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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에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어 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 중년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요지경 같은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삶의 지혜를 찾아보는 코너입니다. 대학원에서 언론을 전공한 익명의 필자는 한국에 거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며,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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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원의 아이들

글쓴이 : 흰머리소년 날짜 : 2010-10-12 (화) 10:29:23

자원봉사(自願奉仕)를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은 공교롭게도 '승가원'이라는 장애아동 복지시설에 가게 되었다.

승가원은 고려대학교와 담장 하나를 두고 있는 안암동 골목안에 있었다.

 

토요일이고 날씨가 화창해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계획은 세우고 있을텐데, 승가원 아이들 대부분은 방에서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대부부분 중증 자폐아(自斃兒)들이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신체적 장애(障碍)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다.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얼마전 방송을 통해서 다큐멘터리 연작으로 이곳 시설의 아이들을 방송한 적이 있다.

특히나 '유태호'라는 아이는 팔이 없고, 다리도 종아리 정도만 몸통에 달려 있어 방송 후 많은 이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관심을 많이 받았다.

일행들과 승가원에서 해야 할 자원봉사는 청소와 아이들의 체험학습 보조 역할이었다. 나는 후자(後者)여서 전세버스를 타고 양평군 수동면의 임실치즈 체험학습장으로 향했다.

정도가 심한 아이들은 참석이 힘들어 몇 명 안되는 아이들이 참석을 하지만 아이 한명 당 어른 둘이 붙어야만 어느 정도 진행이 될 정도로 쉽지는 않은 행사였다.


정호(가명)라는 아이를 맡게 되었다. 나이는 열 다섯살. 한창 민감(敏感)하고 꽃다운 나이지만 정호는 그렇지 않았다. 정신지체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 보였고, 입에 한가득 침이 고이고 눈의 촛점은 한 곳을 집중하지 못했다.

스스로 자해(自害)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아이들로 부터 손찌검을 당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 손을 잡은 손등은 여기 저기 할퀴어 있고, 뺨이나 귓바퀴로 그러했다.

버스에 올라 옆자리에 정호를 앉히고 인솔자(引率者)가 나눠주는 과자를 주었다. '과자'하면서 집어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은 내 첫째아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로 표현 가능한 단어는 몇가지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노래도 부르고 텔레비젼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정호는 말도 못하고 텔레비젼 내용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관심도 없었다.

하루 잠깐동안 봉사를 하는 나는 가능할런지 몰라도 이 아이들을 매일 돌보는 승가원의 보모(保姆)들은 정말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 없이 힘든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화창한 한강변을 지나 아이들이 체험학습 할 곳에 도착했다.

첫번째 시간은 아이들과 치즈와 피자 만들기.....

나도 처음 접해보는 체험을 아이들과 함께 하자니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중하는 모습의 아이들을 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호기심이 이들에게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송아지 우유 먹이기.....

호기심에 다가서는 아이들 절반과 무서워서 다가서길 꺼리는 아이들 절반으로 나뉘었다.

 

승가원의 '태호'는 무섭다며 물러섰고, 발가락에 잡초(雜草)를 끼워 먹여 보라고 하였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방송으로는 몰랐던 태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가락이 4개 뿐이었다. 팔도 없고, 다리도 짧지만 발가락마저 4개인데, 그 발가락으로 식사도 하고 치즈도 만들고 무엇이든 집어들어 던지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태호는 방송 후 많이 변했다고 한다. 남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 준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즐기며 이용(?)하기도 한단다.

반 아이들을 자기 수족(手足)처럼 부리거나 운동도 안하려 들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마음이 더 커졌다고 한다.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배려가 많은 아이의 성품은 말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부탁 하고는 늘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아니, 여기 저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쫓아 다니느라 정신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정호든 태호든 우리와는 하룻나절을 보내고는 헤어질 것이지만 내 삶으로 돌아갔을 때 느낄 아이들에 대한 생각처럼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나를 추억(追憶)하면 좋겠다.

긴 시간을 중노동 한 것도 아닌데 버스에 오르니 모두들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본 하늘은 가을이 무엇이라는 정의를 내려주듯 높고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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