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 쓰나미가 몰려온다

일기예보는 날씨변동을 미리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렇지만 미리 날씨를 알아도 긴밀하게 대비책을 마련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폭설(暴雪)이나 홍수(洪水)가 실제로 발생해 작살이 난 후에야 허둥지둥 피해복구에 나서곤 한다. 이민정책을 둘러싼 현재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와 이민자 커뮤니티의 상태가 마치 이와 같다.

작년 11월 중간선거는 이민자 커뮤니티에겐 우울한 일기예보였다. 앞으로 몇 년간 이민자 커뮤니티가 강력한 쓰나미의 영향권 안에 놓여있게 되었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그 쓰나미의 정체는 반이민 정책 또는 법안의 모습으로 이민자를 집어살킬 거대한 해일(海溢)이다.

피해규모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살떨리는 반이민 쓰나미의 진원지는 연방하원이다. 법안통과에 필요한 과반수를 넘치게 확보한 공화당은 승자의 권리로 산하 위원회의 위원장들을 내정했다. 이민정책과 관련 눈여겨봐야 할 위원회는 법사위원회, 이민소위원회, 국토안보위원회 등이다. 이들 위원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향후 이민정책의 향방이 대충 읽혀진다.

법사위원회는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모든 법안의 법률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입법활동의 핵심기구다. 여기엔 지난 회기에서 동 위원회의 공화당측 간사였던 라마 스미스 의원이 위원장으로 등극했다. 스미스란 인간의 이민자에 대한 태도는 ‘추격자’로 묘사된다. 이 쉐이는 일찌기 90년대부터 반이민 세력의 선봉에서 이민자를 때려잡고자 재랄을 떨어 온 전력이 있다.

바로 96년에 부분 개악된 이민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주역이다. 당시에 부분 개악된 이민법은 아직까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서류미비 거주 경험자의 미국 재입국 금지(6개월 이하 거주는 3년, 그 이상은 10년까지), 영주권자의 추방요건 강화가 골자(骨子)다. 이후 사소한 경범죄를 저지른 전력만으로도 미국에서 내쫓기는 사례가 부지기수(不知其數)로 일어나게 되었다. 텍사스를 지역구로 둔 이 자슥은 앞으로 이민자 사냥에 적극 나서는 카우보이의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민소위원회는 이민관련 법안을 1차로 심의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중요한 기구다. 선거가 끝난 직후 애초에 위원장으로 스티브 킹 의원이 내정됐으나 애리조나 총격사건 직후 엘튼 갤리글리로 전격 교체됐다. 대신에 스티브 킹은 부위원장으로 여전히 활약할 예정이다. 사실 두 명다 이민정책에 있어선 초록이 동색이다.

특히 스티브 킹은 이민자를 ‘인정사정 볼 것 없다’식으로 다루는 싸가지 제로의 정치인이다. 이 쉐이는 평소에 이민자를 가축에 비유하는 발언까지 일삼아 공화당 내에서조차 황당해하는 꼴똥이다. 이민소위원회 위언장으로 내정되자마자 미국출생 서류미비자 자녀들의 시민권 부여를 금지하는 속지주의 철폐를 첫 작품으로 선보였다. 라티노 유권자들의 거센 반발과 같은 공화당내 라틴계 의원들까지 나서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바람에 비록 위원장직에선 낙마했지만 여전히 요주의 인물이다.

국토안보위원회는 9.11사건 직후에 신설되어 안보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안보의 미명하에 이민자를 탄압하는 정책과 법안을 양산하기 때문에 문제다.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으론 롱아일랜드에 지역구를 둔 뉴욕 한인사회에도 친숙한 피터 킹 의원이다. 피터 킹은 반이민세력에게 있어 한국 축구대표팀으로 비유하자면 박지성과 같은 존재다. 이민자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반이민 정치인들의 주장격인 인물이다.

이 쉐이는 이민자를 대량학살하려고 했던 ‘살인의 추억’을 간직한 인물이다. 2005년에 역사상 최악의 반이민 법안으로 평가받는 센센브레너-킹 법안을 하원에서 발의하고 통과시킨 장본인이다. 센센브레너-킹 법안은 서류비비자를 범죄자로 취급해 형사소추(刑事訴追)하고 서류미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사람도 형사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완전 어이상실의 내용이 골자였다. 이 법안에 따르면 서류미비자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이민자가 졸지에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현재 이 자슥은 엄청난 의욕을 불태우며 서류미비자를 고용한 사업주 단속을 비롯한 반이민 법안 10종세트를 준비중이다.

한편 지난 중간선거에서 이 놈을 돕는 한인 후원회가 결성되었던 바 그건 정말 사람 빡돌게 하는 삽질이었다. 미국 최고의 반이민 정치인을 이민자 그룹이 후원했다니 다른 이민자 커뮤니티엔 쪽팔려서 쉬쉬해야 할 블랙 코메디다. 앞으로 특정 정치인을 후원할 땐 제발 생각좀 하고 더 나아가 이민자의 입장에서 정책적 요구를 동반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길 바란다. 옥석을 가리지않고 아무 정치인을 만나 다정하게 악수하고 사진찍고 돈 갖다바치면 한인 정치력 신장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이렇듯 이민관련 입법활동에 중요한 핵심 위원회의 위원장들의 라인업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한 마디로 그간 민주당 주도 의회에서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반이민 ‘올드보이’들의 화려한 귀환(歸還)이다. 반이민세력들에겐 그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올스타로 구성된 드림팀이다. 반면에 이민자의 입장에선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위협하는 공포의 저승사자들이다.

얼마전 버지니아주에선 주의회가 아예 전담기구(Special Task)를 설치해 무려 16가지의 반이민 법안을 상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서류미비 학생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고 체포자를 대상으로 경찰이 이민신분을 확인하도록 하는 등의 전형적인 이민자탄압 조치들이다. 이는 비단 버지니아주의 문제만은 아니다. 연방차원의 이민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콜로라도, 미시시피를 비롯해 각 주에서 반이민 정책입안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나쁜 역사는 반복된다. 작금의 상황은 마치 1990년대 중반을 연상시킨다. 92년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후 실시된 94년 중간선거에서 이른바 ‘공화당 혁명(Republican Revolution)’이 일어났다. 역사상 최초로 한 정당이 상원과 하원을 동시에 싹쓸이하게 되었다. 의회권력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후 합법 이민자까지 포함해 사회보장 혜택을 대폭 삭감하는 등의 반이민 법안을 연속 상정했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가 입안한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란 이름의 정책기조 하에 이루어진 조치들이었다.

90년대 중반의 반이민 추세는 연방차원의 법안입안 이전에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점의 불꽃으로 시작됐다. 94년 중간선거를 맞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민발의안 187(Proposition 187)’이 투표에 부쳐져 통과됐다. 이 주민발의안의 내용이 지금 버지니아에서 준비하고 있는 반이민 법안과 그 내용이 판박이다. 서류미비자 학생들을 학교에서 적발해 내쫓고 서류미비자에겐 어떠한 정부혜택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90년대 중반에도 지금처럼 미국은 경제위기의 상황에 빠져 있었으며 사회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런 특정한 사회분위기를 맞으면 이민자와 연관되어 미국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우선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정부의 역할과 재정정책을 둘러싼 첨예(尖銳)한 입장대립이 발생한다. 그 와중에 대규모 복지예산 삭감이 추진되고 그 첫번째 타rpt으로 당연히 이민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아울러 이민자에 대한 공격은 가장 약한 고리인 서류미비자를 표적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서류미비자를 집중 공격하는듯 하지만 종국에는 합법 이민자도 반이민 광풍에 휩쓸리게 된다. 90년대에 합법 영주권자의 SSI, 푸드 스탬프를 삭감해 모든 이민자 커뮤니티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던 기억이 바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반이민 추세가 위험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정책이나 법안의 문제만은 아니기때문이다. 이민자를 혐오하는 반이민 정서가 대중심리로 고착(固着)되어 이민자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넣은 경우가 발생한다. 90년대에도 반이민 세력들은 이민자를 사회보장비만 축내고 미국사회를 좀 먹는 암적인 존재로 묘사하곤 했다.

현재에도 보수언론과 극렬 반이민 정치인 그리고 티파티와 같은 집단에 의해 이민자는 미국사회를 망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건너온 에일리언의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민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정확하지 않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어제도 오늘도 반이민세력들은 이민자를 공격할 논리구축에 매진(邁進)하고 있다.

반이민 추세는 또한 이민자에 대한 혐오심리 유포를 넘어 비극을 잉태(孕胎)하기도 한다. 지난 수 년간 뉴욕을 포함해 미 전역에서 발생한 혐오범죄(嫌惡犯罪)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년여 전인 2008년 겨울,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한적한 동네인 패초크에서 에콰도르 이민자인 마르셀로 루세로 씨가 일군의 백인 청소년들에게 칼에 찔려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어났다. 사건의 주동자들인 청소년들은 “멕시칸들을 색출하자!”고 소리를 치며 동네를 휩쓸고 다니다 마침 눈에 뛴 루세로 씨에게 테러를 가했다.

혐오범죄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미국에 유럽계 백인들이 본격 이주하던 시기에는 후발 이민자들이 같은 백인이면서도 먼저 와 자리잡은 백인들에게 멸시받고 조롱당하곤 했다. 그 이후엔 흑인들이 혐오범죄의 주요 피해자였으며 최근에는 이민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특히 혐오범죄는 합법, 비합법 이민자를 가리지 않고 자행(恣行)된다는 점에서 반이민 추세를 그저 서류미비자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을 일깨운다.

아시안도 혐오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82년 디트로이트에선 백인 아버지와 아들이 술집에서 빈센트 친이란 중국계 미국인과 말다툼이 벌어진 끝에 그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인 사건이 있어났다. 당시 그들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부진으로 해고된 상태였으며 빈센트 친을 향해 “너희 일본놈들 때문에 미국인들이 직업을 잃고 있다!”고 광분하며 결혼식을 하루 앞두었던 그 중국계 청년을 살해했다. 그런데 두 명의 피고인은 고작 3천 달러의 벌금과 3년 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데 그쳤다. 이 사건은 추후 한국계 감독인 크리스틴 최가 5년간의 재판과정을 추적한 다큐영화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를 제작, 유포하면서 광범위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반이민추세는 이민자 복지예산 삭감부터 극단적인 혐오범죄까지 매우 광범위한 피해를 양산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본격적인 반이민 추세가 미국사회를 휩쓸기 딱 좋은 사회환경과 정치적 배경하에 놓여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금이야말로 이민자 커뮤니티에겐 각별한 주의와 각성이 요구된다.

반이민 추세의 나쁜 역사는 한편으론 이민자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를 가능케한 반격의 역사를 여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90년대까지 변변한 전국단체 하나 갖추지 못했던 이민자 커뮤니티는 당시의 반이민 추세를 계기로 전국단위의 캠페인을 벌이며 비로소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6년에는 이전에 삭감되었던 이민자 복지혜택을 일부 복원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센센브레너-킹 법안이 통과된 직후인 2006년에는 미 전역에서 수 백만 명의 성난 군중들이 “We Are America!”를 외치며 이민자 대행진을 펼쳤다. 시작은 시카고 이민자 집회였다. 주최측은 수 천명 정도의 이민자를 결집할 계획이었는데 역사상 최악의 반이민 법안의 하원통과에 격분한 무려 30만 명의 이민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어서 뉴욕에서 40만, 그리고 이민자 행진의 정점이었던 로스엔젤레스에서 100만 명의 군중이 행진을 벌였으며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행진이 이어졌다. 60년대 민권운동 시절의 백만인 행진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과거의 베트남 반전운동 시위대를 능가하는 규모의 이민자 대행진을 두고 미 주류언론에서는 “잠자는 거인이 깨어났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제는 잠자는 거인이 보다 큰 걸음을 옮겨야 할 때가 되었다. 2006년 이민자 대행진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조직되지 않은 대중의 일회성 행사였다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 미국에서 풀뿌리 커뮤니티 조직화로 정치인들마저 벌벌 떨게 하는 유력한 정치집단으론 반이민 세력이 한 축인 티파티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적들에게서도 배울게 있다면 배워야 한다. 이민자 커뮤니티도 각급 단위의 조직화를 통해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우뚝 서야한다.

2010년의 마지막 달에 드림액트가 통과 직전에 좌절되면서 이민자 커뮤니티의 일년은 완벽한 패배로 종결됐다. 앞으로 1~2년 동안의 상황예측도 그리 밝지 않다. 동시에 반이민 추세는 엄청난 기세로 이민자 커뮤니티를 괴롭게 할 전망이다. 이민자 커뮤니티는 세익스피어 비극의 한 구절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말이 어울리는 처지에 직면해 있다. 반이민 쓰나미가 몰려온다. 싸울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