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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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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개뿔 , 진짜 친구는 무소뿔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 한바퀴' (32)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19-08-16 (금) 05:06:49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赤道(적도)라는 뜻이다. 적도 바로 밑에 있어 나라 이름을 에콰도르 라고 붙인 것이다. 수도인 키토는 적도선이 통과하는 지점에 있지만 안데스 산맥의 고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생각 보다는 덥지 않았다.

 

 


7 여행을 하면서 춤을 자주 추었다. 내 인생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jpg

여행을 하면서 춤을 자주 추었다. 내 인생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목과 어깨에 힘 쫙 빼고 덩실 덩실 춤추며 살기로 했다.


          

 

에콰도르는 자국 통화 단위인 수크레 (SUCRE)와 함께 미국 달러를 공용 화폐로 사용하는데 달러를 더 선호한다. 환전소에 가지 않고 은행 ATM에서 달러를 인출 할 수 있다. 가 볼만한 곳은 적도 박물관이 있는 키토와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 같은 쿠엔카, 엑티비티의 천국 바뇨스 등이다. 특히 다윈의 종의 기원의 모티브가 된 갈라파고스는 희귀한 동식물들이 잘 보존되고 있어 유네스코 자연 보호 구역으로 등록 되어 있는 곳 이고 다이빙 포인트로도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경비가 너무 비싸서 가난한 배낭족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1 적도선 바로 아래 위치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있는 적도 박물관.jpg

적도선 바로 아래 위치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있는 적도 박물관


       

 

 

가위 바위 보 전쟁은 키토의 민박집에서부터 시작 됐다. 민박집 주인은 한국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근무 하다가 퇴사하고 눌러 앉아 게스트 하우스와 한국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인 배낭 여행자들은 최신 정보와 동행을 구하고 머나 먼 이역 땅에서 아침마다 차려 주는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서 찾아오는 바람에 언제나 만원 이었다. 주인장은 남녀불문, 노소불문 하고 설겆이 당번, 방 배정, 간식 심부름 등 모든 걸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도록 룰을 정하고 있었다. 주인장은 독특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잘 활용하여 매일 매일 들어오고 나가는 10명에서 20명의 손님들을 잘 관리 했다.

 

 

가위 바위 보는 나라 마다 부르는 호칭은 달라도 원리와 방식은 동일하다. 한국에서는 가위 바위 보 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지앤따오 쓰토우 뿌’, 일본에서는 잔 캔 보’, 필리핀에서는 착 엔 포이(JACK AND POI)’, 미국에서는 ‘RO SHAM BO (ROCK PAPER SCISSOR)’, 프랑스는 ‘STON SCISSOR WELL’, 베트남은 ‘HAMMER NAIL PAPER’ 라고 부른다. 이렇게 가위 바위 보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 되기는 하지만 주로 동양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다. 서양 사람들은 순서나 가부 등을 정 할 때 동전 앞 뒷면 가리기, 주사위 던지기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강제로 정하기 곤란한 결정이나 승패를 운에 맡기고 결과에 승복하게 하는 손쉽고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이를 변형 발전시켜 묵 찌 빠 라는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다. 창의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민박집에는 4개의 방이 있었는데 각 방마다 침대 3개를 들여 놓았다. 盛需期(성수기)에 손님이 많아서 자리가 모자라면 거실에 침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소파나 통로 바닥에 깐 침구 위에서도 자곤 했다. 주인장은 불편 할테니 다른 민박집으로 가라고 권했지만 일단 힘들게 찾아 온 여행자들은 어떤 불편도 감수하고 그냥 있겠노라고 버티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2 엑티비티 천국인 바뇨스의 야경.jpg

액티버티 천국인 바뇨스의 야경

 

 

 

 

우리 무지개 팀은 7명인데 방 2개를 배정 받았다. 6명은 뽀송뽀송한 침대에서 잘 수 있었지만 한 명은 나가 자거라! 였다. 우리는 누가 소파에서 잘 것 인가를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기로 했다. 첫번 째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나는 루저가 되었다. 속은 쓰렸지만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려고 억지 미소까지 지으며 거실의 낡은 소파로 가서 잠을 청 했다. 문 여닫는 소리, 화장실 가는 소리, 창문을 통해 비추는 가로등 불 빛 등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긴 소파는 중간 부분에 막대기가 들어 있었는데 오래된 탓에 양쪽 앉는 부분이 푹 꺼져서 내려가 있었다. 그 막대기가 딱 허리에 닿았다. 신경이 쓰이고 아파서 뒤척이다 잠을 설쳤다. 그렇게 하룻 밤을 자고 나서 며칠을 허리에 통증이 와서 낑낑 거리고 다녔다.

 

 

사실 소파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오호 통재라! ( 아 슬프고 원통 하도다! ) 세상이 말세로다! 長幼有序(장유유서), 敬老孝親(경로효친)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손가락 게임 따위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다가 불현듯 내가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고 깜짝 놀랐다. 꼰대 탈출 하겠다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서 나이 대접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있다는 게 부끄럽고 한심 했다.

 

군대 시절 나이 어린 고참은 곱창 짓을 많이 했다. 그는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하면 새벽 밥 굶고 일찌감치 군대 올 것이지 버벅 거리다 늦게 온 게 자랑이냐?"라는 멘트를 즐겨 날렸다. 맞는 말이다. 군대 늦게 온 내가 문제지 그 사람을 탓하고 욕하면 나만 힘들어진다. 똥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리고 국방부 시계는 돌아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면 된다. 내가 언제 청춘들과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허리 아프게 하는 낡은 침대에서 또 다시 자보겠는가? 이것도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라 생각하니 투덜 투덜이 눈 녹듯 사라졌다.

 

 

 

 

3 길거리 벽화가 마음에 들었다. 장소나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다..jpg

길거리 벽화가 마음에 들었다. 장소나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다.
투덜 대지 말고 주어진 순간을 즐기라는 메시지 같았다.

 

 

 

여행 하면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면 일단 호구 조사를 먼저 한다.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나이나 직업 , 전직이나 학력 등을 따져서 선생님, 교수님, 사장님, 박사님, 여사님, 형님, 아우, 조카 등등의 적당한 호칭을 찾아내서 불렀다. 외국인 여행자들을 만나면 이름을 서로 불렀다. 나이나 결혼 여부나 전직 같은 건 본인이 먼저 말 하지 않는 한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내 영어 이름은 JAMES. 가장 흔한 이름이지만 제임스 본드나 제임스 딘 등 유명 스타들의 이름이라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편하기 때문에 정했다.

 

정말 내가 부러웠던 것은 나이 따지지 않고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것 이었다. 인도에서 만난 23살의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 라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동행자였던 프랑스 40대 여성 로렌스, 모로코에서 만난 사우디 아라비아인 무하메드와 쿠바에서 단골로 다니던 길거리 에스프레소 가게 할머니, 그리고 캐나다에서 만나 동무가 되었던 에어비앤비 주인장, 미얀마에서 만난 한국을 동경하는 청년 만수르도 나를 그냥 제임스라고 불렀다. 히말라야 등반시 세르파는 미스터 안 이라고 불렀다. 호칭의 덫을 벗어나 친근감 있고 편한 이름을 나이에 상관없이 부르는 문화를 부러워했던 건 불필요한 권위 의식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낡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二律背反(이율배반)의 나를 보고 혀를 차며 반성했다. 나이는 개뿔이고 진짜 친구가 되는게 무소뿔 이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4 무지개 팀 7명이 콜롬비아의 송어 낚시터에서 누가 많이 잡는지 내기를 했다. 여기서도 나는 7등을 했다..jpg

무지개 팀 7명이 콜롬비아의 송어 낚시터에서 누가 많이 잡는지 내기를 했다. 여기서도 나는 7등을 했다.

 

 

 

나는 우아한 여행을 하는게 아니다. 도전과 모험을 찾아 떠나 왔다. 낯선 세상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배우자고 온 것이다.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친구인 것을 ..... 마음을 바꾸기가 세상을 바꾸기 보다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려운 일이지만 수직이 아니라 수평 인간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어른이다.

 

 

민박집에서 식사는 주인이 차려 주지만 설겆이는 손님들이 하도록 룰을 정해 놓고 있었다. 설겆이 당번도 가위 바위 보 게임으로 정하게 했다. 나는 게임 징크스에 빠졌는지 이상하게도 매번 꼴찌를 해서 많은 양의 설겆이를 했다. 조카들은 승리의 기쁨에 함성을 질렀다. 원래 나는 설겆이는 알아서 맡아 하는 편인데 게임에 져서 설겆이를 하게 되니 속으로 불평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 가리라를 주문처럼 외웠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지금은 설겆이가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다. 주부 습진을 훈장처럼 여기며 푼수처럼 헤헤 거리면서 설겆이를 독점하고 산다.

 

 

 

 

5  커피 농장에 가면 산비탈의 커피 재배지를 보여주고 커피 만드는 전 과정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갓 볶은신선한 커피를 시음하고 원하면 구입하게 한다. 농장에서 마신.jpg

커피 농장에 가면 산비탈의 커피 재배지를 보여주고 커피 만드는 전 과정을 설명해준다. 갓 볶은 신선한 커피를 시음하고 원하면 구입하게 한다.
농장에서 마신 콜롬비아 커피의 향에 반해서 한 통 구입 해서 집으로 보냈다. 귀국해서 마셔 보기 그 매혹적이던 향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커피 농장을 구경하러 가기 위해 오프 로드용 찝 차를 빌렸다. 찝차는 앞 좌석에 2명이 타고 천정이 없는 뒷 좌석은 양쪽으로 마주 보고 2명 씩 타게 되어 있었다. 일행이 7명이라서 한 명은 서서 가야 했다. 조카들은 자리 정하는 것도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자고 했다. 난 또 졌다. 이번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예전에 필리핀 클락에서 피나투보 화산 트랙킹을 갈 때 앉을 자리가 있었지만 일부러 선채로 주변을 감상하며 오프 로드의 질주 쾌감을 만끽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전차 군단을 이끌고 모래 먼지를 뚫고 달리는 롬멜이 된 듯 입석 주행을 만끽했던 것 이다. 차가 달리는 동안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탄성을 질러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조카들이 하나 둘 일어나서 짚차의 손잡이를 잡고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나 나는 한참 서 있으니 다리가 아팠다. 에고고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해야 한다는데 다리만 심하게 떨리는 나이에 여행을 하려니 힘들었다. 슬그머니 조카들이 앉았던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편한 모드를 취했다. 돌아 올 때는 아예 가위 바위 보 게임에 빠지고 삼촌 둘은 걸어서 왔다. 가면서 보니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 차 타고 보는 것 보다 걸으면서 보는 주변 경관이 더 좋았다. 가위 바위 보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돌아오는 길이 유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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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농장에 갈 때 탔던 오프 로드용 짚차.

 

 

 

가위 바위 보 게임의 흑역사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뼈 아픈 추억은 소낙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 칠흑 같은 밤 중에 간식으로 햄버거 사오기 게임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나와 C양이 당첨 되서 판초 우의를 뒤집어 쓰고 야간에만 문을 연다는 유명한 햄버거 가게를 찾아 왕복 30분 거리를 다녀왔다. 돌아 오는 길에 굳게 닫힌 가게 문을 두드려서 음료수 큰 병을 3개 샀다. 내가 2개를 들고 C양이 하나를 나누어 들고 오는데 봉투가 없어 미끌 거렸다. 오는 내내 떨어져서 깨질까 봐 살얼음판 걷듯이 조심해야 했었다. 돌아오니 수고 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달려들어 낚아 채듯 햄버거와 음료수를 맛나게 먹어 댄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밉지 않고 귀여워 보였다. 내가 고생하니 모두가 행복하구나 라고 생각하니 흐뭇함이 밀려 왔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 살기가 쉬워진다. 사람이 예뻐 보인다. 나 이제 도가 통 한 거 아니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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