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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온 미국과 살러 온 미국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쩌다 정착한 곳이 허드슨 강변의 작은 마을. 두 아이를 키우며 초보이민의 씁쓸함과 달콤함을 번갈아 느끼고 있다. 한국살이 미국살이 비교 체험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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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나혜야”

글쓴이 : 훈이네 날짜 : 2012-06-27 (수) 12:07:31

미국 생활 10년째. 두 아이를 키우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식을 고루 경험했지만 제가 사는 타운에서만 본것이니 ‘우물안 개구리’라고 해야겠지요.

마침내 지난주 우물안 개구리가 외출을 했습니다. ^^ 다른 곳의 학교 졸업식을 참관할 수 있었거든요. 뉴욕주의 이웃사촌 뉴저지주의 웨스트필드라는 타운입니다. 이곳의 웨스트필드 하이스쿨 졸업식이 지난 21일 열렸습니다.

 

유니온카운티에 있는 웨스트필드는 한국인들에게 다소 낯선 곳인데요. 뉴욕으로 연결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뉴저지 포트리에서 남서쪽으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수년전 미주한인사회 최초의 선출직 시장인 최준희 시장이 있던 에디슨시와 가까운 곳이지요. 이곳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이 거주하는 곳으로 아주 환경이 좋아보였습니다. 웨스트필드 하이스쿨 건너편 주택가에 차를 주차하는데 숲속에 집이 있는 것처럼 나무들이 울창하더군요.

 

이날의 주인공은 안나혜 양입니다. 웨스트필드 하이스쿨 졸업생은 400여명으로 큰 학교에 속하는데요. 한인학생은 단 3명에 불과합니다. 히스패닉과 흑인 등도 별로 없고 백인학생들이 거의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학교에서 나혜 양은 평점이 탑 클래스 수준의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지난달엔 웨스트필드 우먼스클럽이 매년 선정하는 최우수장학생에 선발돼 8천달러의 장학금을 받은 자랑스러운 한인학생입니다.

 

나혜 양은 수학과 과학에서 우수학생들만 수강하는 ‘어너스 클래스’를 이수하는 등 평점도 만점(4.0점)을 넘는 4.03점의 이례적인 점수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 지역 홈리스들의 배식(配食)을 정기적으로 돕는 등 봉사정신도 투철하답니다.

이번 장학금 외에도 두 단체에서 선정하는 장학생에 선발되는등 주위의 부러움을 샀는데요. 놀라운 것은 이민온지 5년밖에 안됐는데 이런 영광을 안은 것이랍니다.

한국에선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게 아이들 유학보내면 영어는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영어를 무리없이 하기위해선 주위 환경과 본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에 오더라도 중학생이상의 나이로 주변에 한국 아이들이 많다면 제대로 영어를 익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도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쉽게 통하는 모국어에 의존할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들은 어떤 학생도 중학교때 미국에 왔지만 한인타운에서 성장하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전화로 하는 영어를 힘들어한 경우도 있거든요.

이민온 부모님들 대부분은 생계에 바빠서 아이 학업에 신경쓰기 어렵고 다른건 몰라도 영어 하나는 잘 배우겠지 합니다. 실제로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것 같구요. 하지만 그 영어란게 '브로큰 잉글리시'에 슬랭이 범벅된 저급한 수준의 실력이라는걸 깨닫지 못하는 일도 생깁니다.

  

물론 이는 소수의 사례입니다. 다만 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은 없다는 뜻에서 말씀드린거구요. 아이들 유학을 쉽게 결정하는 분들이 아직 한국에 많이 계신 것같아 노파심에서 써봤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늦게 올수록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혜 양도 중학교 입학할 나이에 가족 이민을 왔기때문에 처음 1년은 아주 힘들었다고 해요. 사춘기가 시작될 즈음 언어와 문화, 민족이 다른 환경에서 학교공부를 따라가는건 둘째치고 생활에 적응한다는것부터 여간 어려운게 아니지요.

 

부모야 나름대로 목표를 잡고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이민오는거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부모를 따라와 정든 집, 정든 친구들 정든 환경 모두와 이별하는거잖아요.

처음 제가 이민왔을때 아홉 살짜리 딸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하도 우는 소리를 해서 “6개월후엔 돌아갈께”하고 거짓 약속을 해야 했어요.

6개월이 지난후에 슬쩍 물어봤지요?

“지금도 한국 가고 싶니?”

딸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응,..근데~ 미국 친구들도 데려가고 싶어” 하더군요 ^^

역시 어릴수록 아이들의 적응력은 높아서 6개월만에 불편없이 대화도 가능해지고 친구도 만들었으니 한국에 대한 향수는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온 아들은 결코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민오고 몇 년이 지난후 아들이 쓴 글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현실은 곧 내 주위에 나타났다. 뉴욕은 서울과 다르게 세상 온통 새하얀 눈과 볼살이 얼얼거리는 거센 바람과 추위로 뒤덮여 있었다. 숨 쉬기 어려운 날씨였지만 내 숨을 멎게 한 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숨을 멎게 한 그것은 되레 벽난로로 덥힌 것처럼 따뜻하고 아담한 크기의 방에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과 맞은편에 서있던 큼직한 체구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었다.

외계인(外界人)들이었다.

초등학교 때 전교 회장 출마를 나갔었어도 이렇게 압도적인 시선은 느낄 수 없었다. 나에게 고정된 시선들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선생님이 가리키는 맨 뒷자리에 가 앉았다.

내 눈 앞에서 그 외계인들이 외계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이 희귀한 장면은 그 다음 다음 수업까지 이어졌다. 이로부터 무려 6개월간 답답함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됐다...”

미국 아이와 선생님을 ‘외계인’, 그들이 쓰는 언어를 ‘외계어’라고 표현하다니...아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였을 따름입니다. 저는 아들이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고 착각했는데 알고보니 많은 번민과 좌절속에 나름 치열한 시련의 기간이 있었던거지요. 

그래서 저는 나혜양이 5년만에 이룬 성과와 결실이 정말 대단하다고 아낌없이 축하를 하고 싶습니다. 나혜양의 언니 안나영 양도 고등학교 졸업직후에 미국에 왔으니 그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나영양도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겸하는 등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구요. 머지않아 졸업을 앞두고 있답니다.

 

이날 축하온 가족들은 나영양의 선배와 친구(오른쪽)가 있었는데 나영양이 미국와서 랭귀지스쿨에서 사귄 일본친구로 얼마나 한국을 좋아하는지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유창할 정도가 되었답니다. ^^

 

그런데 이날 날씨가 너무 더웠어요. 한낮엔 화씨 105도(섭씨 38도)를 넘었구요. 졸업식이 시작된 오후 6시에도 화씨 98도였으니 정말 후덥지근해서 괴롭더라구요.

 
 

졸업생들은 여학생은 흰 가운, 남학생은 푸른 가운을 입고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 더 더웠겠지요. 하지만 표정만은 모두들 밝았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와 중학교 포함 12년 배움의 세월을 정리하고 더 넓은 곳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얼굴은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이 뒤섞인듯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생이 많다보니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는 순서만 30분이 걸리더군요. 제가 사는 곳의 학교는 10여분이면 끝나는데 말이죠.

졸업생 대표와 초청연사 등의 연설이 끝나고 졸업생 전원이 하나씩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는 순서입니다. 교장과 교육감 등과 차례로 악수를 하고 내려오면 미리 준비한 꽃 한송이를 건네더군요.

여학생은 빨간색, 남학생은 흰색입니다.

 

모든 식순을 마치고 이제 교장선생님 졸업을 선포하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성급한 졸업생들이 미리 모자를 하늘에 던지기 시작하네요. ^^

 

교장선생님이 다급하게 “졸업생 여러분 아직은 아닙니다” 하자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더위에 졸업식하느라 피차 고생이 많았던 것을 빗대, 교장 선생님 왈, “이제 모두 멋진 여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7월과 8월은 6월보다 시원하면 좋겠네요”

유머러스한 교장선생님이시죠?

  

졸업선포와 함께 단상의 교장선생님 임원들, 초청연사들이 퇴장하고 졸업생들이 줄지어 나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순서구요.

주인공인 나혜양도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합니다.

   

나혜양은 올 가을 뉴저지의 명문 럿거스(Rutgers) 약대에 진학합니다. 대학입학에 앞서 그동안 그리웠던 모국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요. 25일 아시아나를 타고 고향 부산까지 갔답니다.

미국온 이후 첫 방문입니다. 그리웠던 가족들, 친구들 볼 생각에 가슴 설레이던 나혜 양, 지금쯤 고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요? 푹 쉬고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앞으로 6년후(약대는 6년과정이라네요) 멋진 사회인으로 변신할 나혜양의 또다른 모습을 그려봅니다.

“장하다. 나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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