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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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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에도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37)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19-10-01 (화) 23:57:21

 

17 하산 하면서 보이는 풍경들은 올라 갈 때 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였다. 역시 마음의 여유가 중요하다. 높은 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예쁜 마을들이 있었다.jpg

 

 

메르디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 (MBC)에 올라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2번이나 닥쳐온 고산증이었다. 첫번째는 해발 3000미터 지점에서 갑자기 찾아 왔다. 속이 메슥 거려서 버티기가 힘이 들었다. 다시 산장으로 내려가 휴식을 취했다. 하루를 푹 쉬고나서 다시 출발 했다. 그래도 다리가 무거워서 걸음이 느려졌다. 첫째날 향자콧 산장 (1400미터)에서 피땀데우라리 롯지 까지 그리고 둘째날 피땀데우라리에서 포레스트 캠프 (2550미터) 까지 쌩쌩하게 걸었던 것에 비하면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걷다 쉬다 하면서 세번째 숙박지인 하이 캠프 (3550 미터)에 도착했다. 입 맛이 없어서 무얼 먹을까 메뉴를 뒤적이다 보니 신라면이 눈에 띈다. 한국인 등반객이 많이 찾아서 히말라야의 모든 산장에서 정식 메뉴로 올려서 판다고 했다. 매운 국물을 마셨더니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어두워지자 마자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찌감치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새벽에 일어나 롯지 주위를 산책하며 컨디션 체크를 해보니 괜찮은 듯 했다. 드디어 메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 (4300미터)를 향해 힘차게 출발 했다. 그런데 왠걸 ? 4000미터 지점에서 부터 그 분이 강림 하셨다. 머리가 아프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실제로 느끼는 고통보다도 정상을 눈 앞에 두고 못 올라갈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심이 더 컸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 할 수는 없다. 이은상 시인의 "고지가 바로 저긴데 " 라는 시를 바꾸어서 읊었다. "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히말라야가 있다. 새는 날 눈 덮인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비장한 각오로 기어가듯 전진했다. 걷기보다 쉬기를 더 많이 했다. 동행한 세르파는 조언이나 질문 같은 건 하지도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제대로 된 세르파라면 고산증이 오면 바로 하산 조치를 해야 한다. 아마 내가 힘들어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는 걸 보고 못버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바라또라는 이름의 무뚝뚝한 세르파는 머리 속으로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목표 지점까지는 300미터만 더 올라가면 된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약 500미터 아래쪽에 있는 하이 캠프로 복귀하면 된다. 올라가기는 힘들지만 내려가는 건 별로 문제가 없다. 노련한 세르파는 기다리기로 했던 것 같다.

 

 

메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 (MBC)가 빤히 보이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세계 일주 하면서 볼리비아에서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를 했었다. 칠레로 넘어 가기 전에 해발 5300미터의 롯지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 때는 걷지 않고 오프로드 차량을 탔는데도 지금 같은 고산증이 왔다. 다행히 다음날 칠레로 가는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 내리막이어서 자연스럽게 회복이 됐다. 증세가 똑 같다. 바라또가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비장해 두었던 에너지 바를 꺼내 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 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히말라야.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되면 또 어떠리" "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잔아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 독백 하듯이 노래를 흥얼거리니 풀린 다리에 힘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쳐서 울고 싶은 마음에는 위로가 됐다. 히말라야는 내 운명이야! 내 존재의 이유야 !흐흐흐 ... 실성한 사람처럼 헛소리까지 했다. 앉아 있기도 힘이 들어서 큰 대자로 누워서 눈이 시리도록 맑은 9월의 하늘을 바라 보았다. 바람은 제법 강하게 불지만 따뜻한 햇살이 좋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 나는 경험자의들의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는 샤워를 하지 말아라. 세수도 하지 말고 머리도 감지 말아라 하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그런데 첫째날과 둘째날 롯지에서 돈을 내면 샤워를 할 수 있다기에 왠 떡이냐? 하면서 덥석 물었다. 땀을 닦아내니 개운하다고 룰루랄라 거렸다. 볼리비아에서도 추운 날씨지만 추가 돈을 주고 찬 물 샤워를 했었다 익숙한 문명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던 거다. 미리 고산병 약을 복용하라고 했지만 무시했다. 큰 산은 거리보다도 고도가 관건이다. 고도에 맞추어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향자콧에서 3주 동안 전지 훈련을 하면서 다리통이 제법 굵어졌지만 자신감이 과도하게 넘쳐서 산에 대한 겸손함과 경외감을 상실해 버렸다. 초반 3000미터까지 오면서 이거 별거 아니구만! 이라는 시건방진 생각을 했다. 아무리 낮은 산도 반드시 힘든 깔딱 고개가 있다. 세상에 쉬운 산은 하나도 없다는 걸 잊어버리고 오만방자하게 꼴값을 떨었다. 히말라야를 노하게 해서 고산병이 왔구나 하고 뒤늧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아무 소용이 없다. 머리는 느리게라도 움직이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히말라야가 웃으며 내게 말을 건다. 히말라야는 처음이지? 처음은 다 어렵고 힘든거야.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운명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깨달음을 선물로 얻게 될 꺼야. 넌 스스로 선택 했잖아? 바라만 보지 않고 덤벼들었잖아? 미루지 않고 시작 했잖아? 너의 운명은 바뀌게 될꺼야! 그 뒤편에선 가족들이 웃으면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손주가 할지! 할지! 부르면서 달려와 안긴다. 볼에다 뽀뽀를 하려는데 할지 담배 냄새 시러^^ 안돼^^ 하면서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어 보이고 도리질을 하는 바람에 눈을 떴다. 꿈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던 거다. 그래! 손자에게 멋진 할지가 되어야 한다. 젖 먹던 힘까지 모아서 올라 가보자. 깜빡 잠을 잔 덕분인지 전 보다는 컨디션이 나아졌다. 비실비실 일어나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1체크 포인트 옆에 붙어 있던 메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 까지 가는 주요 지점의 고도 안내문이다..jpg

체크 포인트 옆에 붙어 있던 메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 까지 가는 주요 지점의 고도 안내문이다. 왜 고도 안내를 맨 처음 산행 출발 지점에 붙여 놓았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고산병을 겪고 나서야 높은 산은 거리가 아니라 고도가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등반로 입구에 있는  첫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허가증을 확인 한다..jpg

등반로 입구에 있는 첫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허가증을 확인한다. 팀스와 퍼밋은 미리 받아 두었는데 비용은 약 47000원이 들었다.

 

 

 

3번째 체크 포인트. 이 곳에서 입산 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빨간 티셔츠 입은 남자가 내 전담 세르파인 바라또 다..jpg

2번째 체크 포인트. 이 곳에서 입산 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빨간 티셔츠 입은 남자가 내 전담 세르파인 바라또 다. 하루 25달러 씩 계산해서 주고 하산 후 하루 일당을 팁으로 더 주었다.

 

 

 

4입산 허가증인 퍼밋 이다. 가이드랑 가면 팀스 라는 것을 따로 끊어야 한다.jpg

입산 허가증인 퍼밋 이다. 가이드랑 가면 팀스 라는 것을 따로 끊어야 한다

 

 

 

5첫날 피땀데우라리 산장에서 점심으로 먹은 모모 , 우리나라 만두랑 똑같다..jpg

첫날 피땀데우라리 산장에서 점심으로 먹은 모모. 우리나라 만두랑 똑같다.

 

 

 

6안내문을 보니 첫날 잔 피땀데우라리는 해발 2100m. 둘째날 잔 포레스트 캠프는 2450m 다. 세번째 숙소신 하이 캠프는 3550미터다..jpg

안내문을 보니 첫날 잔 피땀데우라리는 해발 2100m. 둘째날 잔 포레스트 캠프는 2450m . 세번째 숙소신 하이 캠프는 3550m.

 

 

 

7피땀데우라리에서 내가 묵었던 최근 지어진 콘크리트 롯지. 심지어 방에 화장실이 함께있는 도시형 이었다..jpg

피땀데우라리에서 내가 묵었던 최근 지어진 콘크리트 롯지. 심지어 방에 화장실이 함께 있는 도시형 이었다.

 

 

 

8 이층 방에서 내려다본 마당 풍경이다. 식사는 야외 테이블에서 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 올드 롯지인데 운치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낡아서 벌레도 나오고 불편한 점이 많다..jpg

2층 방에서 내려다본 마당 풍경이다. 식사는 야외 테이블에서 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 올드 롯지인데 운치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낡아서 벌레도 나오고 불편한 점이 많다..

 

 

 

9히말라야의 산장에서 파는 달밧이다. 네팔인들이 하루 세끼를 먹는 주식이다. 달은 국이고 밧은 밥이라는 뜻이다. 달은 주로 콩이나 녹두 등을 끓여서 만든 스푸이고 밧은 불면 날아가는 진기.jpg

히말라야의 산장에서 파는 달밧이다. 네팔인들이 하루 세끼를 먹는 주식이다. 달은 국이고 밧은 밥이라는 뜻이다. 달은 주로 콩이나 녹두 등을 끓여서 만든 스푸이고 밧은 불면 날아가는 진기 없는 쌀로 짓는다 .카트만두나 포카라의 고급 달밧 정식 식당에 가면 가격은 비싸지만 반찬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맛도 훌륭하다. 그러나 서민들이 먹는 달밧은 짜고 맛이 없다. 등산 첫날만 먹었고 둘째날 부터는 입에 맞지 않아서 라면을 먹었다. 특히 산장의 달밧은 너무나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10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탓에 첫번째 캠프에서는 한국 소주도 판다..jpg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탓에 첫번째 캠프에서는 한국 소주도 판다. 큰 맘 먹고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 와서 소주 사서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사서 마시는 사람이 제법 있다고 한다. 신라면은 모든 캠프에서 공식 메뉴로 올라있다. 단체로 오는 한국인 등반 팀은 한국요리를 하는 네팔인 조리사를 고용해서 산 위에서 솥 걸어 놓고 밥 짓고 국 끓여서 먹고 술 마시며 나랏님 원족 하듯 산행 한다며 대단한 코리안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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