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전문필진 l 사진필진 l 열린기자 l Kor-Eng    
 
전문필진
·대안스님의 에코붓다 템플라이프 (1)
·박경준의 돈돈돈 (9)
·박묘행의 머슴으로 살기 (2)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9)
·박종택의 별나라형제들 이야기 (71)
·서미경의 코러스(Kor-us)경제 (7)
·송암의 한방이야기 (22)
·송정훈의 보험속 내인생 (9)
·스테파니장의 교육칼럼 (17)
·원은미의 Better Half (7)
·이계선의 김재규복권소설 (60)
·임부경의 알기쉬운 역학교실 (13)
·정영민목사의 신앙칼럼 (8)
·정정인의 Sports Med (11)
·제임스정의 美대학진학성공법 (2)
·차크라의 만행열전(漫行列傳) (5)
·최지용의 Dog한 이야기 (27)
·한인수의 the Game of Golf (17)
차크라의 만행열전(漫行列傳)
인도에서 야즈나 차크라, 선도에서는 상단전이라 부르는 천목(天目)은 제3의 눈이다. 우리가 천안통(天眼通)을 가지면 무엇이 열릴까. 정신세계에 관심있는 이른바 기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속의 별난 이야기들을 찾아본다.
총 게시물 5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다시 히말라야를 꿈꾼다

글쓴이 : 차크라 날짜 : 2012-12-30 (일) 13:47:25

 

 

1998년에 인도 북부 히마찰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에서 몇 달 지낸 적이 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한 호텔에서 같은 방에 머물렀던 한국인 스님의 한번 놀러오라는 얘기를 믿고 음력 섣달 그믐날 무작정 찾아갔던 것이다.

 


 

그 스님은 반가이 맞아 주시며 떡국을 끓여주셨고 이튿날에는 아래 마을에 숙소를 마련해 주셨다. 나는 거기서 티벳 노스님과 노스님이 자식처럼 키우는 강아지 ‘신뚜’와 살았다. (신뚜는 티벳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다람살라는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곳인데 티벳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한국인 스님은 당시 12년째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있는 청전 스님이었다. 아무튼 그게 인연이 돼 6개월이 넘은 여행이 심신이 지치기도 했던 나는 말도 안 통하는 티벳 노스님과의 동거(同居) 생활을 시작했다.

 


 

티벳 노스님은 정말로 티벳에서 넘어온 분으로 영어를 전혀 못했다. 나는 티벳말을 인사말 외에는 못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 대화가 통할 리 없었다. 말이 안 통하니 오히려 편했다. 처음에는 식사를 몇 번 대접했으나 식성이 서로 달라 각자 알아서 먹게 됐다. 그래도 웬만한 것은 바디 랭귀지로 다 통했고 가끔 청전 스님이 오셔서 통역을 해주시기도 했다.

 

당시 내가 있던 아래 마을이 다람살라이고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꼭대기는 맥클로드 간지라고 불렀다. 그 중간 지점 쯤에 티벳 도서관이 있는데 사원 겸 대학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기 기숙사에는 한국인 여행자들도 몇 명 살고 있었다. 학교 입학 허가를 받고 학생 비자로 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나는 인도 여행 비자가 6개월이 지나 만료돼 네팔 인도대사관에서 연장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고 트랜짓 비자를 받아 인도에 다시 들어와 있던 상태였다. 티벳 도서관에서 입학허가서를 받고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인도대사관에서 학생 비자를 받으려 했으나 학생 비자는 한국에 있는 인도대사관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6개월짜리 여행 비자는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연고로 다시 인도로 돌아와 다람살라에서 몇 달을 지낼 수 있었다.

 


 

다람살라는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이라 해발 2천미터 가량 된다. 인도가 더운 나라지만 고도가 높다보니 한국 기후와 비슷하다. 겨울에는 눈도 내린다. 인도 집들은 냉방 시설은 있어도 난방 시설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람살라도 마찬가지였다. 기온이 그리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밤이면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4월까지도 견뎌야 했다.

 

5월에 남인도를 여행하기 위해 저지대로 내려오니 이곳은 또 불볕더위다. 폭염(暴炎)으로 하루에 수십명이 죽었다는 뉴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에 나고 그랬다. 이틀 동안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기차는 달궈진 깡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뜨거워서 쇠로 된 부분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더위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실감났다. 냉방칸에 탔으면 사정이 좀 좋았겠지만 나는 그때 철저히 인도 서민 수준에서 먹고 자고 여행했다.

 

인도 여행기는 책 한권으로도 족히 나올 것이지만 이쯤에서 줄이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7월에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다람살라를 떠난 이후 신뚜가 표범에게 물려 죽고 곧 이어 노스님도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전스님과는 한국에서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나중에 만났다. 나는 다시 인도로 돌아갈 요량으로 1년 오픈으로 뉴델리행 비행기표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인도로 가지 못했고 그 표는 그냥 버렸거나 소액 환불 받았거나 했다.

 

여행 중 쓰다 남은 경비도 달러로 갖고 있었는데 청전 스님과 헤어질 때 드렸다. 그 돈을 드리고 집으로 걸어오며 광화문 앞을 지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펑펑 울었다. 스님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났다.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교류도 점차 뜸해지다가 미국에 온 이후로는 완전히 소식이 끊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청전 스님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대통령 선거 재외선거 투표를 하러 12시간 버스를 타고 뉴델리로 오셨다는 소식이 연합뉴스에 실렸던 것이다. 생애 최초의 투표를 하러 오신 것이다.

 

청전 스님은 원래 신학교를 다니다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을 만나고 난 이후 곧장 출가를 한 특이한 경력이 있다. 출가 초기에는 선거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며 더구나 인도에서 20년 넘게 지냈으니 투표를 할 기회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셨던 모양이다. 청전 스님은 두 대통령 후보자들과 동갑(同甲)이다.

 

나는 기사를 쓴 특파원에 이메일을 보냈고, 다행히 그 특파원은 청전 스님의 전화 연락처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청전 스님과 다시 연락이 됐다. 스님은 아랫마을로 내려와 살고 계시며 2년전부터 집에 인터넷도 설치해서 쓰신다고 한다. 참 세상 좋아졌다. 내가 여행할 당시에는 국제 전화나 겨우 되던 시절이었는데.

 


 

청전 스님은 한겨레신문이 운영하는 수행 웹진 휴심정에 필진으로도 활동하고 계셨다. 연락이 된 이후 일주일에 몇 번씩 옛 시조와 함께 이메일을 보내오신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돼 가난한 산골 마을에 보시(布施) 받은 옷과 약품을 나눠주러 다녀오시기도 했다고 한다.

 

인터넷은 뉴욕과 히말라야 산골 마을의 거리를 없애 버렸다. 그리고 십여 년 세월을 넘어 스님과의 인연(因緣)을 다시 이어주었다.

 

나는 다시 히말라야로 갈 날을 꿈꾼다.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발행인 : 洪性仁 l편집인 : 盧昌賢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USA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