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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사회 초년생이 온몸으로 느끼는 우리 사회의 모습. 세상은 이런 곳이라는 어쩌면 잔혹하고 때로는 따뜻한 반전 이야기. 젊은 게 한 밑천! 스펙이나 취업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겁없는 위로를 건네기 위한 호기 가득한 글. 경제학과 출신의 학원 국어강사. 국어강사 출신의 옷가게 직원. 경제, 국어, 장사. 셋의 묘한 조합에서 찾아본 한국! 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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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도로위의 간디’

글쓴이 : 최보나 날짜 : 2013-01-03 (목) 10:10:54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내 명의(名義)로 된 차가 빨리 생긴 편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득한 나의 운전면허가 올해부터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차종을 고민하다 최근 출시된 경차로 결정했고, 칼라는 여대생의 상큼함이 묻어나는 파스텔 톤으로 뽑았다.

 

거의 삼년을 장롱에 묵힌 내 면허증에서 묵은내가 빠질 때까지 차에는 초보운전 스티커도 붙여두었다. 그리고 안성에 있는 학교까지 요긴하게 타고 다니며 운전연수를 시작했다.

 

학교 가는 길에 지나는 동네 도로, 강변북로, 강남역 부근 시내의 도로, 경부고속도로. 그 코스들은 나에게 꽤나 난코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물정 모르게 생긴 내 차가 도로위에서 가는 길은 모두 험할 수밖에 없었다.

 


(간도 크게 처음 차를 혼자 타고 나간 날, 서울부터 충주호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나는 운전을 시작하고 내 차에 동승하는 이들로부터 별명 하나를 얻었다.

 

‘도로위의 간디’

 

원체 성격자체가 쉽게 화를 내거나, 주변의 감정적인 일에 크게 동요(動搖)하지 않는데다 네 자매의 맏이로 오랜 기간 정신수양을 한 덕인지 이해심과 배려심은 누가 뭐래도 세계 최강이다.

 

그래서 도로위에서도 급해 보이면 먼저 보내주고, 느긋하다면 나도 그저 여유롭게 뒤를 따랐고, 경적(警笛)을 울리면 그 소리에 리듬을 탔고, 창문을 내리고 눈을 크게 뜨면 나는 눈인사를 건넸다.

 

운전을 하면 성질을 버린다던데 난 오히려 비구니(比丘尼)의 삶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내 차의 동승자들과 아버지가 내 차만 타면 격정(激情)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동승자들은 내 차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도로위의 무법자(無法者)들을 향해 나대신 경적을 울렸고, 창문을 열고 꽤나 강한 된소리, 쌍자음이 많은 언어를 내지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얼마 전, 사로고 차를 폐차(廢車)시켜 내 차로 용무를 보러 다니시곤 했는데 당신 차를 운전할 때는 한 번도 없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다.

 

실수한 것도 없는데 시비를 걸고, 도로 위 무언의 매너들을 어기거나, 겁을 주고, 자기가 잘못해놓고 되려 시비를 건다든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고. 보행자들의 태도 또한 달랐다고 했다.

 

아버지의 예전 차는 외제차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매너 있고 배려 많던 운전자들과 보행자들이 같은 운전자, 다른 느낌인지 배려(配慮)는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차 껍데기만 달라졌을 뿐 운전자는 같았는데도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보며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나만 빼고 여러 사람 성격 버려놓은 7개월의 정신수양기간을 마치고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어냈다. 스티커만 없어도 시비와 무시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내 앞을 무리하게 끼어들던 차들도, 괜히 경적을 울리던 차들도, 나의 차선변경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던 차들도 모두 절반이상 사라졌다.

 

하지만 초보운전 스티커가 없음으로 시비가 절반으로 줄었을 뿐 아예 문제의 근원(根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건 ‘초보운전’ 스티커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 차 자체가 그렇게 고가(高價)도 아니고, 초보의 아이콘 같은 차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트러블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인 예일 수 있지만 내 차가 벤츠였는데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었어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건 보이는 것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현대사회에서 불거지는 외형중시, 물질만능주의(物質萬能主義) 현상이 이런 것 아닌가. 현대인들은 내면이 아니라 보이는 껍데기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한다.

 

성형중독, 쇼핑중독, 명품중독 모두 현대인의 외형중시 성향(性向)이 짙어지며 만들어낸 신종 정신병이라고 생각한다. 바퀴 달려 굴러가고, 비와 바람을 막아주고, 에어컨이랑 히터만 빵빵하게 나오면 그게 다 좋은 차 아니냐는 생각을 가졌던 여자사람인 나. 남자사람들은 나에게 손잡이 달리고, 물건만 집어넣을 수 있으면 다 좋은 가방 아니냐고 되묻는다. 결국엔 사람들은 보여주기 위해 껍데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 나이 스물 셋. 내일이면 스물 넷. 작년까지만 해도 남자를 보는 조건에 제 1순위는 군필자인가, 2순위는 학교는 어디인가, 3순위는 키가 몇인가 이런 순위를 매겼었다. 그런데 점점 스물 넷 처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져만 간다.

 

제 1순위는 강남인가 강북인가, 2순위는 차는 있는가, 3순위는 장남이나 외동인가. 현실에 눈을 뜨는 나의 동지들에게 반가워야하는지 씁쓸해야하는지 아리송하다. 중저가 브랜드 지갑만 하나 있으면 만족스러워하던 순진했던 스무 살 여대생들은 이제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가방 한 두 개쯤은 있어야 어디 가서 기죽지 않는 깍쟁이들이 되어간다.

 

나는 워낙에 사람을 오래두고 관찰하고 지켜보는 편이다. 사람을 뚫어보는 통찰력(洞察力)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천 가방을 들었어도, 안에 샤넬백은 거뜬히 살 수 있는 체크카드가 들어있을지 모른다. 천만 원짜리 차가 지나가도, 용무가 정말 급한 대기업 간부가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저 안에 타고 있을 수도 있다.’

 

사실 껍데기에 개의치 않으면 이런 생각도 필요 없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보이는 모습이 첫인상으로 각인(刻印)되기 때문에 나도 가끔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는 한다.

 

나는 좋은 차로 내 차를 무시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수모를 당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있다.

 

‘나도 꼭 좋은 차를 몰아야겠다’가 아니라, ‘저렇게 보이는 모든 것들로 자신보다 낫고 못함을 구분하는 어리석은 잣대를 가진 속물은 되지 말자’는 것이다.

 

내일도 난 스물 셋 여대생보다 견문(見聞)이 좁은 운전자들과 겨루며 한 도로위에서 신나게 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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