무모하게 만용을 부린 거 맞다.

 

2,000원도 안되는 돈을 줘 버리고 나오면 되었을 것을 내가 무슨 정의의 용사 배트맨이라고 겁도 없이 맞섰단 말인가?

 

택시비만 10,000원이 넘게 들었으니 참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융통성을 발휘해서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했다.

 

 

인생의 전반부도 그 놈의 원칙과 상식을 따지며 사느라 고생 했었는데, 나이 들어서도 모자란 짓을 해서 위험을 자초한 내가 어리석었다.

 

인생의 반은 자기를 세우면서 살지만 나머지 반은 필요 없는 것들을 허물고 비우며 살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멀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을 ....쯧쯧.

 

그나마 공포의 순간을 겪고 나서 스스로 반성하고 달라지기로 다짐을 했으니 다행이었다.

 

긴 여행을 하면서 내가 평생 겪어 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들을 했었다.

 

낯 선 땅에서 생소한 사람들을 만나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 하면서 내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이고 어리석고 약한 인간 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모든 걸 긍정의 마인드로 감사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액땜을 제대로 했다.

 

하나 하나로 보면 너무나 착하고 순진한 인디오 원주민들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게 다 내 탓 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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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깔로 광장에는 언제나 구두닦이들이 많았다. 돈을 벌러 나왔는지 소일 삼아 나왔는지 슈샤인 아저씨들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도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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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카페에 가서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 여기서 카페 라떼에 중독이 되어 한국에 돌아 와서도 라떼 메니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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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크리스토발 올드 타운 풍경 .외국인과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섞여 활기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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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축제인 바랑가이 피에스타가 거의 매일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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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험을 겼었던 터미널에서 합승 택시를 타면 이 곳 고산지대의 원주민 마을에 갈 수 있다. 이 곳에도 카톨릭 성당이 있었다.

    원주민들의 토템 신앙과 샤머니즘이 카톨릭에 녹아 들어 독특한 미사 형식을 보여 주었다. 성당 안에 닭이나 농산물을 바치는 건

    이해가 됐다. 닭의 목을 비틀어서 피를 뿌리는 의식은 특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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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크리에서 만났던 또 다른 두사람은 신혼 부부였다 . 현지에서 오토바이를 구입하여 중남미 종단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 옥상에서 하얀 뭉개구름이 떠가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사탕수수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별이 반짝이는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인생과 여행을 이야기 하는데 뜻이 너무 잘 통해서 십년 지기를 만난 듯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하는 인생이 반드시 성공 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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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혈통의 오리지널 인디오는 키가 정말 작았다. 피부는 검고 두꺼웠다. 코는 하나 같이 납짝 했는데 산소를 많이 들이 마시기 위해서 변형 된 거라고 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 할 수가 없었지만 .....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주변의 고산 지대에 살면서 농사를 짓지만 도시로 흘러 들어온 인디오들은 주로 수공예품 행상을 했다. 여러명의 원주민들이 똑같은 물건을 들고 몰려서 다녔다. 물건을 잘 팔기 위해서 생각 같은 건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길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따라 다니는 것 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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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로 떠나는 두 부부와 작별 인사. 여행은 만나고 헤어짐 이다. 또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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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 했던 댄싱 배틀 팀이다. 매일 광장에서 모여 연습하는데 자주 구경 하러 가서 그들과 낯이 익었다. 토요일에 소극장에서 정식 공연을 한다고 보러 오라고 했다. 주저없이 공연 티켓을 구입해서 갔더니 너무 좋아 했다. 물론 나도 신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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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크리에서 가장 좋아했던 타악기 팀 이다. 이들은 매일 장소를 바꿔가며 공연을 했고 나는 놓치지 않고 찾아 갔었다.

머나먼 낯선 나라에서 한 밤 중에 울리는 북소리는 지친 여행자의 지친 영혼을 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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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했던 합승 택시 차고지 근처에 있는 산토 도밍고 성당.

   

 

(15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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