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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무덤(허광)’ 장기풍은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으로 15년 간 재직 후 은퇴하여 지금은 방랑여행과 글쓰기로 소일하고 있다. 미국 46개주와 캐나다 10개주 멕시코 쿠바 에콰도르 및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배낭여행했다. 특히 원주민지역 문화와 생활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14년 봄에 70일간 조국을 배낭여행했고 2017년 가을엔 45일간 울릉도와 남해안 도서를 배낭여행했다.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화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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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오징어가 없다 (1)

2차 조국순례 이야기
글쓴이 : 장기풍 날짜 : 2017-11-07 (화) 11:53:31

 

전날 밤늦게 포항에 도착한 나는 여객선 터미널 부근 모텔에서 오랜만에 편한 잠자리를 가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울릉도(鬱陵島) 배표를 끊었다. 850분 출발하는 선라이즈호는 정원 442명의 388톤 쾌속정으로 평균시속 40노트로 포항과 울릉도 저동항을 3시간에 주파한다. 과거 8시간 걸리던 뱃길이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여행원칙에 따라 나는 전날 울릉도에 대한 몇 가지 상식과 돌아 볼 곳을 메모해 두었다. 그러나 오징어 산지라거나 호박엿 같은 일반적인 상식은 대부분 쓸데없는 지식이었다. 울릉도가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울릉도와 일본과의 역사는 독도문제와 관련되어 지금도 우리 경계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울릉도가 죽은 사화산이 아닌 생화산이란 사실도 이번 여행에서 얻은 지식이다. 울릉도에서 고인돌과 무문토기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천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그 옛날 어떻게 사람들이 이주했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학자들은 울릉도에 살던 사람들은 고조선 중심세력인 예맥과 옥저의 한 갈래로 함경도 지방에서 건너 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울릉도에는 우산국이란 왕국이 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 존속했다.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후에도 신라와 고려에 조공을 바치는 독립국 형태로 있다가 11세기 여진족의 침공을 받은 우산국 사람들이 대거 강원도로 피신해 오면서 우산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독도와 함께 울릉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은 조선초 태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태종은 1407년 대마도주가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겠다고 제안한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왜구가 울릉도를 습격해 섬 주민들 피해가 극심하자 태종은 주민들을 모두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실시했다. 주민들이 떠난 울릉도에는 일본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향을 잊지 못해 다시 울릉도로 들어간 주민들은 일본인들에게 쫓겨나야 했다.

 

이 같은 현상은 17세기 어부 안용복이 고기잡이하다 일본에 끌려가 오히려 뛰어난 언변으로 일본 관리들을 휘어잡아 울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서찰을 받아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노비 출신으로 어부인 안용복이 고기잡이하면서 익힌 일본말로 조정 대신들도 해내지 못한 전설적인 외교적 업적을 세운 것이다. 당시 역사를 보면서 조선시대의 소극적인 국토정책에 실망하게 된다. 국토를 침범하는 외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피하려고 비워두어 점령케 하는 어리석음을 자초한 것이다. 세종 때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해 경상도에 편입시키고도 서둘러 군사를 철수시켜 결국 일본에 넘어가게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17세기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인들에게 울릉도 거주와 조업을 허가해 주었다. 이러한 일본의 울릉도에 대한 탐욕은 조선 외교권을 손에 쥐게 되자 더욱 심해져 많은 일본인들을 울릉도에 이주시켜 살도록 했다. 지금도 저동에는 일본인 벌목업자이자 고리대금으로 주민들을 착취한 사카모토 나이지로라는 사람이 해방 때까지 살던 주택이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일본인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공연한 것이 아니다. 울릉도가 목표인 것이다. 일본의 야욕은 울릉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 같은 울릉도의 역사적 사실을 마음에 품고 배에 올랐다. 배안에서 또 한 사람과의 인연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래서 배낭여행은 즐겁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내가 앉은 좌석에는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 모처럼 편했다. 그런데 바로 뒷줄에서 낯선 영어가 들렸다. 외국인이 옆 사람에게 울릉도 도동이 기착지인 저동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옆 승객이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뒤를 돌아보며 젊은 외국인에게 걸어도 될 만한 거리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이 청년이 아예 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나의 떠듬거리는 영어도 낫선 외지인 그에게는 필요했던 모양이다.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했다. 내 딸도 지금 암스텔담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더욱 반가워했다. 요하킴이란 그는 피아니스트로 전날 포항에서 공연을 끝내고 다음 월요일 일본 동경 스케쥴까지의 틈을 울릉도 관광을 위해 배에 올랐다고 했다.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는 다음날 밝혀졌다. 이래서 예정에 없던 나의 울릉도의 수난과 출애굽같은 탈출기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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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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