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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엄마와 독수리 오형제가 다채롭게 펼쳐가는 삶, 지구끝 대륙 남아프리카에서 전하는 달콤쌉싸름한 이야기. 20여년의 정형화된 문화생활과 딱딱한 책상을 훌훌 털고 방목된 자유를 아름다운 빛깔, 무지개 나라의 사람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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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가족의 행복한 나들이 (上) 기러기 엄마 생활 7년차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4-08-03 (일) 11:49:19

 

얼마전, 가족애가 유달리 돋보였던 한 동물가족을 볼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만한 동물들이 왜 그리도, 흥미롭게 보이는지..,어린아이마냥, 신기하게 지켜 보았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마음 한구석이 짠 한 것은 왜일까?

 

남편의 사랑과 그리움이 깊어만 가는 골은 어디가 끝인지..계속 되는 기러기 엄마 생활에 신물을 느끼고 있는 나로선, 그 가족의 광경은 참으로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이런 것이 가족이구나..,미소를 머금게 한다. 오리 가족은 새끼들이 출생한 이후, 초행인 듯 보였다. 아장아장 걷는 새끼들이 앞장 선 부모를 따라 쫄래쫄래 따라 나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행여라도 부모를 잃을까..,일렬종대로 부모를 따라 간다.

 

 

 

 

  

 

 

그러다가 첫 난관(難關)에 부딪쳤다. 쇠로 된 펜스였다. 잠시 멈췄다가 사이에 갈라진 틈을 발견하곤 넘어 가는 것이다. 무난하게 모두 넘어 갔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엄청난 대로가 나타나는게 아닌가., 이 도로는 8차선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곳이라, 차들이 과속으로 달리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그래도 이 도로를 넘어야 하는 것은 그 맞은 편에 살기 좋아 보이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기때문이다. 아마도 그곳으로 이사를 가는 모양이다.

 

 

 

 

 

 

그곳에 닿으려면 목숨을 내놓고 가야만 한다. 사람도 위험해서, 건너기 힘든 도로를 새끼들과 함께 종종걸음으로 건너야 하니..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어떻게든…도와주고 싶은 필자는 오히려 그들에게 겁만 주는 존재였다. 간신히, 도로 중앙선까지 건너 온 몇 마리 새끼들은 질풍처럼 달리는 차의 바람에 휘청거리는 등 그야말로 바람 앞에 놓인 등불,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다.


 

 

  

 

 

마침, 그때 새끼들의 아비는 온 몸을 던져 도로 한 가운데로 가더니, 쌩쌩 질주하는 차들을 stop이라도 시키려는 듯 “꽉꽉” 소리를 내면서 어미와 새끼들에게 빨리 건너 오라고 신호를 한다.

 

 

 

 


 

한 운전자가 그 모습을 보고., 서서히 차를 멈추게 되었고 다른 차들이 줄지어 서기 시작했다. 새끼의 아비는 교통경찰마냥, 다소 여유있게 새끼들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빨리 오라고 “꽉…꽉” 소리를 내며 재촉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차량 운전자들은 동물을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레 몸에 밴덕에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다. 동물이 아닌, 한 인격체인 사람을 보듯..,그들이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문화는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아닐까..,

 

 

 

 


 

천신만고끝에 대로를 넘었지만 세번째 난관을 만났다. 자기 키보다 높은 곳을 올라 넘어 가야 하는 것이다. 몇몇 새끼들은 올라갔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올라가지 못하고 “캑캑” 소리만 내고 울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도와 줄 차례다 싶어 가까이 달려갔지만, 웬 걸…오리 가족들은 마치, 새끼를 낚아채기라도 하는줄 알고., 더 혼란스럽게 “꽉..,꽉..칵” 소리를 지르며 난리치는게 아닌가.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멀찌감치 떨어 져야 했다.

 

 

 

 

 

 

 

도와 주려는 내 마음도 모르는게 야속했지만 정말 끈끈한 가족의 모습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 하고 어려운 역경도 함께 극복하는 삶,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하는 그들의 가정은 동물의 세계이지만 느끼는게 많았다.

 

 

  

 

 

기러기 아빠, 엄마로 산다는 것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행복한 부부생활을 끊고 먼 나라로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이다. 얼마간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감히 주사위를 던져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즐거움보다는 힘들고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뒤로 한 채, 어둠의 터널 안으로 자청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밝은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지..모르지만 실패와 성공의 명암이 엇갈리는 유학, 모험의 세계에 발을 담그는 것이리라.

 

솔직히 다른 엄마가 기러기 엄마로 오고 싶다면 만류를 하고 싶다. 2012년 이곳에 합류한 올케와 애들이 있다. 딱 2년만 하기로 했으니.,올 연말에 가게 된다. 또 나에게는 다른 떠남과 슬픔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 엄마 생활은 험난한 역경을 혼자서 겪을 준비가 되어 있냐가 중요하다. 결코 쉽지 않은 고달픈 가시발길이니 말이다.

 

한국에서든 아프리카에서든 어떤 나라이든 간에 부부가 함께 한다면, 사막인들 어떠하랴.., 그 어려움을 타개(打開)할 능력과 담대하게 부딪쳐 보면서 낭만적인 삶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러기 엄마 7년차가 된 지금 나는 상처 투성이의 몸과 마음이다. 혼자서 살아온 길이, 너무 지치고 외롭고 힘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제는 케이프타운에서 최장수에 속하는 기러기 엄마가 된 것 같다. 2년 정도만 더 고생하자는 남편의 말에.., 신바람보다는 아직도 2년씩이나.., 라는 한숨이 더 나온다.

 

5개월 뒤에 가능한 빨리 오겠다는 말이 그나마…힘을 실어 준다. 그래…,조금만 더 힘을 내자. 지난주 토요일 남편이 방문했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약 10일간 가족과 함께 했다. 그 후로 며칠동안., 앓아 누울 수는 없었지만 계속 눈물로 며칠을 보내야 했다. 남편이 떠난 날부터 끊임없이 눈물이 나온다. 그만큼 힘들었고, 참았던 눈물들이.., 나오는 것 같다.

 

 

 

 

 

기러기 엄마로 살아온 7년의 생활이 더욱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강하게 보이려고 위장했는지 모른다. 언제까지나..,축 쳐진 오징어 같이 있을 수 없어 정신을 가다듬고 애들을 챙겨야지 하는 마음은 있는데.., 도통 몸이 일어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며..,마음의 위안을 갖고자 한다.

 

남편의 남아공 방문은 2년 6개월만이었다. 열흘간의 체류. 그간의 목마름이 해갈(解渴)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짧은 날들이지만 그리움의 단비를 적셔 주었다. 우리 가족의 보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혼자서 준비 해온 남편.

 

성격대로 우리 부부의 미래 구상을 다 해두었고.., 조금만 더 고생하자는 약속에 힘을 얻었다. 그래,,,정신 차리자 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힘을 갖고 남편이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남편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접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 안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 많이 바쁘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 역시, 애들 사교육비를 벌고자 시도한 푸드 비즈니스를 하고 있던 터라., 남편만큼이나 바빴고 또 열심히 살았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을 남편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난 남편의 비즈니스를 까맣게 몰랐다. 2014년 5월1일이 22주년 결혼기념일이었는데, 그 날에 맞춰 고백하는 것이다. 벌써 2년째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워낙 둔한 탓에 눈치를 채지 못했다. 깜짝 이벤트를 좋아 하는 사람이라., 남아공 방문조차 애들에게 비밀로 했다.

 

어쨌든 힘든 아내가, 행여라도 걱정할까 봐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간의 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3년전만 해도.., 위풍당당하고 품위 있던 그 잘생긴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체중이 반은 줄은 듯한 모습에 그간이 고생을 짐작하게 했다. 남편의 몸과 마음을 챙겨 주지 못해 아픈 마음이 정작 남편이 떠난후에 도진 모양이다., 한국에 도착한 남편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니.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제 크고 많아진 살림에 꼼짝 못하고 있다. 처음 남아공 입국할때는, 유학 2~3년을 계획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이제, 큰 딸과 작은 딸은 대학 1, 2학년이다.

 

 

 

 

 

 

 

내 살림의 덩치가 커진 것은 학교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푸드 비즈니스와 3남매와 함께 홈스테이 4명, 현지 홈스테이 1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단기 어학연수도 맡아 하고 있다. 이번 학기엔 세월호 참사로 취소가 되어 글을 쓸 시간이 생겼다. 또 구상하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국을 방문해서 완전히 못박아 둬야 하는 일이라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다.

 

기러기 엄마 7년차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때, 정말 힘들었던 해가 있었다.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었던 때이다. 기러기 엄마 2~3년차때는 그래도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나름대로 자신 있게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쾌감과 성취감으로 기분좋게 살아갔던 것 같다. 그러나 기러기 엄마 4년차는 최고의 고비요, 내 일생의 힘든 시기였다. 남아공 유학생활을 그만 해야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고집과 책임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中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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