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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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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버를 만나 쿠바행 비행기를 타다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24)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19-05-20 (월) 01:17:14

   

아프리카 모로코 여행을 마치고 다음은 어디를 가야 할 지 머리를 짜고 있었다. 러시아, 발트 3, 발칸 반도, 유럽, 아프리카를 여행 했으니 다음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게 맞다. 다만 어디서 부터 시작 할 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쿠바 아바나로 가는 이베리아 항공사의 티켓이 18만원 이라는 착한 가격에 나온 것을 발견 했다. 오호라 쿠바가 나를 부르는 구나. 쾌재를 불렀다. 일단 쿠바로 가자 . 그리고 나서 남미로 가자. 간단하게 계획이 정해 졌다.

 

 

나는 언젠가는 쿠바를 꼭 가 보고 싶어 했었다. 서울 충무로 소극장에서 열렸던 쿠바 영화제에도 열심히 찾아 갔었다. 쿠바하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 탱고, 살사, 시가, 헤밍웨이, 말레콘, 화려한 올드카, 모히또, 다이키리, 레볼루션, 야구 등이 먼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나를 쿠바에 꽂히게 한 건 20여 년 전에 제작 된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었다.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미국의 경제 제재로 궁핍해진 쿠바에서 노인들이 모여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다큐멘타리 영화였다. 진정한 예술혼이 느껴졌었다. 왠지 다른 세상이 카리브 해에 떠 있을 것 같았다.

 

 

쿠바를 관광 목적으로 방문 하려면 여행자 카드(TOURIST CARD) 를 구입하면 된다. 쿠바는 자국 방문자들이 비자 스탬프 때문에 미국으로 입국 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비자 대신 여행자 카드를 구입하게 해서 거기에다 스탬프를 찍어 주는 방법을 썼다. 캐나다는 비행기 안에서 무료로 나눠 준다. 다른 나라에서 쿠바로 갈 때는 출국 국가의 공항에서 여행자 카드를 구입하면 된다.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아바나로 직접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국제 공항이 우리 나라 인천 공항처럼 한 군데 모여 있는 줄 알았다. 택시를 타고 공항 청사에 내려서 안으로 들어가 전광판을 찾아 보니 쿠바행 이베리아 항공은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4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1-3 공항은 같이 있었지만 4 공항은 다시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거쳐 돌아서 가야 한다고 했다. 이것 저것 따질 시간이 없으니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4 공항으로 갔다.

 

 

카운터로 가서 다운 받아 놓은 이티켓을 보여 주고 항공권을 발권하고 나서 여행자 카드를 구입하려고 했다. 여직원은 나에게 쿠바 아웃 티켓이 있어야 발권과 여행자 카드 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오브 코스 !’ 나는 쿠바 아웃 티켓을 예매 해 놓았었다. 속으로 노 프로블레마를 외쳤다. 이메일로 받은 아웃 티켓은 출력을 해 놓지는 않았지만 스캔해서 저장해 놓았었다. 나름 준비성을 발휘 한 것에 만족 했었다. 자신있게 핸드폰을 꺼내 아웃 티켓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런데 일이 꼬일려고 하니 핸드폰을 열면서 뭔가를 잘못 눌러서 저장된 쿠바 아웃 이티켓이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이메일 받은게 있으니 열어서 보여 주면 되겠지 하고 찾았다. 그런데 맙소사 인터넷이 연결이 안되서 메일이 열리지 않았다. 스페인에 있는 동안 유심을 사서 충전을 해서 썼는데 알뜰을 떠느라고 출발 전 날 까지만 유효한 금액이었다. 인터넷 연결 되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그 여직원은 자기는 모른다고 하면서 쌀쌀하게 외면해 버렸다. 내가 버벅 거리고 있자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 주라고 요구 했다.

 

 

다시 짐을 끌고 로비로 나와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 봤지만 문제는 해결 되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 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이티켓을 출력해서 지참해야 하는건데 라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다. 티켓 발권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인터넷은 안되고 아웃 티켓을 확인해 줄 방법은 없고 사람 환장 할 일 이었다. 다시 창구로 가서 그 여직원에게 내 비밀 번호를 알려 줄테니 당신 컴퓨터로 내 메일을 확인을 해보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콧방귀도 안뀐다. 어디가야 컴퓨터를 쓸 수 있냐?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 뿐 이었다. ! 냉정한 여인이여 !!! 쿠바 행을 포기해야 하나? 눈 앞이 깜깜 해졌다.

 

 

마침 남자 직원 하나가 창구 앞 쪽에 서서 이것 저것 챙기는 게 보였다. 무조건 가서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샤프했다. 바로 내 말을 이해하고 일단 이티켓을 가지고 다른 쪽에 있는 여행자 카드 판매 창구로 가서 구입하라고 했다. 여행자 카드 파는 곳에 가서 얘기하니 정식 티켓을 가지고 와야만 팔 수 있다고 했다. 이 여인도 역시나 냉정한 표정 이었다. 마감 시간 10분 전 이었다.

 

 

다시 스마트하게 생긴 남자직원한테 가서 상황을 설명 했다. 그는 내가 아웃 티켓을 구매 했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확인서를 직접 작성해서 싸인을 해서 주었다. 그걸 가지고 또 다시 발권 카운터에 갔더니 그래도 안된다고 했다. 어쩔수 없이 매니저에게로 가서 설명하니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창구 직원이 계속 규정이 어쩌구 하면서 거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시계를 보더니 전화를 끊었다. 얼굴이 상기 된 걸 보니 상대 여자 직원의 답답한 태도에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나에게 여행자 카드를 현금으로 결재 할 수 있냐? 고 물어서 오케이라고 했더니 발권 카운터 옆에 선 채로 나의 인적 사항을 물어 가면서 직접 여행자 카드를 작성해서 영수증과 함께 주었다. 그리고 나서 좀 떨어져 있는 다른 창구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티켓을 발권 해 주라고 해서 받아 주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서 어렵게 어렵게 보딩 티켓을 받고 수하물을 보내자 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헐레벌떡 검색대와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서 탑승구로 달렸다. 탑승구 앞에 가니 라스트 콜을 하고 있었다.

 

 

쿠바에 입국 해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 하는데 아웃 티켓은 보자고 하지도 않았다. 건강 보험도 필수라고 했지만 나는 케바케 (case by case )라는 말을 듣고 가입하지 않았었다. 만약에 걸리면 비싼 돈을 감수하고 내려고 했는데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정말 인생이나 여행이나 복불복이었다.

 

 

무서울 것 같은 공산주의 국가 쿠바의 이민국 직원은 오히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친절한 인사를 해 주었다. 그리고 공항을 나오다가 치마를 입은 뚱뚱한 여자 세관 직원과 경찰을 보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복에 모자까지 쓴 근엄한 여성 직원들이 망사 그물 모양의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 모습이 언발란스 하면서도 재미있어 보였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을 떠날 때는 死色(사색)이 되었던 내가 쿠바에 첫발을 내딛으며 유쾌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스페인 공항에서 융통성 있는 맥가이버를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쿠바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감사 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의 프로페셔날 한 대응과 조치는 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이베리아 항공사의 잘 생긴 맥가이버는 멋졌다. 불운이 바로 눈 앞에 있을 때 행운은 바로 그 옆에 있었다.

 

(25회 계속)

 

 

 

1 2016년 11월 27일 첫  눈이 내린 날 이었다. 서울.jpg

20161127일 첫 눈이 내린 날 이었다. 서울 충무로 예술통 거리 소극장 앞에서 페르난도 감독 (사진 중앙)과 함께 함박눈을 맞으며 추억을 남겼다. 운 좋게 쿠바에서 온 감독 2명과 오찬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자세한 답변을 들었지만 난 쿠바를 제대로 이해 할 수 가 없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어쩔수 없이 내가 가봐야 하겠다고 마음을 정한 날 이었다.

 

 

 

2 2016년 쿠바 영화제 안내 포스터다. 나는 출품.jpg

 

2016년 쿠바 영화제 안내 포스터다. 나는 출품 된 영화를 거의 다 감상 했다. 이념을 내세우지 않은 게 우선 맘에 들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담하게 전해 주었다. 나의 쿠바 여행 테마도 서민들의 눈물과 웃음이었다.

 

 

 

3 쿠바 비자 역할을 하는 여행자 카드 양식 이다. 어렵게 항공권과.jpg

쿠바 비자 역할을 하는 여행자 카드 양식 이다. 어렵게 항공권과 여행자 카드를 받아서 갔지만 쿠바는 고생을 감수하고 갈 만한 가치가 충분한 나라였다.

 

 

 

4 스페인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제 4 국제 공항 . 시설은 훌륭 했지만 인터넷.jpg

스페인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제 4 국제 공항 . 시설은 훌륭 했지만 인터넷 환경은 빵점 이었다. 하드 웨어만 좋으면 뭐 하남? 쏘프트 웨어가 갖추어져야지.

 

 

 

5 산타 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광장의 동상. 수도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 있는 체 게바라 조형물이 제일.jpg

 

산타 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광장의 동상. 수도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 있는 체 게바라 조형물이 제일 유명 하지만 지방마다 동상이 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였다.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 혁명군 사령관이 되어 싸웠다.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시민권을 받아 쿠바인이 되어 실권 없는 요직을 맡았었다. 토사구팽이었다.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 볼리비아 혁명군을 이끌었으나 패장이 되어 붙잡힌 후 총살 당했다. 39살의 짧은 생을 불꽃 처럼 살다 갔다. 카스트로는 단 수가 높았다. 체 게바라를 레볼루션의 아이콘으로 띄웠다. 자신보다 체 게바라를 영웅으로 만들어 상징 조작의 프로파간다를 펼쳐 성공했다. 체 게바라는 살아 생전에는 투사로 헌신했고 죽어서는 최고의 관광 아이템으로 가난한 쿠바 인민을 돕고 있었다.

 

 

 

6 트럭 화물칸에 좌석을 배치해서 버스 처럼 만든 뻐럭 (버스 트럭 ). 쿠바에서는 까메욘.jpg

   

트럭 화물칸에 좌석을 배치해서 버스 처럼 만든 뻐럭 (버스 트럭 ). 쿠바에서는 까메욘 이라고 부른다. 서민들의 중요 교통 수단으로 주로 대도시간을 운행 하는데 야간 운행이 대부분이다. 일반 버스 처럼 정거장 마다 서지 않고 거의 직행으로 달려서 소요 시간을 줄인다. 에어컨이 없어 완전 찜통이다. 사람 보다 짐을 더 많이 실는다. 정류장을 찾기 힘들고 손님이 차면 출발하기 때문에 시간표가 일정치 않아 외국인이 이용 하기는 힘들다. 진짜 쿠바 서민들의 삶을 체헙해 보고 싶다면 한번 쯤 타보는 것도 좋다.

 

 

7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면 24시간이 걸리는 쿠바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 바라코아 .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직 사람들이 오염이.jpg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면 24시간이 걸리는 쿠바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 바라코아 .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직 사람들이 오염이 되지 않았다. 따뜻한 인정에 젖어 하루 더! 하루 더! 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던 곳이다. 사진은 점령군에게 항전하다가 최후의 순간에 강물로 몸을 던져 항복하지 않았다는 전사적지다. 영국인 부부, 콜롬비아 자매와 일행이 되어 투어를 했다. 비장한 역사보다는 해변가의 킹크랩이 더 기억에 남아 미안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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