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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민목사의 신앙칼럼
1991년 총신대학 졸업후 도미,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M.A.) 과정을, 예일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석사(M. Div.) 과정을 전공한 후, 드류대학에서 신학박사(Ph. D.) 과정을 이수하였다. 장로교 신학과 기독교 교육학에서 출발하여, 민중 신학, 여성생태신학, 해방신학, 포스트 콜로니얼 신학을 거쳤고 지금은 동양신학을 연구하며 이민목회와 청소년 목회에 헌신하며 두십자가 신학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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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목사

글쓴이 : 졍영민 날짜 : 2012-10-24 (수) 23:05:55

뉴욕, 뉴저지 한국 이민자들중 7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수치는 카톨릭 교인들도 포함해서 입니다만, 소위 개신교를 다니는 신자만도 60%를 상회한다고 하니 이는 한국인들중 네 명 중 한 명이 기독교인 것보다는 월등히 많은 수치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민 사회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만큼 목사(牧師)들도 참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중에는 장로교인도 있고 침례교, 감리교인들도 있는 것처럼 목사들중에서도 여러 부류(部類)의 목사들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나온 세 가지 목사의 부류를 보니까 첫째는, 엄청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이지만 인간도 아닌 목사, 둘째는 그저 사람좋은 한 사람 인간일뿐 목사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여 목사라 부르기가 망설여지는 목사, 마지막으로, 따뜻한 인간미가 돋보이는 목사다운 목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때, 가장 미워한 부류의 인간들이 바로 위선자(僞善者)들이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하에 2등 백성으로 살아가던 유대민족을 위한다던 헤롯대왕을 예수님께선 “여우” 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으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서 실제로는 인간의 편의와 잇속을 먼저 챙겼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향하여 “망할 것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짜 죄인들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셨지만 가짜 의인들에게는, 너희가 슬피 울며 이를 갈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저주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짜 무신론자가 있고 가짜 목사가 있다면 아마 주님께서는 진짜 무신론자를 선택하시고 가짜 목사는 내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제한된 경험과 아둔한 머리로 만물에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보지 못하는 무신론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살아 역사하심을 체득할 기회가 있겠지만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빙자(憑藉)하여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가짜 목사가 하나님의 심판날에 몇 배나 더 큰 책망을 받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모독하는 것은 안식일에 더러운 손으로 밀밭의 이삭을 따다 부벼 먹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온갖 종교법을 앞세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에서 합법적인 치부를 해온 사제들과 성전관리들 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기도하는 집인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장본인들 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등지는 이유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짜 목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명아래 그들의 어깨위에 하나님이 원하지도 않으시는 온갖 종교적 구속과 책임의 짐을 지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벼락같은 책망을 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 13, 15)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부탁하신 마지막 사명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예수님께서 “내 어린양”, “내 어린양”, 내 어린양” 이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해 말씀하셨다면 “내 어린양” 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소중한 부류의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들은 바로 이 예수님의 양들이 오늘 날 교회안에서 목사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를 예수님의 뜻을 받들고 바라보면 문제 삼을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께서 주체가 되어 제자인 베드로에게 양을 위탁(委託)하셨다면 중요성의 순서는 예수님-베드로-양의 순서 입니다. 이렇게 보면 베드로가 양보다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서열로 목회를 한다면 양인 교인의 존재는 오로지 목사의 영향아래 있게되고 목사는 양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중요성의 순서를 다르게 볼 수 도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그 다음은 베드로가 아니고 양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은 그냥 양이 아니라 “내 양” 즉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즉 양이, 나(自)와 너(他)란 입장 중의 나의 편, 주인의 소유이니 주인이신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데 반하여 베드로는 양의 다음 서열의 자리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양이란 존재 때문에 필요로 하는 도구나 다름없습니다. 양이 없으면 베드로의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은 베드로보다 더 우선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임금의 아들을 보면 임금을 대하듯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대하면 예수님 보듯 해야하는 것입니다. 나는 교인을 예수님 대하듯 해야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은사님이신 조정칠 목사님께서 50년 이상 목회를 하신 후 목회자들을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셨습니다. 첫째는 훈장같이 엄하고 깐깐한 목사, 둘째는 목자같이 편하고 성실한 목사, 마지막으로 세째는 머슴같이 착하고 듬직한 목사입니다.

 

여러분들의 담임목사님은 어떤 부류에 더 가까운 목사님이신지요? 그 대답보다는 저를 목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목사일지가 더욱 궁금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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