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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중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 대학원에 유학,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미국동포 소릴 들으며 산지 17년. 기자로 출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공연기획자, 또 구멍가게 주인으로, 그것도 모자라 연극 연출에 자유기고가로 사는 자유인. 그럼에도 불변하는 한 가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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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기획> 어느 기자와의 인연

글쓴이 : 앤드류 임 날짜 : 2011-06-09 (목) 15:15:00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뉴욕에 산다. 지연(地緣), 학연(學緣)은 없지만 인생의 선배요 기자 선배요 그리고 선배 칼럼니스트라서 나는 그를 굳이 선배라고 부른다. 더 솔직히 고백하건대, 선배라고 부름으로써 높아지는 내 위상에 대한 얄팍한 계산도 숨길 수 없고….


그가 어느 유명한 일간 신문의 기자였다거나 스포츠 기자로서는 드물게 대기자 품위(品位)에 올랐다거나, 나 같은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었던 인기 있는 칼럼니스트였다거나 또는 기자로서 받을 수 있는 굵직한 언론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한마디로 인정받는 저널리스트였다는 설명을 먼저 늘어놓는 일은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 중 그런 업적들은 순서 상 맨 뒷자리에 놓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애독자였다. 솔직히 나는 그가 일하던 언론사의 신문 자체보다 그의 글을 읽고 싶어하던 독자였다. 내가 미국에 있었지만 다른 일간지들에 비해 인터넷 판이 잘 꾸며져 있던 신문사여서 글을 읽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웹사이트를 열고 먼저 찾아 클릭하는 글 중 그의 논평이나 기사는 늘 우선 순위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著書)들도 참으로 재미있게 읽은 독자가 나다. 저술한 책들은 대부분 칼럼이나 재미난 뒷이야기들을 모은 것이었는데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날 흥미로운 사건 하나가 동포사회에 벌어진다. 바로 그 신문사가 뉴욕에 지사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지사의 책임자로 부임(赴任)해 뉴욕의 독자들에게 또 고국의 독자들에게 인사말을 쓴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인생이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의 칼럼이나 기사를 정해 놓고 읽지 않았다. 그는 내가 그렇게 하는 유일한 기자요 저널리스트였다. 그런데 왜 하필 그가 내가 사는 뉴욕에 온단 말인가.


뉴욕 지사로 온 뒤로 그의 기사를 읽을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 토요일마다 칼럼을 쓰기는 했지만 지사의 경영과 데스킹(기사를 관리 감독하는 일)에 주력하는 그야말로 관리자의 역할에 더 비중을 두는 듯했다.


그 신문은 차별화된 콘텐츠로 동포사회에서 높은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그의 이름이 신문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문도 몇 차례의 변화를 겪더니 뉴욕의 가판대에서 사라졌다. 또 몇 년 후 그와의 인연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이어진다.


이번에는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직접 말이다.


어느 언론사 행사장이었다. 난 그날 있는 후배의 공연을 연출(演出)했다. 행사장 밖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각진 얼굴에 전혀 트렌디하지 않은 안경을 쓰고 무덤덤을 넘어 무표정 그 자체로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기자같이 생긴 그를 만난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유명인을 보면 쭈뼛대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뉴욕에서 대 배우인 로버트 드니로를 우연히 만났을 때 <디어 헌터>부터 최근작까지 당신의 영화를 안본 것이 없다고 좔좔 읊어대 그의 집에 초대 받고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신 적도 있고, 역시 유명한 배우인 윌렘 데포에게도 같은 식으로 그가 출연하는 공연 초대장을 받아낸 적도 있다. -이런 특성상 아저씨들의 로망인 소녀시대나 아이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연륜있는 대배우들에게 달려가 ‘팬입니다’했으니 망정이지 걸그룹이나 아이돌 스타에게 그랬으면 얼마나 아저씨스럽게 그 어여쁜 소녀들을 곤란케 했으랴...-


그에게 달려가 아는 척을 했다.


‘당신이 쓴 많은 기사를 읽었고 당신이 근무하던 신문사의 웹사이트를 열면 제일 먼저 당신의 칼럼과 기사를 클릭해 읽은 애독자다. 간혹 독자들의 댓글에서 부당한 비판이 있으면 그들을 혼내주기도 한 나는 당신의 열렬한 팬이라 할만하다.’


처음에는 ‘누구신지...’하는 표정을 짓던 그 무뚝뚝한, 천상 기자밖에 할 게 없어 보이는 사나이는 이내 안경을 치켜 올리며 대꾸했다.


‘아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근황을 전해 들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도국장으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다. 동포 언론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걱정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와 나는 다음을 기약(期約)하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물론 나는 이후에도 팬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잊혀지지 않을만큼 전화하기, 술 한잔 살 터이니 만나자고 보채기 등등... 보안이 그다지 철저하지 않거나, 아니면 필요 없는 동포 언론사고 또 후배 둘이 근무하는 곳의 데스크로 있었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들러 커피 한잔하자며 꼬여내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후배 보러 들어갔지만 목적은 그를 보는 것이었다. 후배들에게는 미안하다. 그래도 김밥 몇 줄은 사들고 가 나눠줬으니 그 정도 선에서 양해를 바랄 뿐이다.


이제 제법 친한 척을 할 수 있는 사이까지 진척(進陟)이 되고 퇴근 후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분(親分)을 쌓게 되었을 때, 그가 내게 영예로운 제안을 해왔다. 나 역시 잠깐이지만 기자를 한 적이 있고 그 배경을 알게 된 그가 자신이 창간한 웹진의 칼럼을 써보라고 권한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감사히 수락(受諾)을 했다.


짐작하셨겠지만 그는 뉴스로의 편집장이자 대표인 노창현 대기자다.


 


한국 언론 사상 최연소 대기자(大記者) 타이틀을 달았던 그는 한국의 스포츠 언론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사체와 과학적인 경기분석,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의 상세한 활약상이 그를 통해 대중에게 전해졌다. 그들을 역사 속에 기억되게 한 것이 그였다. 내가 알건대 그만한 스포츠 기자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전문적인 분석도 그랬지만 스포츠의 뒷 무대를 그렇게 명쾌하게 조명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의 글은 군더더기 없어 읽기 편했고 담백함 속에는 어김없이 따뜻함과 감동이 있었다. 저널리스트들이 범하기 쉬운, 세상을 다 아는 듯한 교만(驕慢)도 그에게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를 알기 전부터 얼마나 진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글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팬이요, 열성 독자가 된 것이다.


그의 재치 또한 독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스포츠 스타들의 애칭이 누구의 작품인지 안다. 그는 타고난 달필가요 글쟁이였다.


나의 직업사도 글과 늘 밀접했다. 잠깐의 기자 생활과 광고회사의 카피를 쓰는 일을 했고 평론가로 작가로 때론 번역으로 이런 저런 잡글을 쓰며 살았다. 그런 나에게 그의 글은 지침서(指針書)와 같았다. 그 담백함과 군더더기 없는 유려함을 늘 배우고 싶었다. 


  


내게 있어 그는, 대기자여서 아니면 굵직한 언론상을 여러번 수상하고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축하도 받은, 속된 말로 잘나가는 기자여서, 또는 대한민국 국어교재에 실린 칼럼을 쓴 유명인이어서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들은 세상이 그를 알아준, 당연한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내게 존경스러운 이유, 자랑스런 이유는 그야말로 진정한 기자라는 사실이다.


그 노창현 대기자가 1년여전 세계 최초의 칼럼형 웹진, 뉴스로를 창간했고 지금 나는 어엿한 뉴스로의 칼럼니스트다. 자랑스러워 할 충분한 이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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