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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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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Kim Ki-Duk)’이 남긴 것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1-04-18 (월) 13:31:19


 

 

‘한국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칸느에 간다. 그가 만든 첫 다큐멘타리 영화, ‘아리랑’을 들고서 말이다. 듣자니 영화평론가인 정성일이 “김기덕 감독이 만든 가장 슬픈 영화”가 ‘아리랑’이란다. 참 오랫만에 듣는 ‘김기덕’이고 보면 2008년 ‘김기덕감독 회고전’을 준비할 때가 떠오른다.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김기덕감독 회고전의 타이틀은 ‘김기덕(Kim Ki-Duk).’ 지난 10년 간 김기덕 감독이 만든 총 14편의 영화가 상영된 영화제의 제목은 그저 ‘김기덕’이었다. 감독이름 뒤에 의례적으로 붙게 마련인 ‘회고전’이란 꼬리를 자른 사람은 MoMA의 수석 큐레이터인 로렌스 카디쉬(Laurence Kardish)였다.



“김기덕은 어때?”



2005년, ‘임권택감독회고전’을 마치고 난 직후, 다음 프로젝트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래리가 불쑥 던진 말이었다. MoMA와 인연을 맺어 1987년부터 래리와 함께 한국영화제를 만드는 내가 처음으로 주춤했던 순간이었다. 김기덕-매력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영화를 감당(勘當)하기엔 소심한 나였다.

 

 

 

하지만 과거 10여 년간 신상옥 감독, 임권택 감독 등 연달아 기획된 ‘거장시리즈’는 이쯤에서 일단 접고, 지금 한창 한국영화계를 주도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보여 주고 싶은 나의 의욕에 래리의 제안으로 김기덕 감독에게 쏠린 내 관심은 멈출 수없는 자극이었다.



이미 뉴요커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만든 김기덕 감독에 관심을 보인 래리는 체코의 카를로 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김 감독을 만난 후, 김기덕영화에 더욱 더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른 일곱에 무일푼으로 파리에 가서 처음 영화를 본 사람이 10년 간 1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구? 정말? 그리고 중학교중퇴? 그렇다면 그는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 래리 카디쉬가 김기덕의 이력에 흠뻑 빠져 있을 즈음, 나는 김기덕영화와 정면으로 맞선 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내가 본 적이 없다 해서, 또는 내가 모른다고 해서 그런 일이 없다고 부정하기엔 너무 기막힌 일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김기덕은 세상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 일들이 만든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 아니면 섹스, 그 섹스도 거의 폭력 뒤에 이어지는 강간의 연속인 김기덕영화는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의 절규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었다. 그런 김기덕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2006년 여름이었다.
 
 



2008년 5월 8일, ‘김기덕’ 영화제가 보여 준 마지막 영화 ‘수취인불명’이 끝나자, 늦은 밤까지 자리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휴우!”하며 일어났다. 지난 보름간 김기덕매니아들이 늘어난 표시가 역력했다. 육필로 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너무 유쾌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으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처절한 삶을 살아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는 즐거운 얘기도 들었다.

 

 



“감독으로서 어느 영화가 제일 마음에 듭니까?”

영화제의 오프닝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이 받은 질문이다.



“나는 내가 만든 모든 영화를 사랑합니다. 한 편, 한편 최선을 다해 만들기 때문이지요.”



김 감독의 대답처럼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영화의 등장인물들. 그들은 버림받고, 소외당한 그리고 스스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출생자체가 불투명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빚어 가는 인생. 때리고, 맞고, 터지고, 쓰러지면서 다시 일어나는 불사조(不死鳥)같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새삼 희망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그래, 나도 엎어져 멍든 적이 있었지 - 어디였던가. 한때 곪았던 그 부위가 씻은 듯 깨끗한 이 조화가 신비롭다. 육신자체가 고름덩어리라는 말에 다시금 무릎을 치는 진리를 맛본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며, 나는 마치 지구 구석구석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착각에 살았다.
 
 



영화제가 끝난 지금 무엇보다도 즐거운 추억은 영화제가 완성될 때까지 참을성있게 어우러져 일을 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다. 열심히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제를 뒤에서 만든 사람들- 송수근 문화원장, 정종철 영사, 박덕호 영화진흥위원회 국제팀장, 정수정 프로그래머, 씨네클릭아시아의 김윤정 팀장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영화제 ‘김기덕’도 없었으리라.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멋진 연주를 끝낸 감동을 맛본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사람이 하는 일, 힘을 모으면 못 할일이 없다는 쾌감을 진하게 만끽한 ‘김기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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