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 가서 독도망발을 벌이겠다는 정신나간 일본의 자민당 의원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철저히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4명의 늙은 왜구가 김포에 도착해서 다시 일본으로 출발 할 때까지 남북의 전 국민은(남북의 지도자 포함하여) “넉넉한 침묵”으로 일관해야 한다. 모든 언론기관, 인터넷 매체, 신문, 라디오 방송, TV, 모든 공공기관 심지어 큰 재벌 회사에서 구멍가게까지 이번만은 “넉넉한 침묵”으로 그저 보내자.
가슴속에서 화산 폭발 직전의 용암이 들끓어도 그저 넉넉한 침묵으로 조용히 그들 대가리에 침묵의 똥물을 끼얹자.특히 여야 정치인들의 함구 입 단속은 가장 중요(예 이재오 특임장관 막말 절제). 그래도 손님이니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1) 김포 공항에 영접 나갈 우리측 인원
민방위 사령부에서 가장 젊은 7급에 해당하는 건강한 신입사원 1명, 울릉군수 산하 울릉군 신입 젊은 사원 1명 그리고 미래의 국토방위의 임무를 지닐 남자 고등학교 1~2학년생 자원 봉사자 2명. 합 4명으로 구성하여 입국에서 출국까지 접대와 감시의 동시 임무를 선정된 4명에게 맡겨라.
2) 어떠한 개인 집단의 데모를 철저히 자제하며, 일반인들은 한치의 시선도 그들에게 주지 마라. 그리고 소리도 내지 마라. 어찌 궁금하고 관심이 없으리란만 이번만은 모두가 가슴속에 깊은 침묵으로 묻어두자. 원래 저질 양아치들은 길거리에서도 행인이 옷깃이라도 스쳐주기를 바라고 휘젓고 다닌다. 옷깃이라도 스쳐줘야 시빗거리의 불씨라도 되고 양아치들이 장판을 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특히 무반응에 개인,단체 역시 함구로 보내라. 그래야 두 번째 침투 탐색조는 상륙 불허에, 어긴자는 사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졸렬한 맞대응의 생각들
치사한 양아치들과 어떻게 맞싸우는지 직접 내가 들은 참고해 볼만한 실화이다. 고달픈 바닥 미국 생활에서 겪은 경험담이니 크게 참고 될지 모르겠다.
작은 법정에서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묵사발이 된 한 늙은 한인에게 재판관이 묻는다. 어찌된 일로 그대 얼굴이 묵사발이 되었는고? 통역관이 통역하여 말하되, 산더미 만큼이나 등치 큰 백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놈 흉내 내다가 당했다고 했다. 무슨 흉내를 어떻게 내었는고? 구체적으로 말하라.
예. 그대로 말씀 드리지요. 저놈이 먼저 파큐, 그래서 나는 유 파큐, 피스 오브 쉣, 그래서 나는 유 피스 오브 쉣, 깟뎀, 그래서 나는 유 깟뎀. 그랬더니 저 놈이 주먹으로 내 얼굴을……
재판관이 다시 무슨 뜻이나 알고 그랬는가? 하였더니 노 스피꾸 잉글리쉬, 다만 눈치가 나쁜 말 같어서 앵무새처럼 따라만 했을 뿐입니다. 큰 수고나 생각없이, 상대방이 한 짓 그대로 되 갚아 주는 것도 방법일수도 있다. 그렇다. 똑같이 남북의원 4명이 대마도를 방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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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렬한 맞대응 하나.
아시아나 항공이 부랴부랴 해야 할 화급한 일.
7월 18일~8월 18일까지 한달 간 일본 외무성 직원은 대한항공을 못 타고 아시아나 항공으로 일본 외무성 손님이 몰릴 터이니 대한항공의 경쟁사 입장에서 화려한 감사패를 만들어 일본 외무성에 감사패를 전달함이 어떨까?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졸렬한 맞대응 둘.
자민당 국회의원 4명 울릉도 탐색 방문의 답례 형식으로 남북 국회의원 4명을 인선하여 대마도(對馬島)를 답방하는 성의를 표하도록 남북 정부당국에 정식으로 건의한다.
두 명의 국회의원은 북한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은 한국에서 합이 4명이 되도록 하고 북한의 두 명은 안중근의사 생가가 있는 황해도 출신의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한 명, 또 다른 한 명은 중앙당 소속 최연소 대의원 한 명. 한국은 밖의 시야가 좋은 젊은 홍정욱의원, 이순신장군 고향이 연고인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정함이 가하다.
4명의 한반도 대표 대의원들이 대마도 체류기간 동안 조총련 출신의 건장한 자원 봉사단 2명은 한국 의원의 신변 경호를 책임지고 민단 소속 2명의 자원봉사 요원은 북한 대표의원들 신변경호를 철저히 책임져라.
졸렬한 맞대응 셋.
일본의 한달 간 대한항공의 외무성 직원 탑승금지의 답례로 우리도 한 달 간만 노랑단무지, 미소 된장국을 가능하면 먹지 말라는 정서를 전 남북한 국민과 인민에게 권장 할 것이며, 8월 15일은 여러모로 뜻 깊은 날이라 단 하루만 왜식(스시포함)을 먹지말고 독도를 생각하자!
굳이 꼭 드시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누가 말리랴 먹는 음식을! 그날 드시는 일본 음식은 분명히 “쳐 먹는 것”에 해당하며 미소시루 없이 스시를 쳐 드십사 하는 의견이다.
모든 상황이 정리, 종결되면 남북의 짤막한 공동성명 발표.
“우리 남과 북, 북과 남은 민족의 화해, 한반도 비핵화의 엄청나게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의 제1 표적인 독도 침공에 관해서 적국인 일본에 대하여 민족의 이름으로 공동 대처할 것임을 천명(闡明)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그것조차도 못하겠다면 두 지도자는 민족권좌에서 스스로가 걸어서 내려와야!
맺는 말
1910년 8월 29일은 정식으로 일본 놈들에게 정식으로 나라를 빼앗긴 날이라 하여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라 부른다. 그 후 무단 헌병 탄압정치로 한계를 느낀 일본은 문화정책으로 그 방향을 야비하게 바꾼다.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일.한동조론, 일조동조론 이라고 하며 뿌리 ‘근’ 자를 써서 일조동근론 즉 일본인과 한국인이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개 같은 이론이다.
일본이 형, 조선이 동생이라는 즉 식민지 동화정책, 황국식민화, 민족말살 정책의 정당화에 초점을 맞춘 하늘에 날벼락을 맞을 가짜 역사의 제조. 마치 달짝지근한 노란 다꽝과 시뻘건 고추가루에 젓갈이 뒤범벅된 우리 시뻘건 매운 김치가 같은 음식이라는 넋두리성 궤변. 더 치졸해지는 마음을 뜯어 말리기 위해서 4.19날 게재한 '독도, 대마도 표제'의 서문을 끝으로 내 유치한 글을 마감할까 한다.
“성스러운 날 4.19 아침, 나는 무거운 죄인 되어 두 장의 신문지를 들춰보네. 한 장에는 위안부 출신의 84세 박 할머니의 초췌한 사진모습, 할머니 손에는 일본 동해 쓰나미, 후쿠시마 대 재앙의 일본 난민들에게 구호금, 모금함을 들고 계신다. 한반도 통틀어 정부기관 뿐 아니라 개인 단체 할 것 없이 들끓으면서 앞을 다투어 모아진 엄청난 성금, 왼손으로 우리의 구호금을 받아 챙기면서 오른손으로 가짜 교과서를 만들고 한반도 재 침략의 칼을 갈고 있는 우리의 이웃 그들에게.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이냐! 오 나의 사람들이여! 나의 사람들이여!
또 한 장의 낡은 신문쪽지. 꼭 일년 묵은 걸레쪽 같다. 일본의 독도궤변, 다시 살아나는 아베 노부유키의 망령. 우리 한번 다시 읽어 일년동안 무엇이 변했나, 냉철히 생각해 보자.
깨끗한 물에 몸 씻고 방향도 없는 곳을 향하여 무릎을 꿇어 본다. 제목이 없는 눈물이 난다. 늙은이들 탓만하며 욕만 하고 지내던 나의 편한 젊은 시절도 있었건만 내 그 자리 차지하니 축 처진 다리에 지혜 없는 가슴만 답답하다.
불현듯 하늘나라로 가고 싶구나. 이순신장군께 고자질이나 하려, 다 헐어빠진 열 두 척의 전함과 함께 환생하셔서 독도 앞바다에 포진 하시라고……
하늘 나라에서 내려다보니 독도와 대마도 사이의 넓은 바다에는 왜놈들 전함으로만 꽉 메워있고 우리 아군 배는 한 척도 안 보인다. 파리똥만한 독도를 향해 들개 떼같이 무더기로 몰려오는 그들, 모든 왜놈 병사들은 하나같이 왼손엔 가짜 교과서, 오른손목아지에는 명성황후를 난도질 쳐 죽인 히젠도. 좀더 섬 가까이로 가보니 큰 간판이 보이는데 굵은 글씨로 우렁차게 실효지배라고 써 붙여있고 그 간판 뒤에는 두 민간인만 보이는데 독도 노래하는 김장훈, 또 한 분은 서경덕 선생이다.
손에 들고 계신 무기를 챙겨보니 연필이나 깎을 수 있는 작은 문방구 칼이로구나.
역겨운 실효지배라는 소름 끼치는 본뜻을 곱씹어보자. “우리는 독도의 실효지배로 머리 속이 꽉 차있는데 그들은 36년 실효지배 했던 잊지 못할 땅. 한반도를 꿈꾸고 있어!!”
7월 18일은 “실효지배”라는 방패에만 의존하여 남북이 널 부러져만 있지 말고 왜구를 섬멸 (殲滅)할 수 있는 공격용 창과 그리고 칼을 준비 할 때이다.
2011년 7월 30일 토요일
The 1492 Green Club/환경운동 백영현 http://kr.blog.yahoo.com/younglilac
이 글은 평생 독도만 바라보다가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버린 허망한 나의 형 백충현 선생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