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한국어와 영어로 애조 띤 아리랑 가사가 울려 퍼집니다. 80대 중반의 노신사들은 작은 태극기를 흔들며 감회에 젖어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뉴욕주의 한 타운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위로의 밤 행사가 잔잔한 감동(感動)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남편과 그리고 서양화가 조성모 화백님 부부와 함께 오렌지카운티 미들타운의 미참전용사회 151지부 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 행사는 한인 독지가가 무려 25년째 지속하는 것이라고 해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사실 미국 사는 분들은 다 아시지만 한국전 참전 용사들은 미 전역에 골고루 흩어져 사십니다.
하지만 6.25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한인들이 마련하는 자리에 초대되는 경우는 LA와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등 한인타운이 있는 대도시 아니면 거의 찾기가 어렵습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두시간 이상 떨어진 미들타운에서 매년 참전용사를 위로하는 큰 파티를 열고 있는 주인공은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이호제(허버트 리) 박사입니다. 이박사님은 비단 참전용사들만이 아니라 15년전엔 사랑의 한미재단을 설립해 매년 한국의 고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는군요.
6.25 65주년을 앞둔 지난달 27일엔 월킬 타운에 있는 캠프 섕크 메모리얼 팍의 한국전 참전비 앞에서 기념비에 헌화하는 행사도 주관했습니다. 이날 행사를 끝내고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도 있었구요.
21일 열린 참전용사 위로의 밤엔 지역 프랭크 라부다 대법원 판사와 정치인, 전갑균 오렌지카운티 한인회장 등 한인들까지 100여명이 모였습니다. 정성껏 차린 한국 음식과 미국 음식들이 있었구요. 공식 행사를 마치고 참전용사들을 위해 꾸준히 기금모금 등의 활동을 한 제임스 김 한미사랑의재단 이사에게 감사패가 수여됐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여흥(餘興)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미국 공연단의 노래와 연주, 문옥주 명창의 구성진 판소리와 진도북춤 등 전통 한국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피날레는 뉴욕 롱아일랜드 교사인 이소영씨가 이끄는 아리랑이었다. 햄스테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자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이소영 선생님은 다민족합창단 리더이기도 합니다.
저는 미처 몰랐는데 30년 넘게 한국의 문화와 얼을 전파하는데 앞장서 왔더군요. 참전용사들 앞에서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영어로 번역된 아리랑을 함께 불렀는데요. 작은 태극기를 손에 하나씩 쥔 참전용사분들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아리랑을 따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이런 일을 하신 이호제 박사님의 이력을 좀 들어보았습니다. 미8군에서 카츄사 교관단장을 하고 제대한 후 196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오셨다고 합니다. 노스웨스트 대학을 거쳐 경제사로 유명한 맨해튼의 뉴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다 기업의 경제분석가로 미국 정치인들의 자문역도 맡는 등 주류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 90년부터 참전용사 위로의 밤을 열기 시작했는데요. 처음 10년간은 인근 몽고메리의 스토니컨트리 클럽에서 개최하다 2001년부터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낯선 타국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 용사들에게 일년에 한번이라도 함께 모여 한국을 추억하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보은의 자리를 열면서 이박사님은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된 것 같습니다. 미참전용사회 지부 수석부회장도 맡고 계시다 하네요.
행사를 여는 데 가장 큰 애로를 여쭤 봤습니다. 역시나 재정문제이더군요. 사재를 터는 것은 물론 기본이구요. 모금활동도 하지만 솔직히 잘 걷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인타운과 떨어진 지역이어서 쉽지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뉴욕총영사관에서 김건화 동포담당영사가 직접 와서 약소하나마 금일봉을 전해 참전용사들에게 낯이 섰다며 하시더군요. 제임스 김 한미사랑의재단 이사가 이번에도 3천달러를 쾌척하는 등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데요. 하시는 석유사업이 잘 되면 큰 원군(援軍)이 될거라고 껄껄 웃으시네요.
이날 행사에 동반한 조성모 화백은 "한국전쟁에서 몸을 바치신 분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씀하네요.
이호제 박사는 "연로한 참전용사들이 매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면서 "참전용사들에 대해 감사하고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힘이 닿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6.25가 발발(勃發)한지 어느덧 65주년 되는 날이네요. 전쟁이란 비극이 다시는 이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