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이민가방을 들고와 허드슨강이 바라다보이는 작은 강변마을에 살게 된지 올해로 8년.
이름조차 생소했던만큼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온 곳인데 교육환경도 분위기도 기대이상이어서 슬그머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한국인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는데 살다보니 드문드문 한국분들이 눈에 띄더군요.
그런 노래가 있지요? 정이 들면 타향도 고향이라고. ^^ 누구나 자기가 사는 곳에 애착을 갖기 마련이지만 저같은 경우는 이곳의 랜드마크라 할 워터프런트 파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답니다.
올 여름은 정말 워터프런트 팍에 많이 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답답한 일이 있어도 강변에 나와 시원한 그늘에 앉아 부드러운 바람을 쐬고 나면 가슴속이 후련해지거든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엔 타지에서 소문을 듣고 오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요. 생각보다 번잡하지 않은 것은 주말이나 휴일의 경우 주차패스를 주민들에게만 발행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차가 20~30분 간격으로 돌면서 주차패스 검사를 하니 타지역 차량은 이곳에서 좀 떨어진 언덕에 차를 대고 내려와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좀 야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제한이 없다면 정작 동네 주민들이 즐길 공간이 부족하겠지요.
지난주 토요일, 정오가 다가올 무렵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답니다. 놀이터 양 옆엔 바비큐 팟 테이블이 여덟개가 있는데 생일잔치가 있는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팀들이 있더군요.
그러나 잔디밭은 한가롭기만 했습니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는데 저 멀리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 여성이 엎드린 자세로 있네요. 그런데 매무새가 범상치 않습니다.
젊은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서 선탠을 즐기는 이들이 종종 있지만 이렇게 젊은 여성이 거의 나신을 드러내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 여성은 잔디 밭 한가운데 혼자 누워 있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대개 한 쪽 구석에서 햇볕을 즐기는데 저 넓은 잔디밭의 정중앙에 누워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을까요? ^^
그러나 아직 이 시간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군요. 아마도 사람이 없으니 가장 햇볕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자리하자, 이렇게 마음먹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저렇게 눈부신 차림으로 백주대낮에 공원 한 가운데 홀로 누워 있을 수 있는 과감함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쓰기엔 그 공간이 너무 넓었습니다. 두명의 남성이 근처에서 프리즈비를 주고받기 시작하더군요. 프리즈비를 던지는 두 남성과 그 한가운데서 누워 선탠을 하는 여성, 그 너머로 보이는 허드슨강을 병풍처럼 두른 밸리.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여성은 여유롭게 선탠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움직이며 정성껏 태우는 모습입니다.
주변을 거닐다보니 강변 한쪽 구석에 또다른 여성이 선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그래도 사람들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 자리했더군요. 접이용 의자에 몸을 누이고 햇볕을 받고 있습니다.
여름의 햇볕이 워낙 강렬한 탓인지 잔디가 곳곳에서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거의 2주간을 화씨 90도에서 100도를 오르내리고 이따금 소나기를 뿌렸을뿐이니 풀들도 목이 탈 만 합니다.
생일 테이블 세팅이 한창입니다. 히스패닉 가족들로 보이는 이분들에게 물으니 두명의 여자아이 생일잔치를 한다는군요. 시작시간은 4시도 넘어선데 오전 11시부터 자리를 잡고 준비중입니다.
강아지와 함께 산보를 나온듯 두 남녀가 시원한 그늘밑에 앉아 정담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강변 가까이로 나가보았습니다. 낚시하는 아저씨가 보이더군요.
그 옆에 손녀로 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어린 동생도 함께요.
아이들이 갖고 온 장난감도 마치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걸쳐 있네요. ^^
귀여운 손녀들의 모습을 할머니가 사진 찍어주는 모습도 정겹습니다.
정말 귀엽지 않은가요? ^^
저도 시원한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워서 나무를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두명의 꼬마가 엄마와 함께 다가오고 있네요.
워터프런트 팍은 토요일 오후를 즐기려는 이들로 서서히 채워지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허드슨 강변은 그렇게 팔월의 푸르른 녹음속에 짙어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