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눈(the third eye)이란 문화와 수행체계에 따라 명칭은 다를지라도 동양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개념이다.
중국에서는 천목(天目)이라 부른다. 인도에서는 ‘야즈나 차크라’라고 한다. 선도에서는 ‘상단전’이라고 부른다. 이 외에 ‘영안’, ‘신안’, ‘천안’ 이라고 이르기도 한다. 천목의 위치는 양 미간 사이 이마의 옴폭 들어간 부분에 있다.
불상(佛像)을 보면 눈썹 사이에 빨간 점을 그려 넣거나 보석 모양의 유리를 박아 넣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제3의 눈이다.
제3의 눈을 열게 되면 다음과 같은 능력이 발달한다. 직관력, 신통력, 천리안, 예지력, 투시력, 통찰력 등으로 불릴 수 있는 기능들이다. 제3의 눈은 우주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해부학적으로는 송과선(松果腺)과 연결되어 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점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이 영적으로 발달하고 의식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3의 눈이 열려야 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제3의 눈을 연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제3의 눈을 열 수 있는 바탕이 돼야 한다. 제3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를 감당할 수 있는 육체적, 지적, 정서적 바탕이 마련돼야 본인에게 유익하다.
그래서 선도수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하단전을 먼저 쌓고, 중단전을 연 다음, 상단전을 여는 순서로 공부한다. 하단전, 중단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단전만을 열게되면 귀신같은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조급한 수행자들이 보다 빨리 신통력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상단전만을 서둘러 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빙의(憑依)되거나 주화입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필자의 경우 한참 정신세계 분야에 몸담고 있었을 때 제3의 눈이 열린 사람들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대게 외형적으로도 천목 부위가 남달라 보인다.
아무튼 천목은 수련에 의해 체계적으로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천목을 연 사람들의 방법을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천목에 의식을 모으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더러 천목 부위를 손으로 자극하거나 물로 씻어내는 물리적 방법을 병행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정신세계라고 하는 것은 어디 하늘나라에 있는 별다른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 뇌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되 차원이 다를 뿐이다.
라디오 전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신세계에도 여러 차원이 있다. 라디오 전파 보다는 TV 전파가 더 고급이고, HDTV 전파는 더욱 고급이듯이, 정신세계에서도 고차원으로 갈수록 고급정보를 접하게 된다.
제3의 눈을 열고 바라보는 세상은 세속의 눈으로 보는 것과 완전 다른 세상이다. 무의미해보이거나 우연인 듯한 사건들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보인다. 이 세상에는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필연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제3의 눈을 연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란 속담처럼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사느니 행복한 돼지로 살다 가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개념보다는 선택의 개념이라 본다.
영화 매트릭스에 보면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비록 환상일지언정 그냥 매트릭스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행복은 깨달음에서 나오고, 깨달음의 과정에서 제3의 눈은 열리기 마련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가? 빨간 약인가? 파란 약인가?
결심이 섰다면 제3의 눈을 여는 길로 필자와 함께 들어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