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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 간도를 잊지 마세요”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5-08-03 (월) 11:29:44

<남아공의 최경자님이 우리의 소중한 영토 간도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해방 70년을 맞아 다시 한번 잃어버린 땅, 그러나 반드시 되찾아야 할 땅, 간도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단일 민족을 고집하는 대한민국이 또 다른 형제, 거대한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

잊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같은 언어, 같은 색깔 , 한 핏줄, 한 민족이 있는 곳,

한반도 세배의 땅덩어리 내 나라 말입니다.

2015815, 광복,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하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을 치면서 안식처를 뒤에 두고 우리 민족이 살고있던 그곳으로, 이동 또 이동 이렇게 저렇게 제국, 반봉건투쟁을 하기 위해서 떠났던 그들. 지금은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한국인이 만주(滿洲)라고 부르는 곳에 속에 살고 있습니다.

 

 

Duman북관지도.jpg

 

, 바로 간도(間島) 입니다. 그들이 갔던 그 곳은 바로, 우리 땅이었기에 그들이 아직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땅입니다.

 

19세기까지 버려졌던 땅, 주인이 없는 땅(무주지)인 간도를 우리 선조들은 19세기 말부터 이주해서 땅을 일구고 살아 왔습니다. 부지런함과 근면의 근성으로 백두산 동쪽 기슭의 비옥한 토지는 우리 민족이 개간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어 간도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간도의 범위는 두만강의 조그마한 삼각주에서 시작하여 한민(韓民)이 개간 했던 곳은 모두 간도라 부르기 시작하여 점차 서간도, 동간도, 북간도, 연해주까지 확대 되었습니다.

 

 

간도유래와 범위.jpg
이하 자료 간도되찾기 운동본부 홈페이지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에서, 홍범도 장군은 본오동에서 숫적 수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이룬 땅입니다. 일제 시절, 이 땅에서 우리는 해방을 위한 독립군이 양성 되었고 미래의 지도자들이 육성 되어 졌던 곳입니다. 일제치하에 있을 때, 물적, 인적 자원 공급함에 있어서도 좋았고 항일 투쟁하기에도 한반도 보다는 훨씬 나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 명목 하에 농토를 탈취(奪取)당한 농민들은 간도로 이주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간도, 만주 일대에는 중국인은 9,912호 이였는데 한국인의 호수는 52,881호였을 정도이고 농토 역시 전체의 52%를 소유했고 화룡과 연길 지방에서는 평균 72%가 우리나라 사람의 소유 농지였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허락 없이 개간하거나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간도는 우리 독립군들의 본거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일본 괴뢰국이 봤을 때, 간도는 골치 아픈 땅덩어리였으며 그래서 더 무참한 대 양민 학살, 만행, 위안부, 잔악한 생체실험 등을, 서슴지 않고 자행이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서간도에만 독립 단체가 대한독립단, 광복단, 광복군 총영혈성단 백산무사단 등이 활동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애국심과 독립을 위해 불태웠고 투쟁했던 애국자들이 지금은 중국 속에 한국도 아닌, 중국도 아닌 속에서 조선족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가고 있으며 마음 아프게도, 우리 민족 2세대들은 중국인으로써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바로, 이 땅!!!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간도입니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과 간도협약 110년이 되는 해 입니다.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해 이기도 합니다.

 

이 땅을 찾기 위해서는 왜, 간도가 우리 땅인지

, 중국이 소유하게 되었는지..

, 간도가 아직도 귀속(歸屬) 되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는 좀더 역사적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간도는 한반도 즉, 남북한 합친 3배의 면적으로 서 간도와 동 간도, 북간도, 연해주로 구분이 됩니다. 일본, 청과 간도 협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한, 청간의 국경문제는 여러 차례 논의되어 왔습니다. 1627년과 1636년의 양호간을 계기로 중립지대인 공광 무인지대가 설치되었고, 1712년에는 강희제의 국경 정책에 따라 청국 측의 강압으로 백두산 정계비가 설치되어 서 위로, 압록강, 동 위로 토문강으로 국경선의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후 170여년이 지나서 청국이 간도지방을 청국 영토화 함으로써, 다시 백두산 석비의 동위토문의 해석을 두고 청국은 두만강’, 조선은 토문강이라고 주장하여 1885년과 1887년 을유/정해 감계 담판에서 논쟁에서 벌어졌으나 최종적으로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04년 러일 전쟁 중에는 일본의 개입을 우려한 청국이 선후장정(韓靑邊界善後章程)’을 조선에 요구하여 잠정적인 조치로서 일단 백두산 석비(정계비)을 양국 경계로 하고 차후에 중앙정보간의 정식 협상에서 논의하여 결정한다라고 합의했습니다. 고지도나 기록 등을 보면, 서간도와 간도(동간도, 북간도) 지역이 조선 땅이라고 명확한 증거보다 중국 땅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훨씬 많은 것으로 판단되는 간도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인 분쟁과정을 겪어 왔습니다. 이 간도 협약이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무효로 인해 원천 무효이며 불법조약이라는 주장 외에도 종전 후인 1952428일 중국과 일본 간에 체결한 일화 평화조약 제4조에 “1941129일 이전에 일본과 중국 사이에 체결한 연도 조약, 협약 및 협정 전쟁의 결과로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중국에 대한 침략행위를 시작한 시기부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때 까지를 의미합니다. 간도협약은 1909년에 체결한 것이므로 여기에 포함되어 무효가 됩니다.

 

따라서 간도 문제는 일본이 개입하기 이전의 상태로 환원(還元)되어야 하므로 선후장정이전의 한중간의 간도 문제 상태로 돌려져야 합니다. 이것이 국제법의 법리로 보아 객관적으로 타당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간도 지역에 대한 국제법의 법리적인 타당성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독립국이었으므로 대일강화 조약에 참석하지 못하여 간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고 일본은 이제 간도문제가 일본의 쥔 이익과는 무관하다고 하여 발을 빼버렸습니다. 또한, 카이로, 포츠담 선언의 주요국 이였던 중국은 자국의 이권(利權)을 챙기기에 급급하여 한국에 반환되어야 할 권익을 회피하며 간도 문제를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중국은 한국과의 국경회담이 종료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남북이 분단 된 것을 기회로 북한 정권과 19621012조중변계 조약을 체결, 간도 지역 점유를 계속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이 되며 통일국가를 건국하게 되면 조선의 적통을 승계하게 되고 조선의 적통인 통일국가가 아직 결말을 보지 못한 중국과의 국경회담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간도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문제일 뿐입니다.” <참고 문헌, 간도는 누구 땅인가, 이성환, 간도 영토의 운명, 최장근, 담강>

 

 

간도위치.jpg

 

독도는 우산국의 복속도였던 곳으로 신라 지증왕때 우산국을 정벌(征伐)하면서 신라에 복속 되면서 독도 또한 우리 땅에 귀속되어 지금까지 왔던 것입니다. 독도문제는 사회적인 이슈이니..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간도의 경우는 너무나 심각하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을사조약은 고종의 비준(批准) 없이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외무대사, 박제순의 이름만으로 체결한 것이므로 무효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근거는 1963년 유엔 국제법 위원회가 제출한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VCLT)’에 따르면 강제나 협박에 의한 조약은 무효가 되어 있고 더군다나 그 협약은 위협(威脅)과 강박(強迫)으로 체결된 조약의 전형적인 사례로 을사 5조약을 들고 있습니다.

 

을사조약 무효=간도 협약 무효가 성립 되지요.

이와 같이 분명히 무효임이 드러나 있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1924년 바티칸 교황청이 우리나라 천주교 교구의 관할 영역을 표시한 지도는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사료로 독도, 제주도와 함께 간도를 한결같이 한국 땅이라고 칭했습니다. 일본은 쓰레기 만주철도 5현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의 황금 땅, 간도를 중국에 넘겨 준 것입니다.

 

아직도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젖어 있지는 않으십니까?

일본이 만들어 놓은 그 지긋지긋한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의 굴레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가 해방이 된지, 70년여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모두가 간도의 중국 영유권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고 있고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있다는 것이 그 예가 아닐까요?

 

간도를 중국에 넘겨 준 일본은 조선인들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나라 역사서 수 천권을 불 태웠으며 말 듣지 않는 사학자들은 처형 당했습니다. 말 잘 듣는 사학자들을 동원해서 역사적으로 간도의 영유권이 중국에 있다는 논리를 개발해서 퍼뜨린 장본인 역시, 일본인입니다. 사학자들은 시키는 대로, 역사의 기록으로 그렇게 남겨 주었고 조작된 역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대로 지금까지 배우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대와 근대 역사를 불문하고 치밀하게 짜집기 하여 그들의 구미에 맞게 역사를 조작, 왜곡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역사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우리 사학자들이 사학계를 독점(獨占)하게 됨에 따라, 오늘날까지 왜곡된 교육이 지속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간도의 영유권에 대해 별다른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도 모두 일본이 만들어 놓은 교육에서 비롯된,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탓이 아닐까요? <일부 첨언, 그 시대 인물 사학자의 글에서.>

 

우리는 하루 빨리 깨어 있어야 하고 그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역사적인 문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지금 중국은 엄청난 자금으로 그 옛 궁궐이나 성곽들 문화재 복원을 힘쓰고 있으며 고구려 역사를 자기들 역사로 만들기 위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하며 지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간도에 획을 그어 주던 압록강과 두만강, 백두산은 이제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압록강는 얄루쟌(Yalu Jan), 두만강은 투먼 쟌(Tumen Jan), 백두산은 장바이 마운틴(Janbai MT)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Britannica, 인터넷 대부분 영문 지도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안일한 현 정부를 그저 바라 볼 수는 없습니다. 민간인 단체 또는 간도와 독도찾기 운동본부 등, 간도 협약 100년의 시효를 남겨 두었을때, 직접 네덜란드 국제 사법 재판소를 찾아 가서 간도 협약의 무효와 제소를 했던 단체가 있습니다. 민회(민족회의)입니다. 어느 단체이든지 간에 작은 성금이라도 우리가 모아서 힘을 실어 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역사 바로 세우기에 관심과 동참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땅에 하루 빨리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되어야 만이 우리에게 화합과 안정을 줄 것입니다. 그 길 만이 우리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뿌리가 같은 조상이 같은 우리의 민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해방 이후, 급속도로 경제성장 일방통행만 한 것이 과연 황금의 땅, 간도를 놓치게 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70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참고 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민족회의(http://cafe.daum.net/grandcorea), 담강. 간도되찾기운동본부(http://www.gando.or.kr/) 그 외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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