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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우의 시사아메리카
2002년 시라큐스대와 북한 김책공대의 학술교류의 물꼬를 튼 주인공. 2009년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논문을 호주 최고의 국제정치학술지에 실어 반향을 일으켰다. 21세기 미국의 글로벌 정치외교부터 트위터 혁명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대표적인 재미 정치학자. 시라큐스대 맥스웰스쿨 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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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이 ‘정보매춘부’ 소굴? (下) 소셜혁명의 시대

글쓴이 : 한종우 날짜 : 2012-08-31 (금) 10:17:32

내가 2009년 매일경제의 ‘글로벌 포커스’라는 기고란에 연재하면서 처음 쓴 글이 2월 3일자의 “실명 공간과 가상 공간의 권력 투쟁”이었다. 디지털 정보 통신 기술이 창출해 내는 네트워크 공론장과 가상 공간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곳인가에 관한 단상이었다. 토크빌이 경험한 미국식 풀뿌리 지역 민주주의의 요체는 지역민들이 활발한 봉사 활동을 하는 식의 대면 접촉을 통해 신뢰의 기반이 형성되었기에 지역 사회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크빌 이후 미국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분야에서 명성을 떨친 학자들이 기초한 개념도 이 대면 접촉이었다. 따라서 대면 접촉 없이 서로 일면식 없는 가상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나누는 토론이나 담론 자체는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공간에서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노출시키지 않는 익명성에 기초한 담론(談論)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정치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지 새로운 디지털 정보 기술 혁명과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어쩌면 그러한 변화로 인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잃고 있는 기성 정치, 사회, 경제 세력들의 기계적인 거부 반응일 수도 있다. 칼럼을 쓸 당시 미국에서는 버나드 메이도프가 저지른 희대의 투자 사기 사건이 월스트리트를 강타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미국판 봉이 김선달이었다. 그는 갑부들이 모여 사는 플로리다의 한 골프 클럽에서 함께 운동하고 밥 먹으며 친해진 친구들을 꾀어 거액을 횡령했다. 그야말로 대표적인 실명 공간인 골프 클럽에서 대면 접촉을 통해 다져진 신뢰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기 사건은 실명 공간에서 끊임없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무수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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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언급한 칼럼에서 내 결론은 이랬다. 인류 사회의 형성과 동시에 발생해 왔던 각종 범죄는 공간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도덕과 죄의 문제인 것이다. 가상 공간이기에 그 신뢰의 정도가 약하고 미흡해 책임성이 실종될 수 있다. 사실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돈을 받고 자신의 이해나 의사와 관계없이 정보화 시대에 악플을 양산하는 산업 시대적 ‘정보 매춘부’들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새로운 정보 통신 매체를 발명해 응용할 때마다 항상 이러한 무책임하고 무도덕적인 인사들이 그 새로운 네트워크 체계를 악용해 왔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한동안 우리 삶의 경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축하와 애도의 인사를 전해 왔던 전보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모스 부호화한 음담패설(淫談悖說)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해졌고, 미국이 현재의 월드 와이드 웹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1995년보다 10년 앞선 1984년 프랑스 정부가 개발해 국민에게 제공했던 미니텔(Minitel) 역시 초기에는 정보 교통량의 절반가량을 포르노가 차지한 적이 있다. 새로운 정보 매체와 기술의 발전에는 어김없이 이러한 부작용이 따라왔다. 아니, 인류 역사의 개인적, 집단적 범죄는 다름 아닌 실명 공간 속에서 자행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적한 대로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보화 시대에 네트워크의 신뢰 기반을 좀먹는 악플러들과 가상 공간의 폭발성을 악용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의도적인 정보 조작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한 정당의 대표를 지냈던 어느 정치인은 소셜 네트워크의 위력을 경험한 후 자기 당을 위한 젊은 네티즌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적도 있다. 이런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정치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상 공간에서 기계적인 악플을 양산하는 악플 부대는 잔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상 공간을 피상적으로 이해해 일회적인 도구로만 이용할 것에 경도된 정치인들은 이 새로운 공간이 창출하고 있는 정치적 가능성과 그 창조적 파괴성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 이렇게 가상 공간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거나, 부정적인 목적으로만 이 공간을 사용하려 할까? 사회 각 영역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표출되고 있는 긍정적 모습은 보지 못하는 것일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노란 돼지 저금통은 깨끗하지 못한 정치 자금의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고건 전 총리가 서울

시장 시절, 복마전이라 비판받던 서울 시청의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고리를 끊고자 개발한 OPEN 시스템(민원 처리 온라인 공개 시스템)도 있다. 무엇보다도, (불법이기는 했지만) 한국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 연대가 온라인 국회의원 평가 제도를 채택하고 재선 자격이 없는 국회의원의 낙선을 적극적으로 계몽해, 그중 약 70퍼센트의 국회의원이 자리를 내놓게 만든 2000년의 총선은 20세기의 국회의원 선거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은 일대 혁명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대의 민주주의는 피선거권자들과 유권자들 간의 책임성(accountability)에 기초한다.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장 잘 대표할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고, 선출된 국회의원은 자신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요구를 이행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물론 선출직 정치인이 유권자의 요구를 100퍼센트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책임성이 무너질 경우 대의 민주주의는 그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네트워크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화 시대의 매스 미디어 체제에서는 이와 같은 온라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불가능했으므로 일단 선출되기만 하면 유권자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도 다음 선거에서 (자신의 의정 활동을 왜곡해) 재선할 수 있었다. 요즈음 정치인들은 과거를 천하태평 시대로 여기며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실수나 정당의 잘못된 정책 등에 대해 실시간으로 사과하거나 교정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수세에 몰릴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정보 통신 기술의 혁명으로 형성된 네트워크 공론장 및 각종 가상 공간의 커뮤니티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여파다. 그동안 유권자들은 자신의 투표 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책임성을 제고시키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가상 공간의 창출은 그동안 산업화 시대 정치 담론에서 체계적으로 또는 악의적으로 배제당한 민중이 만든 공간이 아니다. 이는 디지털 정보 기술이 만들어 내는 단일화된 전 지구적 경제 체제 논리에 의해 형성된 추세이기에, 기존의 권력층이나 민중이나 공히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95년 월드 와이드 웹이 상업적 성공을 한 배경에는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인터넷 고속도로(Internet highway) 또는 전 세계적 인터넷 상업망 구축의 필요성을 느낀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즉 더 많은 사람이 네트워크에 가입하면 할수록 이윤이 폭증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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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그동안 유럽의 통용어로 사용되던 라틴어보다는 각 민족이 사용하던 민족어를 출판 사업의 대상으로 주목하는 과정에서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했다는 문화인류학자 베니딕트 앤더슨의 주장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15세기 유럽에서 라틴어를 사용했던 인구가 얼마나 될까? 왕족, 귀족, 성직자 정도만이 라틴어를 쓰고 읽을 수 있었으니 전 인구의 1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은 그들이 독점하고 있었기에 민중이 배제된 그들만의 사적 담론 영역(private sphere)에서는 라틴어가 필사되어 사용되었다.

그런데 활자와 인쇄 기술이 발명되어 대량 출판이 가능해지자 1퍼센트밖에 안 되는 라틴어 사용 인구를 대상으로 했던 과거의 필사본 중심의 인쇄 출판 시장이 몰락하고 당시 전 유럽 인구의 99퍼센트가 사용한 각 민족어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인쇄 자본주의(printing capitalism)가 등장했다. 정보 생산 기술과 자본주의의 이익 극대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그동안 공적으로 통용되지 못했던 각 민족의 고유어(vernaculars)가 인쇄되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인쇄 자본주의를 당시의 권력층도 자신들의 기반을 좀먹는다 하여 거부하고 비판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등장한 인쇄 공론장도 틀림없이 정보 왜곡과 범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인쇄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부정되어 몰락했는가? 인쇄 자본주의는 15세기 유럽의 왕조 체제를 몰락시킬 국민국가 도래의 신호탄이었고 왕과 귀족, 교회 성직자 들이 거스를 수 없는 정치권력 변화의 대세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쇄 자본주의에 의해 형성된 20세기적 공론장을 집단적 사기라거나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담론 공간이라 폄하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인쇄 자본주의는 그동안 아무런 책임성의 고리 없이 다른 이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강제하며 지배해 온 유럽 왕조들의 권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와해시켰으며, 그 왕조 권력 위에 군림했던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종교 개혁을 완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시 발명된 인쇄 출판 기술과 자본주의 논리는 인류를 구원한 혁명적 기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또 이에 의해(출판물에 의해) 형성된 가상 공간의 긍정적 효과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상 공간에 대한 이와 같은 몰이해적 비판을 잠재울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정치권력의 폭압성을 드러내는 가상 공간

정치인, 유명인 들은 주변에 친구들과 후원자, 지지자를 많이 갖고 있다.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오랫동안 대면 접촉을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한 진정한 친구나 후원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아무리 유능하고 인기가 있더라도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를 일일이 만나가며 신뢰할 만한 관계로 구축한 정치인이나 스타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한 정치 공동체의 전 구성원을 대면 관계를 통해 후원자나 지지자로 확보한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 어떤 국가도 국민 모두의 지지를 획득할 수는 없다. 즉 대면 접촉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의 범위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 명성을 갖고 있는 유명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대면 접촉을 통해 구축한 신뢰할 수 있는 친구의 수가 1만 명을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인쇄 자본주의에 의해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 또한 이렇게 근본적으로 제한적인 구성원 간의 인지도에 기초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현 국가 체제를 구성하는 주권 개념에 입각한 근대 국가(sovereign nation state)들 또한 현재 형성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의 가상성과 동일한 논리에 의해 성립되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역시 이론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의 국가에 대한 극히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공동 가치 공유와 애국심에 기초할 뿐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주권 개념은 가상성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근대 국가 체제나 산업화 시대 정치 공동체의 이론적 전제가, 디지털 정보 기술 혁명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의 가상성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적 접근법으로 근대 국가 형성을 설명한 앤더슨이 연구를 위해 방문한 곳은 수천 개가 넘는 섬으로 형성된 국가인 인도네시아였다. 그는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본질적으로 정치 공동체는 모두 가상성에 기초한다는 주장은 이미 주류 정치학자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극히 상식적이지만 놀라운 주장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현재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가상 공간에 대한 논쟁을 좀 더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아울러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이 가상 공간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가상 공간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실명 공간에서 만나 서로의 관계를 확대할 수도 있고, 실명 공간의 친구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새 친구와 연결되는 것과 같이 지리적, 시간적 공간을 초월해 정치 현안에 뜻을 같이하는 친구의 폭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서로 알지 못하고 만나 본 적도 없지만 정치적으로 공감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시위 제안을 하고 타흐리르 광장에 집결까지 한 젊은이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종결시킨 예를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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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게이오 대학 초청 발표가 있은 지 한 달 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아랍의 봄과 미디어(Arab Spring and Media)’ 콘퍼런스에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이집트 혁명(The Egyptian Revolution Goes Viral)’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콘퍼런스는 게이오 대학 심포지엄에서 드러난 일본 학자들의 보수적 태도와는 그 분위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랍권의 권위주의 정권이 한 달 새 차례차례 무너지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정치 혁명을 경험하고 온 서구의 사진 기자, 학자, 행동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목도한 혁명의 열기를 전하며 온라인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 더블린 콘퍼런스에 참여한 이집트 일간지 알마스리 알요움(Al-masry Al-youm)의 기자 파티아 엘 다카크니와 카이로 대학 정치학과 교수 메르바트 마드쿠르 모두 30년 독재의 무바라크 정권을 한 달 만에 쓰러뜨린 일등 공신으로 정보 기술로 무장한 이집트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파티아 기자의 증언은 이번 이집트 혁명의 의외성을 생생히 전해 주었다. 데모가 시작된 2011년 1월 28일부터 이집트 반정부 데모를 취재하기 시작한 파티아는 편집국장으로부터 “지금까지의 반정부 데모와 다를 게 없으니 과장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취재하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파티아도 처음에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기존의 데모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었으나, 이틀이 지나고 거리의 데모대들이 상가와 아파트 주민들에게 데모에 합류할 것을 연호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군이 중립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아, 이번 데모는 예전 같은 데모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마드쿠르 교수는 데모의 성역이었던 타흐리르 광장에 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소셜 미디어로 무장한 젊은 세대였다고 답했다. 그들은 이집트 전체 인구와는 교육 수준, 정보 기술 활용도, 부모의 재산 여부 등에 있어서 예외적인 부류에 속하며 사이버 공간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서구 사회에 노출된 세대였다. 그동안 누적되었던 아랍 사회의 불만이 네트워크 담론을 주도했던 젊은 세대에 의해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폭발한 것이다. 이집트 참석자들이나 나나 이런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렇다면, 즉 가상 공간이 실명 공간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고, 정치 공동체의 본질이라는 것이 가상성에 기초하며, 이 가상 공간에서 일고 있는 긍정적 변화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의를 충실히 이행해 가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에 결정적으로 공헌하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정보화 정치의 부정적 측면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결국은, 악플러를 고용하는 식으로 정치 위기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이 가상 공간을 단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심판을 받아 퇴출되며, 고용된 악플러들의 존재가 드러

나 우리 사회가 이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토론을 전개할 때만이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가상 공간에서 책임과 신뢰에 입각한 자정 기능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일들로 낙선되고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선배 정치인의 말로를 지켜보는 신진 정치인들이 등장하면서, 그리고 책임성을 갖춘 네티즌들이 늘어나 소수의 악플러와 저질 정치 공작에 단호히 “노(No)!”라고 외치는 소리가 증폭되면서,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자는 목소리는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권력자들의 학습 효과

내가 이렇게 가상 공간과 소셜 네트워크, 정보화 정치가 초래하는 변화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견지하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2000년부터 일어난 가상 공간의 정치적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정치인이나 권력자 들의 학습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하는가? ‘앙마’라는 네티즌이 발동을 걸어, 효순·미선이를 추모하기 위해 열린 광화문 촛불 집회를? 2002년 6월에 일어난 두 여중생의 죽음은 그해 12월 있었던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미국 대통령과 국방 장관이 뒤늦게나마 나서서 대(對)한국민 사과를 했으나 국민들은 진정성 없는 때늦은 사과라는 반응이었다. 미국이 선호했을 수 있는 보수 후보가 떨어지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 데 그 사건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우리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잘 기억하고 있다.

2012년 7월 5일 평택 미7공군 부대 앞 로데오 거리에서 미군 헌병들이 한국민을 불법으로 연행하는 일이 벌어지자, 사건 발생 뒤 3일 만인 7월 8일 오전 제임스 서먼 주한 미군 사령관의 사과 성명이 발표되었고, 당일 오후에는 잰마크 조아스 제7공군 사령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사실, 사건 발생 하루 뒤에 있었던 이백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과 조아스 사령관의 전화 통화에서 조아스가 “미 헌병의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라고 주장한 것이 밝혀진 이상, 과거에 대한 학습 효과가 없었다면 이번 사건도 상당히 오랜 기간 양국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만일 2002년 촛불 집회가 없었고, 또 이 사건 현장을 담은 핸드폰과 그 동영상에 분노하며 미군의 행위를 규탄하는 네티즌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신속하게 미군 최고 당국자의 사과가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걸어 다니는 소규모 방송국과 연결된 네트워크의 위력을 경험한 미군 당국의 학습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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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를 겪은 정치권의 학습 효과를 보여 주는 예도 있다. 2012년 4월 24일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을 때, 한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자 네티즌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과거 촛불 시위에서 이미 네티즌 파워의 휘발성을 경험한 새누리당과 그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 27일 현 정부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즉시 중단할 것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정부는 국민의 위생과 안전보다 무역 마찰을 피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라며 “역학 조사를 통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확보할 때까지 검역을 중단하고, 최종 분석 결과 조금이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면 수입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2008년의 학습 효과가 나타난 새누리당의 대처는 다시 지펴질 수도 있었던 촛불 집회를 사전에 예방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보여 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5월 2일 저녁 서울 청계 광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울산, 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리긴 했지만, 정치권의 신속한 반응 때문인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 통신 기술 혁명과 이로 인해 형성되고 있는 네트워크 공론장 및 가상 공간이 민주주의와 선거,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문적 근거에 입각한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정보화 기반이 조성되고 이의 정치적 활용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어, 경험적 관찰을 일반화할 만큼 데이터가 축적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2000년 총선 이후 2012년이 세 번째 총선이었고 대통령 선거의 경우 2002년 대선 이후 2012년 12월의 대선이 세 번째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선거와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과학적인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 통신 기술의 혁명에 대한 이해와 이 기술이 사회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좀 더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정보 기술 혁명과 대한민국이 만났을 때

정보화 시대 가상 공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정보 통신 기술의 의미와 그것이 끼치는 사회·정치적 영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만한 젊은 층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적으로 그들에게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적, 사회·정치적인 변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준거 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핸드폰과 컴퓨터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부터 경험한 정보화 시대 세대(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한국의 2030세대)는 그 전 세대에 이루어진 사회 운동이나 정치 민주화에 대한 경험이 없으므로 선천적으로 정보화 기기 사용 전의 정치 변동 문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 관찰할 수 있는 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오히려 1960년대에 태어나 대학 시절에도 컴퓨터를 만져 보지 못했지만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386세대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를 경험하면서 자신들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화에 네트워크 정보 기기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이디어를 내는 데 더 적합한 환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이뤄진 사회적, 정치적 자본과 온라인 네트워크가 연결될 때 폭발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발상은 2030세대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일 것이다.

디지털 정보 기술 혁명 그 자체가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와 선거, 정치를 변혁시키는 근본 동인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하는 모든 사회와 국가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정보 기술이 창출하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지만 그 관계의 기술이 기존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므로 끝까지 중립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관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역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사고 체계와 문화, 그리고 각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집단적 정치 행동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보화 정치는 세계를 리드할 만한 환경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1997년의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제 구조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입안된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 산업 정책이 선진화된 정보 통신 기술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원인은 1980년대 말 우리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 추진 동력이 문민정부의 기반을 마련한 뒤, 그 동력이 채 가시기 전에 시민 사회 각 분야로 민주적 역량이 전환되어 강화된 사실에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1990년대 중반에 활성화된 인터넷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적으로 활용되는 시점과 맞물려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도 최고조에 도달했다. 이 때문에 정보화 시대의 정치를 전 세계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변화의 단초들이 한국에서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가 압축된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했다는 족적을 남긴 데 이어, 정보화 시대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이론적 단서들을 선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계기 또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앞에서 열거한 여러 요인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국은 정보화 정치 시대에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젊은 세대들의 ‘변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적 단서가 한국 사회에서 발견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즉 그들은 어떻게 과거의 무정치적, 비참여적 정치 성향으로부터 정치적, 참여적 성향을 갖게 되고 각종 선거와 정치 과정에서 과거에 보여 주지 못했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일까?

이번에 저술한 <소셜정치혁명세대의 탄생>에서 나는 2002년 1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부터 이어진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가상 공간상의 집단적 파워를 경험한 2030세대가 그해 11월 효순·미선 양을 위한 촛불 시위에 나서면서 정치적 파워 집단으로 전환되었고 결국은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분석한다. 나는 이처럼 모래알같이 흩어져 집단적으로 정치적 의사와 행위를 전혀 표출하지 못했던 2030세대가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력을 가진 유권자 집단으로까지 변해 가는 과정을 ‘시험적 동원(test-run mobilization)’과 ‘전시 효과(demonstration effect)’로 개념화하고자 했다.

즉 한국 사회는 민주화 과정에서 축적된 사회적 자본과 정보화 기반의 완성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2000년 386세대가 주축이 된 시민 사회 연대의 낙선 운동의 경험이 일련의 스포츠 경기를 통해 2030세대에게 전시 효과로 학습된 상황에서, 2002년 대통령 선거 시작 8시간 전,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자 젊은 유권자층이 핸드폰, 웹 기술 등을 이용해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나섬으로써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선거 개시를 불과 몇 시간을 남겨 두고 펼쳐진 이 젊은 세대들의 투표 동원전은 마치 신이 한국인들에게 정보화의 잠재력을 시험해 보라고 일부러 마련한 실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막힌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나는 이와 같이 절묘하게 연출된 정치적 실험 상황을 내 가설을 검증하는 기회로 삼았고, 가설 검증을 위한 다양한 경험적 근거를 토대로 이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노무현과 오바마…그럼 다음 대선은?

정보화 시대의 정치에 대해 흔히 하게 되는 오해 중 하나는 정보 기술의 주 사용자인 젊은 유권자들의 표가 항상 특정 성향의 후보에게로 쏠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층은 항상 민주당 성향의 후보를, 미국 젊은 층도 항상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오해다. 소셜 네트워크가 한국의 선거에서 결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이 불과 1년 남짓 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일반화를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정보화 정치의 이러한 방향성에 관해 대체적인 진단을 내릴 수는 있다고 본다. 앞서 정의한 대로 기존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관계의 기술이자 다수가 권력을 점유·행사하는 요구의 체계로서 민주주의를 정의·이해한다면, 현재 일고 있는 변화는 기존 권력에 대해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이거나, 여론을 무시한 정책 집행을 심판하는 성격을 띠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는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집권당이 되는 경우 젊은 유권자들이 내일의 야당에 동조하는 성향을 띨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 세력들의 정치적 정향을 고정화해 분석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들의 투표 향방에 관한 예측이 가능할까? 2012년 4월 총선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4월 총선은 (산업화 시대, 독점적인 매스 미디어의 일방적 담론 구조하에서 이루어진) 20세기 선거의 특징 중의 하나였던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을 드러냈고, 또 20세기적 지역주의가 부활한 선거였다. 젊은 층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동원 효과가 예상되었지만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만 표출되었을 뿐이다. 총투표 현황을 살펴볼 때 현 여당인 새누리당은 기존의 지지층인 보수적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극대화시키는 응집력과 동원력을 보여 주었다. 반면에 야당인 민주 통합 세력은 지지층의 결집에 실패했다. 전체 투표수에서는 민주 통합 세력이 간발의 차이로 여당에 승리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다음 대선에서 다음과 같은 예측이 가능하다.

집권 여당의 경우 현재의 대결 구도를 무난히 유지한다면 보수적 유권자층의 표는 4월 총선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야당인 민주 통합 세력은 후보 단일화 과정의 역동성과 4월 총선에서 실패한 지지층의 결집에 어느 정도 성공하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두 정당 후보가 지지층 결집에 모두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결국 적시적소에 집단적으로 몰표를 던질 수 있는 소셜 미디어 주도 세력이 선거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판단된다. 4월 총선에서 서울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 저조했던 젊은 유권자층의 참가율이 어느 정도일지에 따라, 또 전국 평균을 웃돌지만 여전히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수도권 지역의 젊은 유권자층에 어느 후보가 더 어필하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대선의 향배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대선은 바로 이 주요 세력이 어느 정당과 어느 후보로 연결되느냐에 당락이 결정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밋 롬니 간의 여론 조사 결과 자체는 당락의 미래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간발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제도는 각 주에서 단 한 표 차로 승리하더라도 인구 비례 원리로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간접 선거이고, 50개 주 중에 친공화당 성향과 친민주당 성향이 거의 고정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이번 미국 대선은 몇 안 되는 이른바 ‘배틀그라운드 주’에서 집단적 쏠림 현상을 보일 젊은 층 유권자들과 유대인들의 투표에 따라 그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단정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역주의 구도가 고착된 한국의 상황과 각 주에서 양당에 대한 지지가 고착된 미국의 상황이 매우 유사한 정세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 조사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현재 그 향배가 결정되지 않은 주는 대략 버지니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 아이오와, 네바다, 콜로라도로 압축되고 있다. 그 외의 주는 이미 특정 당 후보의 승리가 확정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상황이다.

대선 관련 예상 수치를 전하는 웹 사이트인 270towin.com의 경우 오바마 지지가 확정적인 선거인단 수를 225명, 롬니 지지가 확정적인 선거인단 수를 181명으로, 《뉴욕 타임스》는 237명 대 206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승리를 결정짓는 선거인단 과반수가 270명인 것을 감안하면, 270towin.com 예측의 경우 오바마는 45명의 선거인단만을 추가하면 당선되는 반면 롬니는 89명을 추가해야 하는 힘든 처지에 있다. 일반적인 여론 조사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진면목이다. 이렇게 몇 안 되는 주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관계로, 이미 지지 여부가 고정되다시피 한 주류 민주당 유권자보다, 집단적 투표 행위가 가능한 소수 집단, 예를 들면 히스패닉, 동성애자 등을 타깃으로 하는 편협적인 정책이 판치는 선거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당의 정강 정책보다는 후보의 개인적 성향과 특성, 대중적 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매체를 통한 선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치 자금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으며, 사소한 문제로 선거전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등의 부정적 요인은 정보화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소수 주에서 집단적 투표 행위가 가능한 젊은 유권자들을 소셜 네트워크로 엮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정보화 시대의 유능한 정치인과 정당이 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보화 시대를 사는 정치인들이 이제 절대 다수나 과반수를 자기 쪽으로 포섭하려는 목적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전체 유권자가 양분된 상황에 있는 미국과 한국은 더 이상 절대 과반 획득이라는 낭만주의적 리더십을 추구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정치인들은 1퍼센트라도 이겨 당선되기 위해 전체 유권자를 지역과 특성으로 분리시켜 접근하는 외과 수술적 정치인으로 전락한 것 같다. 정보화 시대 정치의 암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처럼 승률 ‘마진’이 크지 않은 정보화 시대 선거에서는 정보 기술을 주로 사용하며 가상 공간에서 정치적 집단 행위의 가능성을 확인해 가고 있는 젊은 유권자층이야말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유권자의 정치적 견해와 행동 양식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와 같은 여론 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는 선거 결과를 가늠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젊은 유권자층의 정치적 정향과 그들을 일정한 투표 방향으로 몰아넣는 정치 환경 요인을 고려한 ‘집단적 행동의 강도(intensity)’를 측정하고 추적하는 새로운 조사 기법을 고안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터 분석에 더 많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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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디지털 정보 통신 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따라 가상 공간에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결코 일회적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러한 변동은 권력을 구성하는 담론 체계와 행위자들 자체가 주요하게 변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가상 공간과 네트워크 공론장의 순기능은, 정치적 기회비용을 극소화하고자 하는 정치인, 정당 들의 순기능적 학습 효과를 통해, 그리고 책임 있는 네티즌들의 양적 증가를 통해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과정 속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정치 변동은 디지털 기술 혁명보다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국가·사회 관계와 각 부문의 민주적 역량이 그 향배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은 소셜 네트워크 세대가 정치 및 선거 변화의 주력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지난 2011년 11월에는 헌법재판소로부터 SNS 등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사전 선거 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이 소식을 접하며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우선, 그동안 요원하기만 했던 한국 정치에서 삼권 분립이 점차 성숙될 것이고, 과거 절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던 사법부가 이제 명실공히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갈등을 독립적으로 교통정리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둘째, 네트워크 담론과 이에 기초한 다양한 정치 행위를 우리 사회가 이제 시민의 정당한 민주주의 참여 과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젊은 유권자층은 산업화 시대의 일방적인 매스 미디어에서 소외(疏外)될 수밖에 없었고, 또 스스로 정치 행위와 담을 쌓았던 세대다. 이번 결정은 이 세대가 적극적인 투표층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각종 불협화음을 명확히 교통정리하고, 또 그 변화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정치 세력에게 경고를 던진 셈이다. 앞으로 우리 사법부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변화를 담아내는 새로운 규칙과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일련의 정치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모든 정당과 정치 세력 또한 이렇게 새로 형성되어 가는 네트워크 공론장과 예측하기 힘든 네트워크 세대의 정치 행위를 학습하며 변화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정치는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 호시절은 다 지나갔다.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스스로를 동원해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유권자층이 주요 선거와 정책의 향배를 결정짓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이렇게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아직도 곰방대를 두드리는 호랑이들에 대한 토끼들의 집단적 저항이 아닐까?

다가오는 12월의 대통령 선거는 곰방대를 내려놓는 개과천선(改過遷善)한 호랑이들과 토끼들 간의 상호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결정될 공산이 크다. 물론 현재까지 고착화된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다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이 완화될 20년 뒤에는 네트워크 세대의 정치 참여가 지금과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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