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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우의 시사아메리카
2002년 시라큐스대와 북한 김책공대의 학술교류의 물꼬를 튼 주인공. 2009년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논문을 호주 최고의 국제정치학술지에 실어 반향을 일으켰다. 21세기 미국의 글로벌 정치외교부터 트위터 혁명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대표적인 재미 정치학자. 시라큐스대 맥스웰스쿨 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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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이전에 노무현이 있었다 (上) 소셜혁명의 시대

글쓴이 : 한종우 날짜 : 2012-08-31 (금) 05:36:43

나는 오래전부터 소설가 이문열을 좋아했다. 애독했던 작품 중에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등이 기억난다. 1985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뒤로는 그의 소설이나 신상에 대한 소식을 전혀 접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10년 6월경 인터넷을 “집단사기(集團詐欺)”라고 표현한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이 분야에서 일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추이를 관찰해 오던 내게는 매우 극단적인 인터뷰로 비쳤다. 며칠을 두고 한국의 명논객들이 어찌 반응할까 조심스럽게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누구 하나 반응하는 이가 없었다.

마침 여름 방학 중이라 비교적 한가로운 시간을 이용해 나는 나름대로 그동안 연구해 온 바에 기초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그 반론은 7월 초 기사화되어 야후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쓴 기사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현재 일고 있는 변화를 옹호하는 내 논리에 대체로 동조했지만 이문열이 지적한 사이버 공간의 신뢰성, 그리고 그 신뢰성에 기초한 정치 발전에 대해 회의적인 물음표를 던진 이도 꽤 되었다. 개인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 논란이 바로 내가 제기하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정치 변동과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핵심 변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또 하나의 족적을 남기다

대한민국이 20세기 인류사에 남긴 족적(足跡)이 하나 있다. 혹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 할지도 모른다. 단기간의 압축적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흔히 얘기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2차 세계 대전의 종료와 함께 서구 제국주의하에 있던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세계가 미소 양극 체제로 재편되면서, 신생 독립국 중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도 있고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도 더러 있지만, 20세기 내에 이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여기서 방점을 달아야 할 것은 ‘동시에’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군부 정권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정부의 재정은 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국가 부흥을 내세우며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학자 데리바니스가 지적한 한 국가의 저발전 원인을 당시 한국에 적용했다. 데리바니스는 후진국의 경제 악순환을 “시민들이 열심히 일하려는 욕구가 부족하며, 기업하는 사람들의 평균 지능이 낮고, 나라의 행정이 저조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규정했다. 박정희는 이를 원용하며 독일의 전후 라인 강 기적을 본받아 한국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자고 역설했다. 유교 왕조와 그 이후 정권들의 무능함을 신랄히 비판하며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국가 주도 독점 자본주의의 폐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서구 사회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 낸 경제 발전을 따라잡는 데 성공한 ‘개발 국가(developmental state)’의 핵심 정책으로 학계에서 평가되는 것이 사실이다.


 

▲ 박정희와 서독 빌리 브란트 수상 www.ko.wikipedia.org

그런데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에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독재 치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구금·투옥되고 고문당했으며, 시민의 정치적 자유는 엄격히 통제되었다. 급기야,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충격적 사태가 벌어졌고, 1980년 5월 18일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에게 국민의 군대가 총부리를 겨누며 수많은 인명을 앗아 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 이후 1987년 6월 10일 민주 항쟁을 계기로 문민정부로의 세탁을 거쳐, 현재 한국은 아시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실질적 의미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가 되었다.

민주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이 전 세계 민주화의 제3의 물결에 해당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사실, 동아시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한 유교주의를 수백 년간 받들고, 35년간에 걸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 그리고 12년간의 민간 독재를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서구식 개념의 민주주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은 얼핏 불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한국의 제도권 정치는 아직도 사회 각 부문 중에서도 가장 낙후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제도화된 정치가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에 충실할 경우, 현재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정보화 정치 활성화’ 현상은 그 어떤 사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또 하나의 발자취가 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 기반 위에서 기존의 권력이 파괴되는 현상과, 근간의 재·보궐 선거에서 표출된 정치 변동 현상이 그것이다.

민주주의(demokratia)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다수(demos)’가 ‘권력(kratos)’을 소유·행사하는 정치 체제라는 것이다. 현재의 정보화 정치 현상을 보자. 기존의 정치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거나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던 다수가 이제 정보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관철시키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 역사에 또 하나의 족적을 남기는 정치 실험이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를 “소셜 네트워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또는 “인터넷상의 집단 사기” 등으로 볼 법한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영어판이 나온 직후인 2012년 초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국 대표들은 이런 국내 상황을 제법 自矜心(자긍심)을 갖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일본 학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한국의 현상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정보화 정치가 활성화되지 않은 일본의 상황이 더 정상적이지 않느냐는 극히 보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일본의 상황을 한국과 비교하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일본이 정보화 수준에서 한국을 능가하고 1945년부터 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일본의 정보화 정치의 낙후성은 그 정보 기반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일본인들의 정치 정향이나 전후 자민당의 일당 독재를 가능케 했던 전통적인 일본 정치의 보수성과 협잡성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해, 현재 한국에서 정보화 정치가 활성화된 이유를 단순히 한국이 세계적으로 정보화 기반이 앞서 있다거나 한국인들이 양은 냄비가 순식간에 끓어오르듯 다분히 감성적인 기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앞에서 언급한 개발 독재하에서 경제 개발을 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를 지향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형성되었으며, 그 사회적 자본이 매우 젊다는 점에서 일본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세기에 동시에 이루어진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의 족적을 장황히 늘어놓은 것이다. 과연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정보화 정치 실험이 21세기 정보화 시대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성공할 것인가? 성공한다면 과연 정보화 정치는 과거의 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정보화 정치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기대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한순간의 끓어오르는 한국적 냄비 현상으로 그치고 말 것인가?

오바마 이전에 노무현이 있었다

2000년 우리 총선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벌어졌다. 시민이 연대하여 낙선운동(落選運動)을 벌인 끝에 혁명적 수확을 거뒀다. 그리고 2년 뒤인 2002년 12월, 마치 신이 간섭하여 만들어 놓은 듯한 일련의 사건들(동계올림픽의 오노 사건, 월드컵 응원 열기,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 사망 사건과 촛불 시위 등)이 벌어진 끝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나는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서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한국 사회에서 발견되었다고 판단한다. 또 내게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에 대한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진 2008년 미국 대선을 매우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2007년부터 대선 후까지 약 2년간에 걸쳐 나는 뉴욕 라디오 코리아(Radio Korea)에서 노창현 PD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덕분에 이 중요한 격동의 시기에 미국 사회에 몰아닥친 변화의 양상들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이 두 대선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토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보화 정치 현상을 설명하고 개념화하는 작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가 있기 전에 우리에게는 노무현이 있었다. 2007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오바마 후보는 경쟁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보다 선거 자금 모금에서 매우 열세일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오바마는 비록 소액일망정 클린턴보다 두 배나 많은 기부자를 모집해 전체 선거 자금 규모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기염을 토하면서 오바마 돌풍을 확산시켰다. 그런데 이런 풀뿌리 정치 자금 모금에서도 한국은 미국을 앞선다. 이미 2000년 총선에서 한국 시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풀뿌리 모금 운동을 벌이는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00년에 시민 단체들이 벌인 낙선 운동도 여전히 전 세계 초유의 현상으로 남아 있다. 일본이 이를 수입해 시도해 보기도 했으나 전통 정치의 경직성 탓에 좌초하고 말았다. 전 세계 모든 민주주의 나라들이 20~29세의 젊은 유권자들의 고질적인 저투표율 현상을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2002년 대선에서 한국 젊은이들도 이 고질병을 치유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한 후보로 쏠린 현상은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는 이러한 젊은 유권자의 한 후보 쏠림 현상이 재현되고 투표율까지 증가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젊은 층의 선거 유세 참여와 투표 참여에서 보여 준 변화의 양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보화 기기를 사용하는 층이 젊은 세대이고, 그래서 그들이 유명 스타를 쫓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매력 있는 후보를 지지·선출하기로 텔레파시로 담합이라도 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떠 보니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을까?

나는 한국이 20세기 말에 이룬 민주화와 정보화의 기반 위에서 2000년과 2002년에 다시 한 번 새로운 정치 실험을 전개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신이 우리더러 한 번 실험해 보라고 마련해 주기라도 한 듯한 기회였다. 현재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정보화 정치의 핵심 현상을 개념화하고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먼저 마련되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정보화 기반이 구축되어 정치는 물론 각 사회 부문에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990년대 말이었고, 따라서 이 정보화 정치 실험의 역사가 매우 일천하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변화는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니라는 점도 유의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현상들이 21세기 정보화 정치와 민주주의로 정착될지, 아니면 신기루에 그치고 말 것인지에 대한 학술적 검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핸드폰 보이의 등장, 민주주의의 풍경을 바꾸다

19세기 중반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과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 전역의 지역 공동체에서 정치적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계몽된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협회’나 클럽을 꾸려 활동하고 있었다. 로터리 클럽과 4-H가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자발적인 협회나 클럽 활동은 유럽에서는 불가능한 정치 현상이었다. 엄격한 신분 사회 계급의 구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 민중에게 자발적인 단체 봉사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www.en.wikipedia.org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1835)에서 이를 가장 기본적인 미국식 민주주의 개념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민주주의에 천착한 미국 사회과학자들을 ‘신토크빌리언’으로 부르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 신토크빌리언들은 세대(generation), 사회적 자본, 그리고 사회적 자본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대면 접촉(face-to-face interaction), 이들 간의 담론이 형성되는 공론장(public sphere), 그리고 이에 기초한 사회 운동(social movement)을 미국식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제시했다. 이 학파의 가장 유명한 선두 주자는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으로, 그가 저술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2000)이 이 학파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첫 번째 주요 개념으로 세대를 규정해 보자. 세대란 기본적으로 동시대(약 10년 이내)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10년 이내에 생일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세대로 간주하는 것만으로는 그 전후 세대들과 비교해 이들의 행동 양식에 대한 의미 있는 사회과학적 분석을 내놓기가 힘들다. 이들이 사회에 대한 가치, 정치적 견해, 세계관과 문화를 전체적으로 공유하고 그 공유한 하나의 가치 체계에 입각해 행동을 같이하게 될 때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의 세대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비판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와 같은 공유의 체계를 ‘생활세계(Lebenswel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주요 요인으로서, 문화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 개인적 성격을 들었다. 이때 상호 간에 이해를 가능케 하는 상호 주관적인 의식의 체계를 문화적 요인, 상호 통신을 통해 소속 의식을 공유하는 사회적 집단들의 결집력을 사회적 요인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개인적 성격은 개인적인 특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공유하는 동시대인의 집단

을 세대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경우, 토크빌이 목격한 미국식 민주주의 현상은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의해 활성화된 정치 참여주의와 급격히 진행된 산업 혁명, 그리고 이러한 급격한 변동의 결과로 나타난 각종 부조리 현상을 개혁·타파하려 했던 진보주의 시대(Progressive Era)에 형성된 진보주의 세대(Progressive Generation)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전후 경제 개발 세대와 386세대가 대표적이다. 유럽에서는 1차 세계 대전에 반대했던 유럽의 젊은 세대를 ‘1914년 세대’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정보 기술 발전에 따른 정치 변동과 민주주의상의 변화를 설명하려면 이러한 세대들이 각 시대에 새로 등장한 통신 기술의 발전에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그 전 세대들과 차별적인 정치관이나 행동을 보여 주는가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자본의 정의다. 사회적 자본은 구체적으로 민주주의를 성공케 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전적인 사회적 자본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원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많은 사람들의 집단이 서로 대면 관계를 통해 그리고 공유하는 연락 체계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공론장을 구성하고, 함께 집단적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를 의미한다고 요약된다.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1992)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아래 사진)는 이 사회적 자본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인으로 꼽으며,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신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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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로가 공유하는 신뢰가 붕괴될 경우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엄청난 양의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교차로에서 빨간불에 정지하고 파란불에 전진한다는 신뢰가 깨질 때, 부부간에 약속한 평생의 신뢰가 깨질 때, 국민 앞에서 선서한 대통령의 맹세가 깨질 때 그 치명적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대통령제가 5년 시한부 암 환자와 같다는 점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당선과 동시에 내재한 암세포가 발병하고 5년째가 되면 반드시 그 암이 말기에 이르러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권 말기마다 암 환자를 보내야 하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 기회비용이다. 또 우리 사회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좌익과 우익이라는 해묵은 갈등 구조로 국론이 양분되어 있고, 여전히 지역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 사회에 결여된 사회적, 정치적 자본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반증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자본을 형성케 하는 중요한 한 기재(器材), 즉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 간의 통신 수단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통신 기술의 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인해 기존 대중 매체에 의존해 형성되었던 산업화 시대의 공론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었고, 이것이 결국 21세기 정보화 정치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기존 산업화 시대에는 대다수 시민들이 몇 안 되는 신문과 방송, 잡지에 의해 선택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강요당했고, 대안 담론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쌍방향적 통신 기술의 부재로 정치 의사를 표출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제 유권자들은 정보의 제작과 송출을 독점하던 매스 미디어 시대를 넘어, 자유롭게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헐값에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화 정치라는 새로운 현상이 도래한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다 경찰이나 제도 권력이 시민을 탄압하거나 각종 사회 부조리가 발생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웹상으로 퍼 나르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시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마치 미국 서부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우보이들을 연

상케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엄청난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했던 방송과 신문, 잡지의 콘텐츠 제작과 송출, 수신 네트워크 기능을, 정보화 시대에는 개개인이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핸드폰과 웬만하면 갖고들 있는 PC, 그리고 얼마 안 되는 가입비와 접속비로 전 세계적인 디지털 네트워크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 서부 시대의 카우보이와도 같이) 정보화 시대의 ‘핸드폰 보이’는 결국 ‘걸어 다니는 개인 방송국이요 신문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등장으로 기존 정치 체제에 치명적인 군열(均熱)이 생기게 되었다. 다수가 기성 권력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다수가 권력을 점유·행사하는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의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야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정의, 즉 “민주주의는 요구의 체계(demanding system)”라는 것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닐까?

이렇게 주요 정치·사회적 의제가 무비판적으로 선정되어 매스 미디어에 기반을 둔 공론장으로부터 배제되었던 변방의 정치 논리와 행동 들이, 이제는 컴퓨터와 정보 통신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세계인들로 구성되는 ‘네트워크 공론장(networked public sphere)’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 영역에서 담론을 주도하는 세대는 정보 통신 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젊은 세대이기에 그들이 이 새로운 변화의 주축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들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2030세대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젊은 세대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 달성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386세대와 같이 자신의 미래를 희생해서라도 민주화를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투사적 정치 정향을 갖고 있을까? 이것이 너무 과한 요구라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 보며 각 지역 사회나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정치 토론을 할 정도의 정치적 정향은 갖추고 있을까? 아니면 단지 집에서 핸드폰과 웹 사이트에 매달려 게임과 문자 날리기로 하루를 보내는 흔하디 흔한 ‘요즘 아이들’에 지나지 않을까? 과연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 공론장에서는 토크빌이 목격했던 미국 지역 사회의 참여적 봉사 활동 구성원들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을까? 네트워크 공론장은 의미 있는 담론을 형성하는 가치 있는 공론장이 되어 가고 있는가, 아니면 매수된 악플러들이 의미 없는 험담과 인격을 몰살시킬 정도의 파괴적인 언행을 자행하는 집단적 사기의 공간에 그치고 말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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