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음식의 창조적 결합" "새로운 경지의 아티스트 셰프"….
얼마전 메인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의 동북단에 있는 메인(Maine) 주 말입니다.^^
뉴욕 몬로의 조성모 화백 부부와 저희 부부가 여행 겸 해서 다녀왔는데요. 조화백님의 지인인 허정(Hur Jung) 화백이 이곳 주류 화단에서 신선한 반향(反響)을 일으키고 있어서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허정 화백은 한인들을 찾기 힘든 메인주 최대 도시 포틀랜드에서 독창적인 명성을 자랑한답니다.
포틀랜드 최고의 일식당 '후지(FUJI)'의 마스터 셰프이자 요리책 저자, 실내장식가, 일러스트레이터, 무엇보다 파인아트(Fine Art)와 파인푸드(Fine Food)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예술가로서의 창조적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12월 소식부터 전해야겠는데요. 포틀랜드의 내로라하는 미술평론가들을 단번에 매료(魅了)시킨 특별한 전시회가 펼쳐졌습니다. 우아한 뉴아메리칸 비스트로 식당 '스프레드(SPREAD)'에서 열린 '밸런스: 허정의 그림과 요리'라는 타이틀의 전시 프리뷰 행사였습니다.
이날 이벤트를 취재한 미술평론가 케이티 캘러허(Katy Kelleher)의 글을 먼저 소개합니다.
"금(Gold)을 예술로 먹을 수 있을까? 예술을 먹어본적이 없는 내가 금도 먹고 예술도 먹었다. 셰프이자 미술가인 허정이 5가지 코스의 놀라운 창작품을 제공한 덕분이다... 창의적인 음식은 허정의 예술과 상호작용을 통해 디자인된 것이다. 컬러풀하고 환상적인 질감으로, 어떤 것들을 섬세한 금의 조각으로도 만들어진다. 명백히 먹기엔 비싼 재료들이다...꽃잎같은 오징어와 허브 샐러드, 부드러운 노른자로 토핑한 고기만두, 접시마다 정교하고 맵시있게 배열된 그의 음식은 행위미술의 대가인 잭슨 폴록처럼 비범했다..."
얇은 금조각을 넣은 메뉴가 평론가를 놀라게 한 것 같습니다. ^^
이날 평론가들을 가장 흥미롭게 한 것은 파스타였다고 합니다. 작은 열쇠 구멍 모양으로 대비되는 패턴을 금색 줄로 강조한 요리에 평론가들은 "이것을 위해 셰프가 얼마나 오래 공을 들였을지 짐작조차하기 어렵다. 이걸 먹는다는건 잘못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고 감탄을 했다는군요.
요리가 서빙되는 동안 레스토랑 '스프레드'의 벽엔 허 화백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들 작품 역시 컬러풀하고 복잡한 텍스추어의 자물쇠와 열쇠 구멍들이 반복적으로 묘사된 것이었지요.
허화백의 작품에 일관(一貫)되게 나오는 기호들은 음과 양의 상징들입니다. 동그란 모양과 짧은 목으로 형상화된 패턴은 허정의 예술을 상징하는 이미지인데요, 다양한 컬러로 양과 음의 반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충북 음성 출신인 허정 화백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학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 합니다. 주역에도 관심을 가졌고 불교에도 심취했지요.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산 저산 소요하던 어느날 문득 자신만의 예술혼에 눈 뜨게 됩니다.
"내 작품의 개념은 음과 양입니다. 열쇠구멍은 두 개의 단면과 균형이 서로간 의미를 갖도록 사물들을 들여다보는 렌즈와도 같습니다. 모든 다른 종류를 정신적으로 연결하는 통로와도 같지요."
그의 작품이 캔버스를 초월(?)하게 된 것은 음양의 원리를 음식의 비주얼로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서른 즈음이었습니다.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남들과 좀 다른 걸 생각하게 되었고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 생활에서 가장 큰데 이걸 어떻게 접근해 볼까 하다 식당을 하면서 창작해보자, 그렇게 된거죠. 그림 그리는 사람은 눈썰미와 손재주 있으니까 맛도 잘 내잖아요."
그림이 직접적인 생각의 표현방식이라면 음식은 미술철학을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점에서 더 넓은 의미의 소통방식이었습니다. 서른 여덟의 나이에 결혼한 그는 이듬해인 98년 미국에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2000년 7월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에 스시 레스토랑 '키라라'를 열 수 있었습니다.
키라라는 요일별로 매니아들이 올 만큼 단골 고객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타임아웃’ 매거진에 의해 뉴욕의 100대 레스토랑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음식과 미술의 결합을 통한 예술이라는 오랜 꿈을 펼치기 위해선 더 큰 작업장이 필요했습니다.
2008년 홀연히 맨해튼을 떠나 북쪽 끝 메인주 포틀랜드에 자리잡았습니다. 북동쪽으로 5시간은 차로 달려야 하는 포틀랜드는 뉴욕과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구대비 가장 많은 레스토랑과 예술가들의 도시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알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3m☓5m의 초대형인만큼 넓은 작업실과 식당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곳에 작업실도 겸할 수 있는 적당한 비즈니스 사업장이 생겼고 뉴욕에 비해 월등 저렴한 렌트비가 안성맞춤이었으니까요.
포틀랜드에 온 후에도 이곳의 예술가들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단지 셰프이자 레스토랑 사장으로 알았지요. ^^ 첫 솔로전도 2010년 뉴욕 맨해튼의 화이트박스 갤러리에서 열었습니다.
포틀랜드의 예술가들과의 본격적인 교류는 2013년에 시작됐습니다. 커머셜스트리트에서 운영하던 레스토랑 '스프레드'에서 처음 음식과 미술을 결합한 전시회를 열었을 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평론가들의 찬사가 쏟아졌고 메인주의 7대 뮤지엄 갤러리 관장들이 모두 찾아왔다고 합니다. 일약 포틀랜드 미술계의 기린아(麒麟兒)가 된 허화백은 미술에 전념하기 위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하나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4천 스퀘어피트(약 113평) 규모의 전문 작업실을 따로 얻었습니다. 지난해 7월의 일이었지요.
흥미롭게도 그의 작업실은 한달에 한번 예술가들과 갤러리들이 파티를 벌이는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매달 첫 금요일에 열리는 아트워크(First Friday Artwalk) 행사의 뒷풀이 장소로 제공되기때문이지요. 마치 시골 장이 서듯 포틀랜드의 모든 갤러리들이 매달 새로운 전시작을 오픈하고 문을 닫는 오후 7시부터 허 화백의 작업실에 모여 애프터파티를 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메인대학(UMN)에서 전시회를 성황리에 끝낸 허 화백은 1월엔 골드 아카데미에서 전시회를 이어가는 등 지금까지 5차례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포캐스터 신문의 평론가 에드가 앨런 빔(Edgar Allen Beem)은 "아크릴 캔버스의 추상화들은 구성의 절제속에서 감각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하고 힘이 넘친다. 미니멀리스트 브라이스 마던(Brice Marden)의 그림같은 서예와 웨인 티버드(Wayne Thiebaud)의 활기찬 색채도 만날 수 있다. 그것들은 사색적이며 심지어 명상적"이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셰프와 미술가, 어찌 보면 전혀 다른 길을 허정 화백은 하나의 예술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계속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앨런 빔 평론가의 말로 대신합니다.^^
"프레스코 아티스트 바바라 설리반(Barbara Sullivan)은 메인주 스코히건 미술학교에서 음식을 하곤 했다. 세라믹 아티스트 폴 허록스(Paul Heroux)는 메인주 노토메이토의 셰프 출신이다. 미술가 잽 헬더(Jaap Helder)도 포틀랜드 더 바인야드 식당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허정은 아티스트 셰프를 새로운 경지(境地)로 올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