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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중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 대학원에 유학,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미국동포 소릴 들으며 산지 17년. 기자로 출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공연기획자, 또 구멍가게 주인으로, 그것도 모자라 연극 연출에 자유기고가로 사는 자유인. 그럼에도 불변하는 한 가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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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무서운 미국의 재난..악몽의 2003 블랙아웃

글쓴이 : 앤드류 임 날짜 : 2011-01-28 (금) 12:14:10

뉴욕에 산 것도 18년째가 됐다. 그 동안 나는 재앙이라 할 만한 많은 일들을 겪었다. 96년의 미동부 대폭설(Blizzrd 96), 전 세계를 전쟁과 공황으로 몰고 간 2001년의 911 사태, 2003년의 미동부와 캐나다까지를 암흑(暗黑) 천지로 만들었던 정전 사태(Blackout) 등. 이런 큰 사건들 중간 중간에도 심각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이런 큰 재앙들을 겪고나니 왠만한 일들은 재앙이라는 말을 쓰기에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6.25를 겪으신 세대들은 이 말이 어떻게 들릴까 싶어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96년 대폭설 당시 뉴욕을 비롯한 미동북부 지역에는 33인치가 내렸다. 33인치면 86센티미터 정도다. 거의 1미터에 가까운 눈이다. 이번에 내린 폭설이 19인치였는데도 대중교통이 마비되고 휴교령이 내려지고 난리가 난 것을 보면 33인치가 얼마나 엄청난지 쉽게 짐작이 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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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과 터널은 통제되고 일반 승용차들은 도로에서 주행할 수 없었다. 학교가 휴교됐고 관공서는 물론 은행과 모든 비즈니스가 완전히 업무를 중단했다. 난방이 안되는 건물의 노약자들이 위험을 맞아도 비상 차량의 출동마저 어려웠다.

911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엄청난 재앙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통신도 마비되고 치안이 대 테러에 집중되다 보니 일반인들의 안전은 완전히 무방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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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시 바짝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솔직히 테러범들의 공격이 아니었다. 치안 공백을 틈탄 좀도둑과 강도들이었다.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 전에 가게에 들어오는 좀 도둑과 강도들부터 막아야 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재난은 미동부 최대의 정전 사태였다. 2003년 미동부와 캐나다 일부 지역을 완전한 암흑으로 만들었던 Blackout 말이다.

당시 필자는 험악하기로 소문난 브루클린에서 쥬얼리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금과 다이아몬드 같은 귀금속류를 파는 가게였다.

무더운 여름 한낮에 갑자기 가게의 모든 전기가 끊겼다. 에어컨도 꺼지고 진열장의 불도 나가고 컴퓨터도 작동을 멈추고 심지어는 비상시에 경찰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경보 장치도 먹통이 됐다. 디지털화된 전화도 모두 불통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옆 가게의 아랍계 주인이 황급히 들어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당장 셔터 내리고 문 걸어 잠그라고 말이다. 지금 정전(停電)은 그냥 정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 지역에 가게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잘 몰랐는데, 정전이 되면 통신이 두절되어 치안에 치명적인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기 나간 거 가지고 왠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잠깐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다. 당장 전화가 안 되니 누가 총이라도 들고 들어오면 경찰에 연락조차 못하는 것 아닌가. 험악한 동네 브루클린에서 말이다.

직원들과 함께 셔터를 내리고 가게를 걸어 잠궜다. 다행히 직원들 중 아프리카에서 온 기술자의 배터리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자체 발전 능력을 가진 라디오 방송국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방송을 통해 현재 미 동부는 물론, 캐나다까지 완전히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방 복구되는 일반적인 정전이 아니라 전력의 공급 자체가 완전히 중단된 사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귀가하고 외출을 삼가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하철도 선로 중간에서 멈춰섰기 때문에 승객들을 경찰이 내리게 해서 밖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했다. 전기 공급이 언제 이루어질지 조차 기약(期約)이 없다는 발표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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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직원들을 퇴근시켰다. 겁에 질린 직원들이 부랴부랴 나섰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와 동업을 하던 분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맨하탄에 외근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은 차를 가게 앞에 주차해 놓은 채 지하철을 이용해 맨하탄에 나갔고 볼 일을 마치고 돌아 와야 할 시간 즈음에 정전이 발생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뉴스에서는 지하철이 멈춰서 지하 선로에서 승객들을 내리게 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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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 전화도 되지 않았다. 도시 전체에 전기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이 기능을 잃은 터에 이동통신 회사들의 송수신기도 예외가 아니었으리라. 그야말로 전기로 되는 모든 것들이 마비된 것이다. 그러니 지하철도 도로의 신호등도 아무 것도 작동하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사업을 같이 하던 분의 안전이 걱정돼 극도의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전철에서 내렸는지,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는 알고나 있을까.

팔 물건(금)을 사러가다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다행인데 워낙에 부지런을 떨던 분이어서 할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면 더 큰 일이었다. 가방에 금덩이들을 잔뜩 들고 있을 것 아닌가. 그 금덩이들 때문에 사람이 상하면 어떡하나. 경험이 많은 분이어서 구매를 맡겼는데 그것부터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차를 가게 앞에 두고 갔으니 왠지 가게로 돌아 올 것 같았다. 내 차도 그 분의 차 뒤에 주차를 해 놓고 있던 터여서 일단 밖으로 나갔다. 가게 안에 있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다. 에어컨이 작동 안돼 방탄유리로 꽉꽉 막혀 있는 공간이 말도 못하게 덥기도 했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수많은 군중(群衆)을 보았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군중이라는 표현은 솔직히 너무 점잖다. 다름 아닌 폭도들이었다.

손에 야구 방망이를 든 사람들, 손망치에 심지어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부술 때 쓰는 속칭 ‘오함마’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가게들을 털고 있었다. 문을 부수고 유리창을 깼다. 아마도 주인이 저지라도 하면 손에 들고 있는 그 흉기들로 사람마저 해쳤으리라.

다행히 내 가게는 셔터가 내려져 있고 웬만해서는 부수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내 눈 앞에서 바로 건너편의 옷가게가 부서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봤다. (그 와중에도 우리 대한민국 사람 정말 대단하다. 옆집에 그로서리 스토어가 있었는데 셔터를 한 10센티 정도 열고 그 밑으로 무엇인가 팔고 있었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복새통을 이루고 소리를 질러댔다. 바로 ‘초’였다. 정전이 되고 초가 필요한 사람들이 그 가게로 몰려 온 것이다. 용감한 대한의 사나이, 델리 그로서리 아저씨가 바로 ‘전쟁 때도 돈버는’ 그런 사람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참으로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때 방망이를 들고 털 곳을 찾는 군중 속의 한 20대 초반쯤 되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친구의 눈에는 동양 놈 하나가 이 난리 통에 뭘 믿고 차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나 싶었을 것이다. 자동차에 채워놓는, 클럽이라는 쇠몽둥이 같이 생긴 둔기를 손에 쥐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몽둥이 든 청년은 내 배짱에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내 싸구려 차 한 대 터느니 해지기 전에 한 가게라도 더 털자는 마음이었는지 그냥 지나쳐 갔다.

동업하는 분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불통되다가, 몇몇 전화 회사들이 자체 발전기를 동원했는지 휴대 전화가 잠깐씩 연결됐다. 신호가 너무 약해서 그런지 전화가 걸리는 듯 하다가 끊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시도했는데 다행히 전달된 듯 했다.

“지금 어딘지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가세요. 내가 브루클린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 곳은 지금 미쳐가고 있으니 절대 오지 마세요”라는 내 메시지가 말이다.

잠시후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회신이 왔다. “거기서 지금까지 뭐 하세요. 얼른 떠나세요. 전 용케 버스 타고 가까운 친구 집에 와 있어요. 얼른 다른 곳으로 가세요.”

장사 경험이 많았던 그 분은 이 험악한 동네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모양이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안심하고 차를 출발하려 했을 때는 이미 밤 시간이었다. 밤이 되고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둠을 경험했다. 불빛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신호등도 껴져있고 가로등도 보이지 않는 어둠. 인간이 만든 불빛은 모두 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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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암흑을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마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어두울 수 있는지 짐작 하지 못하실 것이다. 분명 지하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방안에 불 끄고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온 세상이 칠흑(漆黑)같은 어둠이었다.

길은 차들로 가득했고 신호등이며 가로등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도로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이리저리 뒤엉킨 채 경적(警笛)을 울려대고 교통을 정리해야 할 경찰은 눈에 띄지 않았다.

30분이면 갈 거리를 4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했다. 몽둥이와 망치를 손에 든 폭도들과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된 암흑의 도시를 지나 몇 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낮에 본 광경들의 잔상(殘像)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억하시는가. LA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TV화면에 잡힌 폭도들의 광기 어린 약탈 장면들을 말이다. 나는 바로 내 눈 앞에서 그와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내 친구 중 하나가 뉴올리언즈에 살았다. 태풍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덮쳤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도 가게도 모두 물에 잠겨 뉴욕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고. 20여 시간을 운전해 뉴욕의 내 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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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켰고 CNN뉴스에 채널을 맞췄을 때였다. 친구부부가 갑자기 놀란 눈을 하더니 TV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이내 눈물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따뜻한 차라도 준비하겠다고 부엌에서 부산을 떨던 내가 놀라서 TV 앞으로 가자, 물에 반쯤 잠긴 상점들의 유리를 부수고 물건들을 들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부부는 방금 전에 자신들의 가게가 봤단다.

바로 어제까지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가게에 약탈자들이 들어가 물건들을 마구 들고 나오는 장면이 보인 것이다. 들고 나오는 물건들도 눈에 너무나 익은 것들이었다. 소중한 재산이 약탈당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TV에서 보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미국에서 재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이 약탈(掠奪)이다. 이웃과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웃을 조심해야 한다. 재난의 극복 이전에 가장 먼저 하이에나 무리들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알 카에다가 아니라 위험한 이웃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18년을 산 내가 터득한, 재난의 1차적 대처법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셔터부터 내려라.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문단속부터 잘해라.’

911 때도 미 동부 정전사태 때도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덮쳤을 때도 그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조국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고 재난이 닥치면 습관처럼 서로 돕는다. 홍수가 나면 재해 성금을 걷고 봉사자들이 수해지역으로 향하며, 나라에 외환이 바닥나니까 집에 소중히 모셔뒀던 금덩이들을 들고 나와 나라에 바쳤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난리를 틈탄 도둑질도 약탈질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 같이 겪는 불행을 다 함께 극복하자는 생각을 갖는다. 피해를 덜 입은 사람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다.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 과장을 하고 있을까. 사실을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을까.

기독교 정신에 기초해서 정의를 이루며 살려고 노력했던 미국인들은 실로 많은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졌던 축복이 곧 우리 민족에게 나누어 질 것이라고 희망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라면 너무 무리가 따르는 비약이라고 보시는가?

폭설이 내렸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폭설이 많이 내린다. 어제 하룻밤 사이에 뉴욕시에 19인치의 눈이 내렸다. 96년의 30인치는 아니지만 엄청난 적설량이다. 집 앞에는 차가 넘어가기 어려운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이 난리 통에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안전이다.

아침에 어렵게 출근한 직원들 모아 놓고 당부(當付)한다. 경찰 출동도 늦고 치안 인력이 피해 복구에 집중된 이 때, 수상한 사람들이 기웃거리면 조심하라고 지시한다. 눈때문에 교통이 불편하고 우편물 배달이 안돼 손님들에게 약속한 물건이 배달 안될 것을 걱정하기 전에 기회만 노리는 무리들을 먼저 걱정해야 한다.

내가 내 조국에서 곤란을 당했을 때와 지금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재난을 만났을 때 달라진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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