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와서 여섯 번째 맞는 할로윈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할로윈 퍼레이드가 바로 뉴욕 맨해튼에서 펼쳐진다는데 한번 구경을 다녀와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올해는 고구려 의상과 도깨비 저승사자 등 한국의 역사문화 캐릭터들이 나온다니까 더더욱 궁금하더군요. 결국 남편과 함께 맨해튼을 향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통근철도인 메트로노쓰 허드슨라인을 이용해 그랜드센트럴까지 가야 합니다. 역사(驛舍)로 들어가는데 허드슨밸리의 어둑한 구름이 할로윈의 분위기를 돋구더군요.
기차를 탔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할로윈 분장을 한 승객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습니다. 맨해튼의 할로윈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입니다. 옆 좌석의 히스패닉 여성들도 근사한 분장을 했더군요.
덩치가 산만한 청년은 뺨에 ‘난 섹시해(I'm sexy)’라고 글씨를 쓴채 활보하고 50대 멋쟁이 아저씨는 페이스 페인팅과 승마복 차림에 원숭이 인형까지 매달아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랜드센트럴 역에 도착하니 할로윈 코스튬을 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습니다. 할로윈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은 맨해튼 남단 6애버뉴입니다. 오후 7시부터 스프링 스트릿에서 행진을 시작해 20스트릿까지 올라온다고 합니다.
42가 타임스퀘어까지 가는 셔틀(S) 라인을 타고 N라인으로 갈아타는데 어디선가 흥겹게 북치는 소리가 납니다. 뉴욕지하철의 한 아티스크가 묘기에 가까운 드럼 실력을 과시하는데 오늘은 할로윈 분위기에 맞게 헤어스타일도 요란합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튀어나오고 덕분에 그 아티스트의 모금함(?)은 심심찮게 1달러짜리를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저런 속도라면 1시간에 수십달러는 벌어들이겠다 싶더군요.
날이 날인지라 구경하는 사람들도 요란한 분장을 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연주자와 구경꾼이 서로를 구경할 수 있는 날이 바로 할로윈인 것 같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지하철은 한국의 출근 전철을 방불케 할만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덜 혼잡한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습니다. 왜냐구요?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압니다. ^^
정말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처럼 공들여 분장(扮裝)을 했더군요. 행사장이 가까워질수록 할로윈 코스튬을 한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영화 ‘할로윈’의 마이크 마이어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등 살인마(殺人魔) 캐릭터들이 주변을 활보하고 SF영화의 주인공들, 기상천외한 가면과 분장을 한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서 내가 외계의 별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14스트릿에서 빠져나오자 거리는 문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 입추(立芻)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거리에서 몸을 비틀기조차 힘들었고 퍼레이드보다는 구경꾼들을 구경한다는게 맞을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해골 조형물들을 만장(輓章)처럼 치켜들고 형형색색, 다종다양한 할로윈 캐릭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고구려 장수와 조선시대 수문장, 저승사자 처녀귀신 등 한국의 문화캐릭터 40명이 행진하는 자랑스러운 모습도 보였습니다.
할로윈퍼레이드에 이미 대중화된 일본과 중국의 만화 캐릭터에 이어 마침내 우리 한국의 문화캐릭터들도 공식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두명의 미국 남성이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의 차림으로 종이우산까지 들고 가는 모습처럼 언젠가는 할로윈에서 미국인들이 우리의 문화 캐릭터로 분장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 순간 뉴욕은 할로윈의 수도(首都)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